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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나에게 상처만 주는 엄마, 어떡하면 좋을까요

등록 2020-01-31 14:25수정 2020-01-31 14:35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Q1 모진 말과 행동으로 바닥으로 끌어내려
어떤 마음이어야 덜 고통스러울까요?
A1 기른 존재가 아닌 다른 한 사람으로 분리해야
자신을 지켜낸 당신은 이미 강합니다

Q2 잦은 이사와 경력 단절에 무기력해져
이제야 말 통하는 남편은 해외로 가자는데
A2 결혼 전 자신에게 돌아가고픈 건 아닐까?
나를 외면해 얻은 고통, 그대로 둬선 안 돼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Q1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1살인 대학생입니다. 제 고민거리는 바로 엄마입니다. 저는 어릴 적 듣지 않아야 했던 것들, 보면 안 되는 것들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런 환경에 제 인생을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심적으로 제가 많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스스로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커왔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저를 바닥으로 끌어 내립니다. 계속 상처를 줍니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엄마니깐, 헤어질 수도 없습니다. 이해해보려고도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음날이면 기억도 못 합니다. 어떻게 딸에게 그렇게 모진 말과 행동을 해서 상처를 주고도 기억을 못 할까요. 결국 저만 또 속앓이 합니다. 끙끙 앓지요. 이제는 정말 엄마에 대한 정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든 게 너무 억울합니다. 부모가 돼서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엄마가 상처 주는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덜 고통 받을 수 있을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엄마와의 관계에 지친 여자

A1 ‘나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엄마’, ‘모진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반복해서 주는 엄마’라는 표현을 쓰셨네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또 그 속에서 얼마나 나를 지키고 돌보려고 많이 애를 썼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당신의 아픔의 증거로 여겨져 안타까움이 밀려듭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부모나 가정환경을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이 미숙한 인격을 가진 채로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것. 부모가 응당해야 할 물리적 보살핌, 정서적 지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부모가 정말로 많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이것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고, 진심으로 자녀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부모는 이상적이긴 하나, 그런 부모를 그리 쉽게 발견하지는 못한다는 게 말입니다. 좋은 옷과 먹을 것을 제공하지만, 자녀는 ‘정서적 기아’에 시달리는 사례는 너무나 많고, 자녀의 꿈을 지원하고 독려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실현하려는 왜곡된 욕망을 발견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부모도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라서, 자신의 결점과 싸우고 자신의 고통을 손에 쥐고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존재입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당신의 어머니도, 자기 삶을 어찌할 줄 몰라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일 뿐이죠. 어머니가 건강한 내면을 가졌더라면, 딸에게 가시가 돋친 말을 하며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았겠지요. 어머니에게서 또 상처를 받게 된다면, 자신의 문제를 어쩌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독설을 내뱉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불쌍한 한 사람을 보세요. ‘저 사람에게는 저것이 최선이라니, 안타깝다’고 생각하세요. 무엇을 더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그리고 내 어머니가 그런 행동을 하는 수많은 부모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속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나를 낳았고 기른 존재가 아니라, 나와 다른 한 사람의 인간으로 분리해서 바라보는 마음이 가장 필요합니다.

물론 아무리 생각을 고쳐보아도 원망하고 억울할 만합니다. 괴로울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젠 당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어머니라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보세요. 자신을 방치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요.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낸 당신이 아닌가요. 어머니가 준 것은 상처였을지 몰라도, 당신이 일궈낸 것은 자신을 향한 보살핌이고 사랑입니다. 당신은 약하지 않아요, 이미 강한 사람이에요. 부모가 준 내적 자원은 그리 없었을지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힘들게 꽃피워낸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기억하십시오. 경제적 독립, 주거의 독립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현실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진 부모와 연을 끊고 사는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 그런 일을 겪게 되더라도, 죄책감이 당신을 괴롭히지 않길 바랍니다. 곽정은 작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Q2 저는 28살 2년 차 유부녀입니다. 자녀는 없습니다. 결혼 전 제 직업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꼈고, 경제력도 있었습니다. 출장을 자주 다니는 남편과 결혼해도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건 저를 과대평가한 거였나 봅니다. 2년 동안 3번 이사하고, 그때마다 제 커리어는 끊기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해야 했지요. 점점 무기력해졌어요. 남편은 한 달 출장 다녀오면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나가는 주기를 반복합니다. 그런 상태로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살았지요.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통해서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자기 계발을 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죠. 그런데 감정이란 게 기름에 불붙이듯 일어나더라고요. 지금 저는 이혼 서류 제출만을 앞둔 상황입니다. 남편은 제출하지 말고 기회를 달라고 해요. 귀를 닫고 듣지 않던, 제가 겪고 있던 시댁 문제도 상의하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말이 통하기 시작했어요. 외국으로 발령이 났는데 같이 가자고 해요. 새로운 기회일 거 같기도 해요. 그분과는 정리한 상태입니다. 이혼확인서를 받기 전 시작은 부적절한 것이니까요. 너무 힘들고 감정이 정리가 안 됩니다. 남편은 기다려주겠다고 합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 남자에게 미친 듯이 달려가고 싶어요. 하지만 불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느낌에 무섭기도 합니다. 대화가 통하기 시작한 남편을 두고 달려갈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과거의 제가 너무 밉습니다. 쉽게 결정한 결혼이 후회되는 여자

A2 결혼 전 자신감이 넘치던 당신이었지만, 2년간의 결혼생활이 당신의 자존감을 상당 부분 잃게 했네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나는 그런 내가 싫지는 않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평온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자존감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경력 면에서 손실도 있었으니 자존감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하셨는데요. 네, 물론 그 사람의 매력이 확실히 있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꼭 그 사람이 아니었어도 당신은 이런 관계에 빠져들지 않았을까요? 자존감을 잃은 상태에서, 외로움과 불안함에 잠식된 상태에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마치 구원자처럼 느껴지곤 하니까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결혼해서 자존감이 낮아진 나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결혼 전의 나로 돌아가는 느낌, 자신만만하고 자부심이 넘치는 한 명의 여자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었기에 더 불같이 빠져들었던 것이죠. ‘그 남자에게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세요? 정말 그 남자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고통스럽더라도 이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결혼하지 않았을 때의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닌가요?

해외로 발령이 났고 다 잊을 테니 기다려주겠다는 남편, 어쩐지 새로운 기회가 될 것 같은 당신, 두 사람 모두 혼란스러울 만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러 차례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자존감이 무너졌었는데, 해외로의 이사는 어떻게 ‘기회’가 될 것을 장담할 수 있나요? 나다운 삶을 한 번 외면해서 얻은 고통을 그대로 둔 채, 당신은 또 회피하고 달아나려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수월하게 깨닫는다면 참 좋을 테지만, 때로 인간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야 진정 나답게 살고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곤 합니다. 저 역시 후자였는데, 지금은 그 모든 일을 관통한 제 삶을 응원하고 또 애틋하게 여겨요.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셨지요? 답 대신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외국입니까, 아니면 당신 자신입니까? 곽정은 작가

곽정은 작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이 한 단계 도약합니다. 이성 관계, 사랑, 연애 고민 상담에서 벗어나 상담 분야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관계 클리닉은 1월30일 문을 엽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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