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크로스피터 커뮤니티 활성화와 기부 문화 만들기를 위한 운동모임 ‘움직여’를 만든 이윤주(사진 맨 왼쪽), 신경해(사진 가운데), 서하얀 코치. 사진 이정연 기자
크로스핏. 맨몸 근력 운동, 역도, 케틀벨 등 여러 종류의 운동을 짧은 시간에 고강도로 하는 운동이다. 국내에 크로스핏이 소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크로스핏 박스’(크로스핏을 하는 체육관)에 여성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성들의 운동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지며 ‘강한 몸’을 추구하는 여성 크로스피터(크로스핏을 하는 사람)들이 느는 추세다. 이들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여성 크로스핏 커뮤니티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름은 ‘움직여’. 움직여를 만든 3명의 여성 크로스핏 지도자를 ESC가 만났다.
지난 14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바이러스트리트 크로스핏 박스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여느 크로스핏 이벤트와 다른 건 하나다. 모여든 사람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 ‘여성 크로스핏터 커뮤니티 활성화와 즐거운 기부 문화 만들기를 위한 운동모임’이라는 설명을 내건 ‘움직여’의 8번째 운동모임이 있는 날이다. 지난해 9월 시작해 거의 매달 열리고 있는 ‘움직여’는 여성 크로스피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매회 참가자 모집 공고를 내면 얼마 되지 않아 신청자 모집이 완료됐다는 공고가 올라오곤 한다. 움직여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 역시 여성 크로스피터이자 크로스핏 지도자들이다. 이윤주(32)·신경해(27)·서하얀(28) 코치가 그 주인공이다.
“움직여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정말 놀랐다. 이제는 크로스핏 박스에서 먼저 우리에게 연락해 와 ‘움직여’ 한 번 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크로스핏 경력 5년 차 선수이자 지도자인 서하얀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7년 경력의 신경해 코치는 “셋이서 밥 먹고 이야기하다 나온 아이디어서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관심이 꽤 높다”고 덧붙였다. 경력 7년 차로 국내 크로스핏 대회에서 여러 번 1위에 오른 이윤주 코치는 “크로스핏계에서 우리의 인지도를 이용해 여성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걸 이용해 좋은 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셋은 국내 크로스핏 대회에서 오가며 만난 게 인연이 되어 뭉쳤다.
지난 14일 열린 8번째 움직여에서 참가자들이 다양한 운동 동작을 훈련하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지하 1층의 다소 쌀쌀한 크로스핏 박스에 모여든 20명의 참가자와 3명의 코치는 준비 운동을 마친 뒤 3라운드에 걸쳐 1시간30분 동안 운동을 이어갔다. 크로스핏에는 ‘오늘의 운동’을 뜻하는 ‘와드’(WOD·Workout Of the Day)가 있다. 크로스핏 박스는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을 섞어 매일 다른 와드를 구성한다. 움직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와드에 해당하는 운동은 마지막 3라운드에 진행했다. 3라운드는 5가지 운동 동작을 1분씩 각자 할 수 있는 횟수만큼 최대한하고, 2분의 휴식 시간을 갖는 걸 3번 반복하도록 구성됐다. 5가지 운동은 맨몸 스쾃, 턱걸이, 케틀벨 스윙, 버피, 박스 점프! 참가자들의 눈빛엔 기대감이 차 있다. 제대로, 잘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움직여가 진행되는 내내 참가자들의 자세를 살펴보고 세심하게 지도하는 3명의 코치도 덩달아 신나 보인다. 그러나 ‘움직여’가 시작된 데에는 신나지만은 않은 배경이 깔려있었다. “크로스핏이 일반적으로 남성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 크로스핏 대회 중에는 남성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생겼다. 그걸 보고 ‘여자들도 크로스핏 대회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여자들만 참가하는 대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당장 만들기는 어렵겠다 싶어서 ‘움직여’를 기획하게 됐다. 또 운영자들도 즐겁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 돈을 받기보다는 참가비는 뜻있는 곳에 기부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다.” 신경해 코치가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200만원가량을 여러 단체에 기부했다. 그리고 이들의 계획은 차근차근 현실화하고 있다. 이윤주 코치는 “원래 4월 중 여성 크로스피터들의 대회, ‘움직여’ 운동회인 ‘움동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연기했다. 상황이 개선되는 대로 움동회를 열려고 한다”고 말했다.
