여성 피트니스 부티크 ‘팀버’에서 운동을 하는 한 참가자. 사진 팀버 제공
서울 용산구 이태원. 맛있는 음식이나 술,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에 독특한 공간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30 세대 여성들의 몸과 마음 단련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공간들이다. 여성 전용 운동 공간 ‘팀버’와 여성 전용은 아니지만 참가자의 99%는 여성들로 채워지고 있는 ‘왈이의 마음단련장’을 찾았다.
내가 ‘기준’이 되는 운동 공간 ‘팀버’ 지난 9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시장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늦은 오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해 늦은 밤에야 활기가 정점에 이르는 곳, 이태원이다. 술집과 음식점, 전자음악이나 올드 팝송을 즐기는 클럽이 뒤섞인 이곳에 ‘팀버’(TIMBER)가 있다. 이곳은 시장에서 더 깊숙이 들어간 좁은 골목길 옆 한옥을 개조해 꾸민 16.5.㎡(5평) 남짓 규모의 공간으로, ‘여성 전용 피트니스 부티크’를 지향한다. 지난해 12월 팀버를 연 구현경(27) 대표를 만났다.
기자가 팀버를 알게 된 건 에스엔에스(SNS)에서 였다. 오로지 팀버 관련 이미지와 짧은 글만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구 대표의 사진이 거의 없다. 튼튼한 몸을 부각해 홍보를 할 법한데, 그런 사진은 전혀 없다. “일부러 안 올린다. 몸 사진을 보여주고 ‘이렇게 되라’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지 않다. 건강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 몸을 보면서 비교할까 봐 그런 사진 올리는 건 피하고 있다.” 그렇다. 팀버는 ‘여성은 ○○하다’를 거부한다. 최근 스포츠 브랜드들이 다부진 근육을 지닌 여성의 몸을 내세우며 “여성은 강하다”를 외치지만, 구 대표는 그 또한 경계한다. “‘여성은 약하지 않다, 여성은 강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둘 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여성에게 근육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근육질의 몸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몸에는 불쾌감을 갖는, 디스포리아를 느끼지 않길 바란다.”
다양한 고강도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 `팀버'. 이정연 기자
신체 단련에 있어 확고한 지향점을 가진 구 대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의 운동 경험에서 비롯했다. “평소 운동을 하면서 여성도 분명히 다른 타입의 운동을 할 수 있는데, 제약을 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운동을 하고, 가르치는 곳에서 대부분은 여성에게 벤치 프레스(가슴 근육 운동 중 하나)는 안 가르친다.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단단해지면 당연히 가슴이 납작해질 수 있는데, 그게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으니까. 그래서 반드시 여성 전용 피트니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들만의 공간’을 고집하는데도 이유가 있다. 구 대표는 팀버를 ‘그 누군가가 아닌 내가 기준이 되는 공간’으로 꾸려가고 싶어한다. “남성의 존재 자체로 여성들이 가능성을 제약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구조적으로 그런 지형에서 살아왔다. 팀버에서는 ‘여성의 몸으로 운동한다’는 의식조차 갖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팀버에서 하는 운동은 크로스핏과 보디빌딩의 동작을 더 한 ‘고강도 근력 운동’ 등으로 짜인다. 그러나 원칙은 없다. 모든 운동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개별 상태와 목표에 따라 짠다. “팀버의 프로그램은 트라이얼(평가) 세션을 거쳐야만 이용할 수 있다. 이 세션에서 장단점을 진단하고, 뭐가 필요한지 파악을 한 뒤에야 정식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세션당 참가 인원은 2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구 대표가 생각하는 ‘건강’이란 무엇일까? “운동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 정신이 제일 건강한 몸의 상태를 지키고 머물러 있는 것, 그게 건강이라고 본다.” 구 대표는 운동 전공자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할 정도로 강하다. 그가 전업 운동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니 그 간절함이 이해된다. “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과로하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바닥을 쳤다. 심각한 상태에 맞닥뜨리니 가진 것을 버리기가 오히려 쉬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휴지기를 갖다 팀버를 열었다.” 이제 이 작은 공간에서 구 대표는 큰 꿈을 꾼다. “반년 정도 운영하면서 초반에는 불안감이 조금 있었지만 내가 운동을 공부하는 양,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정보량, 회원들의 체력 상승률을 봤을 때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 싶었다. 장기적으로는 4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최신 운동기구들을 채워서 여성들이 아무 불편 없이 운동하는 곳을 만드는 게 목표다.(웃음)”
마음 운동을 할 땐 ‘왈이의 마음 단련장’ ‘마음 운동’에 관심 갖는 2030 세대들이 늘고 있다. 말 그대로 마음의 건강을 위한 운동이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마음 운동의 방법은 ‘마음챙김 명상’이다. 그 뿌리는 종교에 두고 있으나, 심리학과 뇌 과학, 정신의학계에도 이 마음챙김 명상을 연구하거나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명상을 ‘치료’의 수단이 아닌 ‘마음 건강 단련’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곳도 생겼다. 밀레니얼 세대들의 ‘마음 헬스장’을 표방하는 ‘왈이의 마음 단련장’(왈이)이 바로 그곳이다.
