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을 함께 지낸 뒤 하늘로 소풍을 떠난 쪼꼬. 사진 쪼꼬 집사 제공
Q1 저에겐 사랑스럽기가 비할 데 없는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인 쪼꼬라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애교 넘치는 살가운 친구는 아니지만, 툭 던지는 애교로 심장을 멈추게 하는 요물이지요. 우리는 16년을 함께했습니다. 적도 근처의 나라에서 사는 게 꿈일 만큼 추운 것을 싫어하지만, 산책을 좋아하는 쪼사장(쪼꼬 별명) 덕분에 개집사는(물론 접니다) 한겨울 시베리아보다 더 춥다는 서울의 한파에도 산책하러 나갑니다. 개님 춥다 하시면 울면서 외투도 벗어드립니다. 기꺼이. 한겨울에도 강아지 동반 출입이 가능한 야외테이블이 있는 카페만 갑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에 떨면서 창 넘어 화목한 가족을 바라보는 모습처럼 실내에서 따듯한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부럽지만, 뭐 어쩌겠어요. 우리 개님이 함께하지 못하는 자리는 필요 없으니까요. 쪼꼬가 아파서 한 달 병원비가 200~300만원이 들어도 상관없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버는 월급을 넘지 않으니 말이죠. 그 친구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쪼꼬는 이제 저와 눈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더는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하늘로 소풍을 떠났기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할 줄 알았는데, 웃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일 년이 지난 오늘도 전 놀랍게도 웃고 숨 쉬고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떠나실 때도,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지낸 할머니가 떠나가실 때도 겪어보지 못한 아픔이었습니다.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다는 말을 처음 이해했습니다. 가족을 잃었을 때도 이보다 아프지 않았던 저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반려견을 잃어 아픈 여자
A1 사랑하는 반려동물과의 이별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군요. 이미 일 년이 지났지만 쪼꼬와의 기억을 털어놓는 내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의 문장을 쓰신 것을 보면, 당신에게 있어 쪼꼬와의 시간이 얼마나 특별했었는지 또한 그 슬픔의 여운이 지금도 얼마나 지속되고 있는지가 느껴집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감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겁니다. 하나는 반려동물인 쪼꼬를 잃었다는 순수한 상실감 그 자체이고, 또 하나는 쪼꼬를 잃은 슬픔이 조부모를 잃은 슬픔보다 더 컸다는 죄책감일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이런 상실을 경험하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의 일들을 이어가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아니겠어요.
심리학에는 ‘수용전념치료’라는 분야가 있는데요, 여기에서는 이 상실감을 ‘퓨어 이모션’(pure emotion) 즉 순수한 감정이라고 분류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보는 것이죠. 그러나 그 감정을 피하거나 통제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더티 이모션’(dirty emotion) 즉 오염된 감정으로 봅니다. 본래의 슬픔을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최초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괴로움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 수용전념치료의 입장입니다. 조부모를 잃었던 슬픔과 쪼꼬를 잃은 슬픔을 비교하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어쩌면, 당신은 쪼꼬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그것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당연히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를 스스로 떠올려, 쪼꼬를 잃은 괴로움을 줄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이것을 기억해 주세요. 우리의 외부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통제’가 가능하지요. 시험을 잘 치려면 노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를 열심히 하며, 체중감량을 원한다면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통제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슬픔을 통제하려다 죄책감이 따라붙고, 환멸까지 생겨난 것은 애초의 상실감을 줄이기 위해 당신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시도를 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상실 이후, 사람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는 단계를 거친다고 하지요. 애도를 충분히 해야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게 된다는 말도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쪼꼬를 잃은 슬픔이 아직 마음속에 있다면 기꺼이 더 느껴주세요, 그 슬픔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려는 마음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봐 주세요. 내 마음을 내가 외면하지 않을 때, 인생의 상실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경험하려고 할 때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우리에게 그 상실을 온전히 겪어낼 힘을 건네줍니다. 심리 상담과 명상으로 내면을 돌보고, 새로운 취미로 일상에 환기를 가져오는 것도 서서히 시도해 보세요. 작고 연약한 존재를 16년간 따뜻한 정성으로 돌본 당신은 정말 선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선하고 좋은 당신에게 더 좋은 시간이 허락되도록 자신을 더 다정하게 돌보기를 바랍니다.
