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소주가 있다. 나는 소주가 순수한 한국 문화이며, 한국인들이 서로 친밀감을 느끼는 데 그 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 그런데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이 있을까? 바로 스납스(Snaps)가 있다. 겁내지 말고 들어보라. 투명하고 상쾌하며 알코올이 가미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열량이 낮으며 냉동실(냉장실 말고)에 두었다가 얼음처럼 차갑게 마시는 스칸디나비아의 스납스는 한겨울에 몸을 녹이는 데 제격이다. 추운 북유럽에서는 맥주를 마시기 전에 위스키처럼 도수가 높은 술을 작은 잔에 따라 한 잔 마신다. 이것을 스납스라고 한다. 뜨거운 엔진 오일처럼 끈적끈적한 액체가 목구멍 뒤쪽을 채찍으로 때리는 것처럼 넘어간다. 거칠지만 효과가 탁월한 술이다. 소주의 바이킹족 사촌쯤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엄밀히 말하면 ‘스납스’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점심과 함께 마시는 술을 말한다. 하지만 보통은 향신료와 허브를 가미한 감자주를 가리킨다(알코올도수는 32도 이상이며 50도가 넘는 것도 있다. 50도가 넘는다고 해서 보드카 취급을 하면 안 된다. 스납스는 상큼하니까).
디자인을 바꾸고 도수를 낮춰 다양한 향미를 추가하여 젊은층에게 인기를 구가하는 소주처럼 최근에는 스납스도 헤더 꽃, 산자나무, 뽕나무 등을 넣은 파격적인 형태로 생산되면서 다시 유행하고 있다. 코펜하겐 양조장에서는 인도네시아 필발을 넣은 스납스도 생산한다. 후추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필발의 열매는 특이한 향으로 유명하다. 바텐더들도 칵테일을 만들 때 스납스에 딱총나무 꽃, 라임, 진저비어 등을 첨가하는 등 이런 유행에 합세하고 있다. 노르딕 뮬(Nordic Mule) 같은 칵테일이 그 예이다. 많은 양조장이 귤껍질 말린 것, 별처럼 생겨서 달콤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나는 스타아니스, 녹나무의 껍질을 말린 시나몬처럼 계절에 맞는 전통적인 향을 가미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스납스를 생산한다.
스납스는 한국 음식과도 매우 잘 어울릴 것 같다. 스납스가 느끼한 음식, 고기류, 달콤한 음식 모두와 조화를 잘 이루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고기와 완벽하게 어울리며 졸리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서 점심에 반주로 곁들이기도 좋다. 발효 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북유럽은 비슷하다. 청어로 만든 젓갈을 빵으로 싸서 한 입 먹고 스납스를 마시면 아주 행복해진다. 스웨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청어는 태어나서 세 번 춤춘다. 처음엔 바다에서 추고, 두 번째는 식초에 절여질 때 추며, 마지막으로는 스납스를 머금은 입속에서 춘다’라는 말이다. 그만큼 청어 요리와 스납스는 환상의 궁합을 보여준다.
물론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셰리주 잔보다도 더 작은 잔에 스납스를 마신다. 중국 바이주를 마시는 잔과 크기가 비슷한데 거의 손가락에 끼우는 골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당연히 더 큰 잔에 마시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험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스납스를 애쿼빗(aquavit)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애쿼빗은 지역에 따라 ‘akvavit’ 또는 ‘akevitt’이라고 표기한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인들 중에서도 스납스와 애쿼빗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애쿼빗은 수많은 스납스 중 하나로서 딜 또는 캐러웨이를 기본 재료로 만든 것이다. 커민이 중동 요리에 쓰이는 대표적인 허브라면 캐러웨이는 유럽에서 많이 쓰이는 허브다.
애쿼빗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가장 일반적인 스납스 종류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애쿼빗(1805년에 만들어짐)은 노르웨이의 리솜 리니에 애쿼빗이다. 이 애쿼빗 상표에서는 이 술이 ‘바다에서 숙성되었다’는 사실을 뽐내고 있다. 이 방식이 환경 지속성의 관점에서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술은 오크 나무로 만든 셰리주 통에 담겨 4개월 동안 적도를 넘어서까지 항해한 후 돌아온다(‘리니에’는 영어로 ‘라인(line)’이라는 뜻이다). 리솜에서는 항해하는 동안 통에 담긴 술이 찰랑찰랑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일교차가 큰 온도 변화가 술에 풍미를 더해준다고 주장한다.
선두적으로 스납스 칵테일을 개척한 곳은 리드코엡(Lidkeb)이다. 리드코엡은 19세기 제약 실험실을 코펜하겐의 베스테르브로에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멋진 3층짜리 바다. 그곳에는 딜 애쿼빗, 크렘드카카오, 화이트 초콜릿 크림을 섞어 만든 그린앤화이트(Green&White)가 있다.
물론, 스납스 중에는 독일에서 만든 과일 향 ‘슈납스’(schnapps)를 보고도 트라우마를 일으키게 할 만한 것도 있다. 가령 복숭아, 살구, 사과 등을 넣은 것들이다. 내 경험상 그런 술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저 과일들의 원래의 맛이 무색하게도 이걸 스납스에 섞으면 마치 페인트 붓을 빨 때 쓰는 물질의 맛을 낸다. 그런 것 말고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소주처럼 그것만 마셔도 좋고 음식과 함께 마셔도 좋으며 다른 것과 섞어 마셔도 좋은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스납스이다.
스웨덴의 스납스 문화도 잊지 말자. 물론, 스웨덴 사람들과 술의 관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주류 생산을 국가가 독점하는 반면 덴마크는 자유롭게 술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스웨덴 사람들이 가진 탁월한 면이 있다. 바로 스납스 에티켓이다. 술을 따르고 잔을 부딪치고 술잔을 들어 올리며 서로 눈을 마주친다. 물론 술을 마실 때 부르는 장대한 스웨덴 음주가 ‘스납스스비사’(8월 크래프트스키바 파티의 상징)도 있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 부른다기보다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침묵을 지킨다든지, 만나면 서로 포옹한다든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고유의 문화다.
마지막 경고: 많은 스칸디나비아인은 중성 알코올에 식물, 허브, 심지어 견과류 등을 넣어서 집에서 직접 스납스를 만든다. 이런 음료 중에는 보통 사람들이 마실 수 없는 것도 많다. 만약 스칸디나비아인이 당신에게 직접 만든 술을 마셔보라고 권한다면 절대 함부로 마시지 말라. 어제 장대하게 마셔서 너무 힘들다든지,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다든지, 밤에 원고를 마감해야 한다든지 등 어떤 핑계를 대고서라도 천천히 뒤로 물러나라.
푸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