남산에서 ‘왈이의 마음단련장’과 온라인 커뮤니티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의 일과 삶)이 함께 진행한 명상 피크닉. 이정연 기자
서울 용산구 소월로. 경리단에서도 남산 중턱에 가까운 곳이다. 지난 12일 오후 ‘왈이의 마음 단련장’으로 들어서는 초록 대문을 열었다. 이날은 온라인 커뮤니티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의 일과 삶)과 함께하는 명상 피크닉이 있던 날이었다. 왈이의 노영은(28) 공동 대표와 3명의 참가자가 남산에 올라 명상을 배우는 날이었다. “마음 단련장에서 명상을 할 때 먼저 ‘몸과 마음 체크인’과 ‘존재 소개’를 한다. 체크인은 몸과 마음의 현재 상태를 설명해주면 된다. 존재 소개를 할 때는 나이나 소속, 학력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이때 불렸으면 하는 별명도 알려주길 바란다.” 노 대표는 차분히 참가자들을 이끌었다. 누가 입을 먼저 뗄까?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노 대표가 기자의 마음을 읽은 듯 이야기한다. “이곳에서는 누구에게 뭘 시키지 않는다. 잘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존재 소개’를 마치고 명상 피크닉 참가자들은 20여분 남산 둘레길을 걷고, 50분가량 숲 속에서 호흡 명상과 자애 명상(자신과 타인의 평화와 행복을 비는 명상)을 이어갔다.
남산 명상 피크닉을 떠난 노영은 왈이의 마음단련장 공동대표와 참가자들. 이정연 기자
다시 마음 단련장으로 복귀해 노영은 대표, 그리고 그와 함께 왈이를 운영하는 김지언(27) 공동 대표와 마주 앉았다. 그들은 마음 단련장을 ‘밀레니얼의 명상 요가 상담클럽’이라고 소개한다. 클럽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99% 정도가 2030 여성들이다. 20대인 두 대표는 아침 출근길 표정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건 오디오 콘텐츠 ‘왈이의 아침식땅’을 운영하던 이들이다. 이 콘텐츠들은 젊은 직장인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러다 이름을 바꿔 달고, 콘텐츠를 담은 ‘공간’을 선보였다. 무슨 변화가 있던 걸까? “몸은 병에 걸리기 전에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음식도 먹으면서 ‘왜 마음은 아주 아파야만 돌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나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 여러 방법을 찾고 직접 다 해봤다. 상담, 명상, 요가 등등. 그런데 문턱이 너무 높았다. 이런 고충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들이 일상적으로 운동하듯 마음 돌볼 곳이 어디 없을까 찾았는데, 없었다. 그래서 만들게 됐다.” 노 대표가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아침식땅은 위로의 콘텐츠인데 100개가 넘는 콘텐츠를 만들고 올리면서 정작 내 마음은 아주 힘들었다. 그 경험으로 깨달았다. 치유라는 건 ‘콘텐츠’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과 사람이 닿았을 때야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마음 단련장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이름을 읽다 그 궁금증이 더 커진다. ‘실전 멍상 클럽’, ‘월간 멈춤 프로젝트’, ‘자괴감 파티’ 등등. 그 중에 눈길이 쏠리는 단어, ‘멍상’이다. 명상을 잘못 쓴 게 아니다. 노 대표는 “명상이 지닌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전통이나 종교적인 이미지 속의 명상이 아닌 허리만 피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생활 속 명상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멍 때린다’는 표현을 가져와 ‘멍상’이라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명상보다 요가 프로그램이 더 인기지만, 이들은 명상이 마음이 아프기 전 예방 차원에서 마음을 돌보는 방편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김지언 대표는 “요가나 운동은 어딘가를 가서 규칙적으로 하는 게 익숙한데, 명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아직 많다. 명상은 운동보다 ‘하겠다’는 의지가 더 많이 필요한 활동인 거 같다. 명상 중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괴로운 일이니까. 혼자서는 명상을 잘 안 하게 되는 분들이 정말 헬스장 가듯이 마음을 단련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