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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요리의 쾌락은 ‘다 함께’에서 나온다

등록 2021-04-08 04:59수정 2021-04-08 08:13

대부분 사람 필요 때문에 요리
즐기기 위한 요리 쉽지 않아

애정과 열정 갖고 노력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감동·재미 달라

다 같이 모여서 만들고, 먹고, 설거지까지…
하루 마무리하는 훌륭한 유희의 수단
일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이민혜

날씨가 슬금슬금 풀리며 여름이 손 닿을 곳까지 오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나 보다. “올해는 꼭 캠핑 가자! 신난다! 재미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그는 지금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아니면 본인도 캠핑을 가본 적이 없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텐트 지퍼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폐 속까지 상쾌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는 캠핑의 쾌감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밤에 텐트에 누워 텐트 천 위로 똑똑 내리는 빗소리와 텐트 따라 비가 흐르는 소리가 얼마나 편안하고 감미로운지 알고 그 로망도 익히 알고 있지만 캠핑이 재미있다니! 캠핑에 재미란 없다. 특히나 먹거리에 관해서는 말이다. 야외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뭔가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2~3년 전에 난 가족들과 캠핑카를 빌려 일본 홋카이도를 일주했다. 어메이징한 시간이었다. 홋카이도는 특별한 곳이었고 우리 가족은 홋카이도를 사랑했다. 음식만 빼고. 내가 캠핑카에 딸린 그 조막만한 부엌에서 어떻게든 만들어낸 음식은 산해진미가 널리고 널린 홋카이도 요리도 아니었다. 홋카이도가 어떤 곳인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미식의 고장이 아니던가! 정말 좌절이었다. 이 캠핑 밴만 벗어나면, 이 캠핑카에서 내리기만 하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신선한 채소와 가장 좋은 해산물들로 요리한 훌륭한 식당들이 즐비한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하는 이들이 있는 걸 알고 있는데, 어째서 캠핑카 안에 갇혀 파스타와 소스 한 병으로, 핫도그로 연명해야 한단 말인가. 핫도그라도 있으면 운이 좋은 날이라는 게 웬 말인가.

즐거움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즐거운 요리란, 요리의 즐거움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심각한 고찰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에게 요리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하기 싫은 잡무다. 최대한 간단해야 하며 최대한 빨리 끝내야 좋은 일이지만 요리를 그 자체로 즐거운 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대부분 우리는 필요에 의해 요리를 하지, 즐기기 위해 요리하지 않는다. 요리에 그 큰 열망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 요리가 일로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우리 집에 사는 그 누구도 샌드위치보다 복잡한 요리는 할 줄 모르므로 가끔이라도 제대로 된 건강한 요리다운 요리를 먹고 싶은데 돈도 낭비하기 싫은 날에는 내가 직접 요리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사랑을 듬뿍 담아 요리한다. 사랑을 위해서. 나는 영국인이기 때문에 사랑을 큰 소리로 말하지는 못한다. 인류애를 표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실 이게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이다. 맛있고 건강한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내가 내 가족과 내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표현 방식인 것이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게다가 요리로 신체적 테라피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나처럼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많은 이들에게 있어 두 손을 사용해서 직접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으며 “짜잔~” 외칠 수 있는 창의적인 일은 하루를 꽤 멋지게 마무리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때때로 난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 요리한다.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난 사람들로부터 받는 박수를 갈망한다. 혼자 조용히 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애의 마음도 좋고. 그래서 작게나마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질 때, 화려하고 근사하고 복잡한 무엇인가가 나한테서 나오게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신의 고객이 누구냐이다. 요리 문외한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면 그다지 많은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다. 내 처남은 아직도 내가 생크림 한 컵이랑 휘퍼와 과일 몇 조각만으로 그렇게 크고 구름같이 몽실몽실 부드러운 머랭 디저트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처남한테 주방이란 토끼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마술사의 모자 같은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어느 요리사를 잡고 물어봐도 머랭은 요리라고 할 수도 없는 쉬운 음식이다. 처남 말고 요리를 제법 해봤다 싶은 이들을 감동시키고자 할 때는 소매를 걷어붙인 채 상위 기술을 써야 한다. 그냥 소고기 말고 송아지 고기(veal·송아지도 연령별로 세분화된다) 코너로 가서 거기서 또 세심히 골라야 하며, 요리를 일단 다 해놓고 페이스트리로 싸서 오븐에 한 번 더 구워 내거나(비프 웰링턴을 떠올려보자. 고기 굽는다고 끝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아니면 요리계의 최고 난도, 디저트 끝판왕 수플레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시판 뇨끼 말고 감자부터 삶아서 포크로 누르다시피 굴려 모양낸 뇨끼나 낭투아 소스를 뿌린 퀘넬 드 브로셰(quenelles de brochet) 정도면 어떨까. 그게 뭐냐고? 프랑스 요리답게 이름만큼이나 만들기도 복잡한 해산물 소스 뿌린 곤들매기(연어과 민물고기) 만두다.

이런 요리를 대접받으면, 이런 요리가 앞에 놓여 있으면 감격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간격 맞춰 예쁘게 짠 마카롱 반죽이 오븐 안에서 부풀어 오르다가 마지막에 예쁘게 바닥에 프릴(주름)까지 만들어내는 것을 볼 때, 잘 나가다가 프릴 못 만들어내고 망해버린 마카롱과 달리 완벽하게 성공해냈을 때, 비프 웰링턴을 오븐에서 꺼내 반을 갈랐는데 바삭바삭하게 부서지는 페이스트리와 너무 익어 질기지도 않고 덜 익어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지도 않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핑크색 속살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그때의 희열은 아마 농구 선수들이 3점 슛 라인에서부터 에어 워크 해서 날아가 슬램덩크를 성공시켰을 때와 같은 기분, 화가가 200호짜리 대작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인을 해 넣었을 때와 똑같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느끼는 희열과는 별도로 그동안은 요리가 어떻게, 어디가 ‘재미’있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난 문득 깨달았다. 그 오랜 시간 주방에 서면서 내가 요리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왔지만, 사실 난 주위 사람들 방해 없이, 신경 쓸 일 없이, 그래서 최고로 완벽한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혼자서 오롯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요리하고 밖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그 많은 요리 경험을 통틀어 제일 재미있었고 그리고, 늦은 감이 있지만 난 그 재미가 다 같이하는 데서, 협력하는 데서, 뭔가를 창의적으로 만들되 그 결과물이 입으로,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날 한 가지 깨달음이 더 있었다. 사람들이 함께하면, 같이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하면 설거지마저도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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