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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돼지 뇌까지 먹어야 하나···미식의 끝은?

등록 2019-11-14 09:34수정 2019-11-14 20:03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손님들을 도발하는 레스토랑들
그로테스크한 메뉴로 실험에 나선 요리사들

돼지 뇌·새 머리 장식·물고기 부레·쓴 약초들 등
‘분자요리’ 세상에 알린 ‘엘 불리’가 출발점

요리사들 도전에 경악하더라도 경험할 만
하지만 기준은 정하는 게 정답, 도 넘으면 안 되는 것

일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이민혜

식당이란 곳이 손님들에게 도전하고, 도발하고, 심지어 기분을 언짢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면서 음식을 제공하는 게 과연 허용될 만한 일일까? 이런 행위는 ‘친절한 접대’라는 식당의 전통적인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비싼 돈 내가며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들려는 식당에 갈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정신없이 빠른 지구촌에서 요즘 셰프 중에는 본인을 늘 새로운 실험을 하는 진보적인 배우 혹은 혁명가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가보면, 그들은 손님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것보다는 자기 생각의 지평을 확장하는 걸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셰프들의 획기적인 디자인 경쟁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소셜 미디어다. 소셜 미디어는 셰프들이 요리의 비주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심지어 충격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부추기는 주범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음식을 경험한 덕에 웬만한 음식은 가볍게 소화하는 나 역시 최근 가장 아방가르드하고, 트렌디하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갔다가 ‘힘든’ 순간들을 겪었다. 지난주 홍콩의 ‘해피 파라다이스’에 갔는데, 글쎄, 돼지의 뇌가 음식으로 나오더니 그다음에는 까맣게 태운 어느 불쌍한 새의 머리를 장식으로 곁들인 구운 비둘기 요리가 등장하는 게 아닌가.

지난 2월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라는 식당에서 물고기의 부레가 요리의 이름을 달고 나왔고, 지난해 11월에는 모던 칠레 요리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로돌포 구즈만이 포르투갈의 레스토랑 ‘오션’에서 초청 셰프로 팝업 메뉴를 선보였을 때 곤욕을 치렀다. 쓰디쓴 야생 유기농 약초들이 몇몇 요리에 불쑥불쑥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사 자리에서 나와 함께했던 다른 손님들은 고뇌에 빠졌고 결국 식사를 다 끝내지 못하거나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나 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을 앞에 둬서다.

그러나 나는 이 3명의 셰프가 만든 요리를 먹을 기회가 생긴다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왜인가? 그들은 내게 먹을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까지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트렌드는 ‘엘 불리’(El Bulli)에서 가장 처음 시작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식당은 세계에 ‘분자요리’(molecular gastronomy)를 처음 선보인 선구적인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레스토랑이다. 분자요리란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식재료 고유의 맛은 유지하되 음식의 질감 및 요리 과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물리적·화학적 방법으로 새롭게 변형시키거나 완전히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창조하는 것을 일컫는다.

때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엘 불리가 문을 닫기 직전 그곳에 갔고, 내가 먹은 요리에는 다양한 새끼 생명체들(장어, 문어 등)이 통째로 접시에 올라와 있었으며, 코스 요리에는 토끼 고기를 재료로 쓴 음식이 꽤 많았다. 그중 하나가 토끼 콩소메(맑은 고깃국물로 된 수프)에 산딸기를 잔뜩 넣은 요리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맛이 정말 끔찍했다. 진정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독창성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도저히 씹어서 삼킬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그 식사를 내 삶에서 ‘기억에 남을 한 끼’라고 생각한다. 왜일까? 셰프 페란 아드리아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타협을 모르는 그의 창의력은 의미 있는 것이고 가히 높이 살만하다. 인.정.

이런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의 강박 증세는 내가 한국, 중국, 일본을 방문해서 음식 먹기를 엄청 즐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재료와 요리들, 혹은 때로는 먹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것들을 경험하게 되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삼, 각종 풀, 닭고기 육회 같은 것이다. 익히지 않은 닭고기를 날로 먹을 때 서양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조화 불가능한 온갖 종류의 반찬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는데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히다.

특히 중국 음식 중에는 서양인들이 편하게 씹을 수 있는 범위 바깥에 놓인 음식들이 많다. 미끄덩거리거나, 스펀지 같은 느낌이 나거나, 후들후들하거나, 딱딱하고 질긴 식감, 이를테면 연골, 콜라겐, 닭발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내가 우리 집 애들한테도 늘 얘기하듯이 우리는 모든 걸 적어도 한 번씩은 먹어보는 겸손함과 실험 정신을 갖춰야 발전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낯선 음식을 시도할 때 원성이 자자한 테이스팅 메뉴가 진가를 발휘한다.

테이스팅 메뉴란 손님의 기쁨보다는 셰프의 자부심과 ‘미슐랭’ 별을 향한 야망을 더 중시하는 음식이라는 게 평론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가끔은 부적절한 허세, ‘누가 뭐라고 하던 내 멋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겠어’라는 방종, 과시욕을 한껏 드러내는 음식들이 있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셰프 중에 15가지에서 20가지에 달하는 코스를 본인이 앉아 다 먹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러면서 손님들은 다 먹기를 기대한다. 심지어 남기면 기분 나빠한다. 그러나 뛰어난 셰프들이 포진하고 있는 주방에서 만들어내는 테이스팅 메뉴는 진정 몰랐던 참된 깨달음을 선사해주고, 평상시에는 경계했을 법한 새로운 것들도 시도해보라고 은근히 권하기도 하며, 평생 모르고 살았던 새로운 미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다면 셰프의 도전 정신이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점이다.

음식에 관한 한 신중하고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단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대체로 수긍할 만한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뜻이다. 손님들에게 경고도 없이 음식에 곤충을 몇 개 쓱 집어넣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한 끼 식사 코스에 손님이 도전할 만한 음식은 한 가지면 족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를 주저하게 하거나 움찔거리게 할 만한 요리보다 더 불쾌한 것은 바로 지루한 음식이다. 고루한 영국 음식점, 흔한 프랑스풍 식당, 혹은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체인점에서 만날 수 있는 판에 박은 듯한 상투적인 메뉴들. 아, 말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하품이 난다.

나는 세상에 외치고 싶다. 뇌와 곤충, 잡초와 풀때기, 성게나 해삼, 뭐든 가져오시라! 혹은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볼까? “최고의 위장이란 그게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는 위장이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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