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26살 취업준비생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무릎 꿇고 뺨을 맞은 적도 있어요. 부모님은 “네가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라는 말을 해서 충격이 더 컸어요. 중고등학생 때도 왕따나 은따(은근 따돌림)도 당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제 험담을 하면서 저를피하기 시작한 경험도 있지요. 그러다 그 친구는 제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지곤 했어요. 한마디로 저는 그 친구에게 ‘호구’ 같은 존재가 된 것이죠. 하지만 당시 친구라고는 그 친구뿐이어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저는 친구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눈치도 없어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고, 다수가 저를 피하니 제게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꾸 자책했습니다. ‘친구 관계에서 이렇게 힘들고 마음고생 할 바엔 나를 알아주는 남자와 연애를 하자’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저는 스트레스로 폭식증에 걸려 살도 엄청 찐 상태였어요. 외모에 자신감도 없어지고 친구 관계도 실패하니 ‘이런 날 누가 사랑해주겠어?’라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자존감도 점점 낮아졌어요. 그렇게 괴롭게 지내다가 이렇게 살다가는 저 자신이 나락으로 빠지게 될 것 같아서 혼자서 정신 승리하려고도 노력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5년 정도 회사에 다니니 눈치도 생기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 어느 정도 능력도 생겼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를 ‘은따’했던, 저를 피한 그 친구와는 친분을 유지했어요. 하지만 간혹 부딪히는 일이 있었지만 친구 없이 지내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잘 지내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만날수록 스트레스만 쌓이고 저한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깨닫고 1년 전쯤에 절교했습니다. 그 후 주변에 사람이 얼마 안 남지 않았어요. 그래도 당시에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는데 남자친구도 감정적으로 저를 너무 힘들게 하고 데이트폭력도 당했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게 너무 두려워서 그런 남자친구라도 붙잡고 싶은 상태였지요. 자처해서 을의 연애를 했습니다. 저 자신이 망가지는 것조차 무시하면서 말이죠.
저는 가족도 있고, 적지만 친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남자친구가 없으면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 연애에 끌려 다녔어요. 지금은 그와도 관계를 정리한 상태입니다. 헤어지고 제일 무서워한 건 ‘혼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감정이 무덤덤해지고 점점 괜찮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외롭습니다. 처음엔 ‘혼자란 것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말고 내가 나와 놀아주자. 그리고 자존감을 키우자. 나를 사랑하자’라고 생각하면서 이겨내려 했지요. 연연하지 않으려 했는데 쉽지 않네요. 에스엔에스를 보면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파티하고, 그나마 있는 제 소수의 친구도 약속이 있는데 저만 없더라고요. 제 인생은 뭔가 싶었어요. 어느 날 보니 저만 항상 만나자고 하고 저만 친구를 챙겨주는 식이었어요. 성격 자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데다가 주위에 사람도 얼마 없으니까 너무 외롭네요. 어떻게 하면 저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요? 연애로 마음고생 하는 건 연애를 안 하면 그만인데, 인간관계는 그게 안 되네요.
외로움을 이겨내고 싶은 사람
A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온전히 돌보거나 보호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우리에게 새겨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때로 큰 영향을 남깁니다. 고작 초등학교 6학년, 모든 것이 미숙하고 두려웠을 그 시기에 친구들로 인해 고통스러운 사건을 경험했고, 당신을 온전히 지지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할 부모는 당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믿었던 친구의 따돌림까지,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고, 당신은 그 영향을 모두 고스란히 받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당신이 경험한 어린 시절의 차가운 기억들은,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야’,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아’라는 문장들을 새겨 놓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 중 꽤 많은 사람이, 이러한 문장을 새긴 채 성인기를 맞이합니다.
스스로에 대해 자책하기,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섣불리 연애 시작하기.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야’라고 느끼는 사람이 가장 쉽게 감행하는 일들이지요. 내가 나와 맺은 관계가 빈약하니 그 갈증을 내가 타인과 맺는 관계로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자기 탓으로 돌리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 떨어진 자존감은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나의 존재를 의탁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타인이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겠어요?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섣불리 시작한 사랑은 우리를 더 다치게 하고, 마음속에 새겨진 그 문장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를 더 깊이 새기게 할 뿐이었을 겁니다. 데이트폭력을 당하면서도 그 관계를 유지한 것은, 당신이 경험한 관계들이 늘 그런 식이었기 때문이고요. 친구들의 폭력, 부모님의 방치, 친구의 배신과 이용처럼, 당신이 경험한 관계들엔 늘 상처가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나에게 타격을 주는 연애를 자신으로부터 끊어내는 것조차 당신에겐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참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세상이 얼마나 춥게 느껴졌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인정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죠. 그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지만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이상한 친구도, 나쁜 남자도 곁에 두었을 뿐이고요. 지금까지 고생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주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만 줬던 친구도 정리했고, 남자친구와도 힘들지만 정리를 했으니까요. 어린 시절의 상처에 새 살을 돋게 한 것은, 말씀하신 대로 5년간의 회사 생활 덕분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능력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성취가 자존감을 채워주었을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이것을 기억하시길 권합니다. 자존감은, 자존감을 키우자는 생각만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어떤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삶을 하루하루 정성스럽게 살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키워지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라는 것을요. 일하는 사람으로서 열심히 살았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힘’이 커진 것입니다. 아직 완전하지 않고 불안정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당신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열심히 살고 있고 이것이 당신의 전체적인 인생에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제는 조금 더 자신의 몸과 마음, 일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합니다. 에스엔에스를 보며 남들의 가장 화려한 면과 자신의 가장 초라한 면을 비교하게 되는 건, 내가 나와 맺는 관계가 그리 돈독하지 않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단지 ‘자존감을 키우자, 나를 사랑하자’라는 생각만으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요. 당신 말대로 그건 그저 ‘정신승리’에 불과하죠. 내 삶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남들의 일상에 눈을 돌리고 싶어질 때마다, 당신의 내면으로 안테나를 돌리는 작업을 시작하길 바라요. 여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것은 개인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고, 당신은 이 주제에 접근하기까지 비포장도로를 어렵게 지나왔네요. 개인 상담이나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 다양한 심리학책을 읽는 것, 짧게라도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는 것,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쓰는 것,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외면했던 당신의 존재를 돌보는 구체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바라왔던 따뜻한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클 거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당신이 활력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시고 그것에 일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추천해요.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복한 하루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다들 안 그런척하지만, 사실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외로움을 느낀답니다. 그건 잘못도 아니고, 벌도 아니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아무에게나 줘버리지 마세요. 외롭게 서 있는 벌판의 나무에도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지요. 당신이 당신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열매들을 맺어 나갈 때, 당신 곁은 좋은 사람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외로움을 기꺼이 경험하는 사람만이,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사는 법이랍니다.
곽정은 작가
※곽정은 작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이 이성 관계, 사랑, 연애 고민 상담에서 벗어나 상담 분야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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