곽정은 작가
Q2 이제 막 40대로 접어든 싱글 여성입니다. 저의 고민은 남자친구, 연인은 있으면 좋겠는데 연애 세포가 말라죽었는지 연애하기는 귀찮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땐 남들 못지않은 연애 경험을 했습니다. 때론 여왕 같은 사랑도, 때론 노예 같은 사랑도 해 봤습니다. 40대 초반의 미혼여성으로서 연애에서는 나름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은 셈이지요.
그런데 30대 중반 뜨거운 연애에서 실패를 맛본 후, 저는 지금까지 4년 이상 연애를 못 하고 있습니다. 아니, 못 한다기보다는 안 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네요. 주변에서 “이 사람 괜찮으니 만나 볼래?”라며 아무리 권해도 귀차니즘이 발동하기도 하고, 세상 남자 다 거기서 거기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서 소개팅이나 선도 자꾸 마다하게 됩니다. 제 연애 세포는 다 말라죽은 걸까요?
그렇다고 연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남자친구는 있었으면 합니다. 가끔 ‘혼영’을 하거나 ‘혼밥’을 할 때,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엔 남자친구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드니까요. 결혼하려면 집안 대 집안의 복잡한 상황이 얽혀들지만, 연애만 하면 그런 복잡함 없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친구들은 저의 이런 미지근한 반응에 어느 순간 “그래. 넌 집도 있고 멀쩡한 직장도 있으니 그 생활을 더 즐기는 것도 좋겠지”라며 더는 남자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필요하지만, 연애는 귀찮은 이 역설적인 상황,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연애가 귀찮아진 여자
A2 별의별 사랑을 다 해보고, 30대 중반에는 뜨거운 연애를 하다 실패도 맛보았는데,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더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20~30대에는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울 수 있었다 쳐도, 40살이 넘어서도 그러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더 생겨날 상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아’라는 당신의 그 마음이 진짜였다면, ‘연애 세포는 말라죽은 건가’라는 의문 혹은 자책감은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연애를 안 하고 있고, 그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었겠지요. 지나온 연애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더 이상 연애는 싫어!’라고 외치고는 있지만 당신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선 여전히 연애를 원하고 있는 겁니다. 내게 상처 주지 않을 ‘좋은 연인’, ‘좋은 관계’를요.
혼자서 잘 지내는 일은 그대로 귀하고 멋지지요. 그러나 열정과 친밀감을 나눌,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 역시 귀하고 멋진 일입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우리를 깊은 사색에 잠지게 하지만, 둘이서 하는 여행은 ‘우리’를 더 많이 웃게 하는 것처럼요. 성숙한 두 사람이 만나 깊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삶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꿔 마지않을 행복일 것입니다. 좋은 연인을 만나고 싶은 그 마음을 굳이 부정하지는 마세요.
다만 이것은 기억하세요, 혼자라는 것에 진심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내 인생에 내가 조바심을 내지 않을 때 비로소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연애나 결혼에 대해 온 신경의 주파수를 맞추지 말아야, 이상한 연애나 이상한 결혼이 내 앞길을 막지 않습니다. 연애 세포가 말라죽었다는 식의 시시한 문장들이 당신의 소중한 40대를 추억하는 표현이 되지 않도록, 당신의 지금 이 하루하루를 온전히 자신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곽정은 작가
※곽정은 작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이 이성 관계, 사랑, 연애 고민 상담에서 벗어나 상담 분야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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