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아내와 나는 래브라두들 강아지 루나를 산책시킨다. 바다와 가까운 시골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숲과 들을 지나 풀과 흙, 모래를 밟으며 자연 속을 4~7㎞ 걷는다. 루나의 체질 때문에 날씨가 어떻든 산책하러 나간다.
1년 넘게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자연의 느린 변화를 알아차리게 된다. 보통 때는 며칠, 몇 달, 몇 해가 너무도 빨리 지나간다고 느껴지지만 날마다 1시간 정도 자연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의 속도감이 달라진다. 창을 통해 날씨 변화를 어렴풋하게 인식하는 게 아니라 계절의 냄새를 직접 맡고 맛보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계절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난겨울 영국에서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스페인에 내린 폭설로 브로콜리, 상추, 호박 등 일부 채소의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식품들을 어찌나 간절히 찾아대는지 어떤 슈퍼마켓들은 고객 1인당 구입할 수 있는 양을 제한해야 했다. 지금은 브렉시트가 영국의 식품 공급에 비슷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상황이 더 악화되기만 할까 봐 걱정이 된다.
사람들이 왜 그 채소들 대신 방울양배추나 케일을 먹지 않는지 궁금하다. 이 채소들은 겨울에 영국에서 쉽게 자라는데. 왜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땅에서 온 철 지난 채소들에 그토록 의지하는 걸까? 대체 누가 1월에 그 플라스틱 같은 케냐산 껍질 콩이나 12월에 맛도 별로 없고 지구에 막심한 피해를 주는 산딸기를 사는지 항상 의문이 들곤 한다. 1년 중 어느 때라도 슈퍼마켓의 과일·채소 코너를 걸어가면 그런 수입품들이 실제 계절과 상관없이 항상 똑같은 계절을 보여주고 있어 좀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국은 아주 다르다. 나는 한국인들이 제철이 아닌 과일과 채소를 요구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가책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국 농산물의 때깔이 완벽하길 바란다. 하지만 사과는 흠이 몇 군데 있어도 맛은 똑같고 멜론은 일본인들이 집착하는 그 티(T)자 모양의 꼭지가 없어도 맛이 좋다. 나는 적어도 한국인들이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보다 1년의 각 시기를 더욱 잘 체감하고 제철 과일과 생선, 식물, 야채를 많이 접하길 바란다. 무엇이 언제 익는지, 자연의 계절 주기와의 관련성에 대한 지식은 인류가 수렵 채집인일 때는 누구나 알던 것이지만 지금은 우리 대부분 그 본능적 지식을 잃어버렸다.
일본인들은 약간 다르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은 산채가 언제 나는지, 가다랑어가 언제 가장 살이 오르는지, 밤이 언제 가을의 도래를 알리는지, 귤을 언제 딸지 알고 있다. 모든 일본인이 이걸 아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엔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며, 다른 선진 산업화 국가들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 점은 꽤 특별하다.
일본에서 오카의 집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일본의 명절 음식인 오세치 요리를 대접받았는데 손자 고야타의 도움을 받아 50가지가 넘는 재료로 만든 25개의 요리가 형형색색 펼쳐져 있었다. 당근을 얇게 잘라 꽃 모양으로 만들었고, 작은 산 모양의 감자, 더 작은 은색 물고기, 나란히 놓인 오징어 그리고 반짝반짝한 풋콩 삶은 것이 있었다. 어떤 요리에는 금박이 흩뿌려져 있었고 노란색 오믈렛도 보였으며 분홍과 흰색의 가마보코(저며서 찐 생선)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매듭 모양으로 만들어놨다. 다른 요리는 내가 모르는 요리였다. 모든 음식은 겉이 우아한 황금색과 검은색으로 반짝이고 안쪽은 빨간색인 상자에 담기거나 붉고 파란 아리타 도자기 그릇에 담겨 있었다. 손님마다 부채 모양의 황금색으로 옻칠한 그릇이 앞에 놓여 있었고 트레이에서 크리스털 사케 컵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오세치 요리에는 상징과 의미가 굉장히 많다. 청어알을 예로 들어보자. 맛국물에 졸여 만드는 ‘가주노코’라고 알려진 이 요리는 눈이 번쩍 떠지는 바삭한 식감(몇 시간 후, 이빨 사이에 낀 청어알이 하나 나오는 게 기쁠 정도였다)이 있었다. 청어알은 다산을 상징하고 다음 해에 특히 아이(혹은 손자를)를 갖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름 자체에는 이중 혹은 삼중의 의미가 있다. ‘가주’는 숫자를 뜻하고 ‘코’는 아이를 뜻한다.
식탁에 올랐던 많은 음식 중 하나는 구로마메(검은콩 요리)였다. ‘마메’는 ‘콩’과 ‘건강’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요리 이름에 재담이 있는 건 일부였고, 어떤 요리에는 시각적인 재미가 있었다. 분홍색과 흰색의 가마보코 매듭은 뜨는 해를 상징한다. 허리를 뒤로 굽게 요리한 새우는 노인을 생각나게 했다. 오세치 요리 진수성찬에는 대개 황금색이나 노란색이 들어간다. 밤은 꼭 통째로 넣어야 하는데 밤은 금덩어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어떻게 ‘얇게 자른 연근 구멍으로 미래를 본다’는 건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감자, 밤 같은 많은 오세치 음식이 유난히 달아서 놀랐다. 많은 음식 재료들이 맛술, 설탕, 식초나 간장에 끓였거나 담가둔 요리였다. 보석같이 진열된 음식에 내가 깜짝 놀란 이유는 맛도 훌륭해서였다. 예를 들어, 다시마에 보존한 도미의 감칠맛은 굉장히 놀라웠다. 생선을 다시마 사이에 끼워 두세 시간 동안 두면 생선살이 단단해지고 맛은 강렬해진다. 먹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나는 그런 요리였다.
음식 재료의 특징이나 생긴 모양을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일본인의 습관은 제철 식재료가 무엇인지 외우려고 할 필요조차 없게 한다. 너무나 강렬하게 식문화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루나와 함께 산책할 때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봄이 올 것 같은 희미한 조짐을 찾아 나무들을 살피기 시작하는 이맘때쯤이면 더 그러하다. 나는 일본인들의 계절 감각, 벚꽃 축제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듯이 계절을 음미하는 모습이 부럽다. 사실 얼마 전에 나는 가족들과 우리 집 근처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벚꽃나무들 아래로 소풍을 나가 벚꽃 축제라는 개념을 알리려고 애썼다. 이웃들은 우리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나는 몹시 좋아했다. 끝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