운동 중 쉬고 있는 움직여 참가자들. 사진 이정연 기자
여자, 근육 그리고 크로스핏. 움직여는 이 세 단어의 조합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날을 고대한다. 서하얀 코치는 “미디어를 보면 여성의 몸에 관한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여전히 운동하러 와서 근육 생기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분들도 크로스핏 같은 운동을 하다 보면 성취감을 느끼면서 몸에 관한 인식이 바뀌는 걸 목격한다”고 말했다. 이윤주 코치는 소망하는 게 있다. “여성들이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움직여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여성들이 보이는 것, 보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 집중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운동도 훨씬 재미있게 할 수 있으니까.”
‘움직여’의 매력에 흠뻑 빠진 마니아도 있다. 1년 반 전 크로스핏을 시작한 황미연(28)씨는 원래 심하게 마르고 체력이 약했다. 이제는 ‘핏미연’이라는 운동 관련 유튜브 채널을 만들 정도로 운동에 푹 빠졌다. 황미연씨는 “원래 너무 마르고, 체력이 약했다. 크로스핏도 처음엔 ‘도대체 모여서 이게 뭐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 만 해보자는 게 이렇게 이어졌다”며 “크로스핏을 하면서 꾸미지 않고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 몸에 대한 시각 자체도 많이 바뀌었다. 움직여에 오면 ‘보이는 몸’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추구하는 분들을 가깝게 만날 수 있고, 닮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크로스핏. 여전히 나와는 거리가 먼 ‘힘든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3명의 코치는 크로스핏으로 엄청난 체력이 아닌 ‘생활 체력’을 기를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서하얀 코치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친구와 함께 마트에 갔는데, 친구가 장바구니가 무겁다고 쩔쩔매더라. 그래서 친구에게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장 봐서 먹으려면 꼭 크로스핏을 하라고 권했다.”(웃음) 신경해 코치는 “여성들은 근력 운동을 낯설어한다. 그런데 근력 운동을 하면 자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체력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코치는 ‘효율적인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크로스핏은 대체로 그룹 운동을 하다 보니 경쟁하고 이끌어주면서 효율적으로 체력을 끌어낼 수 있다. 크로스핏은 ‘빡세다’라는 인식이 강한데, 각자의 한계에 맞춰 운동을 하는 거지 못하는데 무조건 강도 높은 운동을 시키는 게 아니다. 동작 스케일링(횟수, 중량 등 수치를 조정하는 것)을 제대로 하면서 하면 된다.”
움직여 참가자들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움직여의 큰 매력으로 꼽는다. 사진 이정연 기자
3명의 여성 코치들이 크로스핏을 시작한 계기는 다 다르다. 서하얀 코치는 “이기는 걸 좋아해서”, 이윤주 코치는 “게임 중독에서 나를 살려내서”, 신경해 코치는 “크로스핏을 하고 변화한 사람들을 보고” 크로스핏을 평생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마다의 목표도 있다. 아주 먼 미래의 목표들을 이야기할 때는 귀가 쫑긋해졌다. 신경해 코치는 “‘크로스핏 게임즈’라는 세계 크로스핏대회가 있다. 여기에 60살 이상 선수들이 참가하는 부문이 있는데, 60살이 되면 거기에 꼭 출전하고 싶다. 움직여를 하는 분들도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갈 건데 평생 같이 운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윤주 코치의 목표는 “50살에 물구나무서서 걷기”, 서하얀 코치의 목표는 “100살에 버피 100개 하기”이다. 할머니 크로스피터들이 서로의 체력을 겨루며 웃고 떠드는 크로스핏 박스를 상상해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나도 언젠가 할머니 크로스피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면 움직여의 이벤트를 놓치지 말자. 기존 움직여는 크로스핏 경험자를 대상으로 했으나, 올해 비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수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더불어 현대무용과 수영 등 다양한 종목의 강습도 열 계획이다. 이런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의 움직여(@move_crossfitter) 계정의 공지를 확인하면 된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