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TV) 셀럽(유명) 스타의 종말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한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이 유행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제 끝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티브이 셰프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제이미 올리버에게 확실히 악몽 같은 한 해였을 것이다. 2019년께 제이미 올리버는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결국 22개의 레스토랑을 폐업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1000명 남짓 되는 직원들이 직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버렸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잠시 제쳐놓고, 그의 존재감을 잠시 떠올려보자. 잉글랜드 동부 에식스에서 태어난 이 푸드 스타는 사람들이 요리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집에서 요리하는 풍경을 바꿔놓은 진짜배기 요리 전도사였다. 영국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제이미 올리버의 쇼 <네이키드 셰프>는 대중에게 호응을 얻었고,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아마 여태까지 봤던 요리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좋았을 것이다. 비록 10년 동안 그의 레스토랑 사업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고, ‘혼밥’ 열풍의 펀치를 얻어맞은 끝에 파산했지만, 난 올리버가 계속 쉽고, 간편하고, 똑똑한 레시피를 말해주길, 들려주길, 보여주길 바란다. 제이미 올리버는 전자레인지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그대로 돌린 후 그냥 비닐 껍질 뜯어내고 먹던 사람들에게 집에서도 원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먹어도 된다고, 먹어야 한다고 다독이고 격려해준 사람이다. 계속 그런 존재로 제이미 올리버가 남을 수 있기를. 하지만 올리버의 다른 티브이 셰프 친구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어떤 걸 주었는가? 고개가 저어진다. 셀럽 셰프의 시대가 끝난 것이라면?
최초의 티브이 셰프는 필립 하벤인데, 그는 영국 공군 취사병이었다가 1940년대에 <비비시>(BBC) 텔레비전에 처음 모습을 선보였다. 미국에서는 1946년께 제임스 비어드가 화려하게 데뷔했다. 제임스 비어드의 뒤를 이은 유명 요리사는 전설의 줄리아 차일드였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메릴 스트립이 분한 그 유명한 셰프 말이다. 이 티브이 셰프들은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러니까 요리 실력이 21세기 티브이 셰프들에게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충분조건일 뿐.
요새는 가벼운 연예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그 누구라도 뭄바이에서 한 이틀 묵으며 영상을 찍고 나면 카메라에 대고 인도 요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하려 든다. 그런가 하면 소스에 빠져 익사 직전인데도 자기가 지금 무슨 소스에 빠진 건지 모르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도 등장한다. 홀랜다이즈 소스와 베아르네즈 소스를 구분 못 하는 인플루언서다.(홀랜다이즈 소스에는 레몬주스가 들어가고 베아르네즈 소스에는 화이트와인과 와인으로 만든 식초가 들어간다.) 푸드 트럭 앞에서 포크바오(대만식 돼지고기 만두) 한입 먹어본 다음에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을 못해 안달복달하는 코미디언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최근 티브이에서 봤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매일 먹는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가르쳐주던 티브이 요리 쇼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조차 텔레비전에는 ‘약간 맛이 간’ 푸드 쇼가 차고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난 스칸디나비아에서 푸드 트렌드에 관한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우리가 어떻게 음식을 통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건 단순히 먹는 행위를 너머 좀 더 깊은 단계로 진입한 것인데, 이것을 ‘소셜 미식’(Social Gastronomy)이라 부른다. 우리는 음식과 농사와 요리를 통해 진보사회로 다시 나아갈 수 있고, 환경 문제 해결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에 공동 부엌을 만들어서 양질의 건강한 음식을 저비용으로 제공하는 것, 난민들이 그들 고유의 요리를 통해서 지역 공동체에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것, 그리고 음식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여는 것 등 소셜 미식이 해낼 수 있는 범위는 상상외로 넓다.
난 그동안 미력하게나마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국제 팔라펠 상이 잘 조직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왔는데, 시리아 난민들이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팔라펠(falafel)이 뭐냐고? 시리아나 이집트에서 매일 엄청나게 먹어대는 주식이다. 병아리콩을 다진 마늘이나 양파, 파슬리, 커민, 고수 씨, 고수 잎과 함께 갈아 걸쭉하게 만든 반죽을 둥근 모양으로 빚고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음식이다. 입안에서 자글자글하게 부서지면서 즙을 뿜어내는 그 식감이란! 때론 둥글고 넓적한 빵에 채소와 함께 넣고 둘둘 말아서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손에 쥐면 야구방망이를 들고 흔드는 것처럼 아주 묵직하다.
아무튼 세계 곳곳에서 음식 솜씨가 꽤 있다는 셰프들이 점점 자기가 속한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책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티브이 쇼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이름을 더 알리고 더 자주 대중에게 노출되기 위해서 그러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음식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먹는다는 것의 즐거움은 그 옛날 검투사들의 다툼처럼 치열한 요리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요리 대가들의 까다로운 비평이나 요식업계의 공룡을 따돌리는 데서 생기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음식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먹는 즐거움은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산산조각이 난 공동체를 다시 결속시키며 아주 심플하게 사랑을 나누는 데 있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 회사는 소셜 미식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트렌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지만, 그런 움직임이 돈이 된다 싶으면 즉시 야심만만한 젊은 인플루언서를 데려다 놓고 티브이 쇼 제작에 나설 것이다. 어쩌면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꼴이 될 것이다.
소셜 미식이란 슈퍼스타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높으신 분이 아랫것들에게 설파하는 고루한 담론도 아니다.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요, 세상을 바꾸길 원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며 먹는 이 전부를 위한 것이다.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