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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가장 맛있는 피자 찾아 삼만리

등록 2020-03-13 16:03수정 2020-03-13 16:10

그 나라 전통 음식 먹는 게 내 규칙
아이들과 함께하면 그런 룰 깨져
가장 고르기 쉬운 건 피자

한국 피자는 부침개 “맛 좋아”

이탈리아 나폴리 피자는 최고

만드는 것보다 식당 찾는 게 좋아

나는 여행할 때 반드시 지키는 규칙이 있다. 한국이든 프랑스든 남아프리카이든 그 어느 곳을 가도 현지 음식만 먹는다. 서울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간다거나, 도쿄에서 중국 음식점을 찾는다거나 브라질에서 스페인 요리 전문점을 간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오로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를 보기 위함이다. 난 내 위와 장을 통해서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고수하는 이 규칙을 아이들과 함께할 때는 도무지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직업 특성상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밖에 없는데, 난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주 내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고 노력한다. (안 그랬다간 걔들 코빼기도 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내가 신봉해 마지않는 ‘신성한’ 여행지 음식 선정 규칙을 종종 깨고, 외국에서 그 나라 음식이 아닌 다른 나라 음식을 먹는 이유인데, 대개 한 아이템이 자주 물망에 오른다. 피자. 피자는, 아니 피자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뭘 먹어야 하는지 머리 싸매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다.

아직 한국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본 적이 없지만, 걔들이 한국 피자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 그리고 난 한국식 피자에 대해서 나쁜 말은 단 한 줄도, 아니 한 마디도 쓰지 않겠다. <한겨레>에 내 이름을 딴 연재 코너가 있고 정기적으로 칼럼을 싣는데, 내가 그 정도 센스가 없을 리가 있나! 그 정도 바보는 아니다. (게다가 한국인들이야말로 피자를 발명한 장본인들 아닌가! 맞지? 부침개 말이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이 말은 해야겠다. 한국인들! 당신네 피자 토핑 재료 중에 어떤 것은 정말 ‘아방가르드’하다고. 난 피자에 파인애플이랑 햄이 올라가 있으면 참 고역스럽다. 파인애플이랑 햄은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흔히 올라가는 토핑거리지만 말이다. 그런데 고추장과 불고기 토핑도 심상치 않지만 딸기, 달팽이, 크림치즈와 코코넛이 올라가는 피자를 한국 피자 전문점 메뉴판에서 보았다. 아, 한꺼번에 올리지는 않더라.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말이다. 그리고 딸기, 달팽이, 크림치즈, 코코넛 등이 함께 토핑된 피자가 등장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가장 맛있는 피자를 먹고 싶다면, 이탈리아에 가서 현지 피자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다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이탈리아를 찾아가는 게 맛있는 피자 한 조각을 보증해주는 것이냐 묻는다면 ‘글쎄올시다’라고 답하겠다. 로마의 피자란 당혹스럽게도 이류의 맛이기 때문이다. 베이스 도는 너무 두꺼운 데다가 토핑도 참 너무하더라.

아니, 피자 성지 순례는 궁극적으로는 나폴리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나폴리, 위대한 반죽 판이자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도시의 쓰레기통이라 할 수 있는 바로 그곳에 최근 갔었다. 난 아말피 해안을 따라 어슬렁거리고 베수비오산을 따라 빙빙 돌다가 나폴리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나폴리의 심장에서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피자 먹기’에 도전했다. 진실은 전 세계 여행지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가장 맛있는 피자를 먹었다는 것이다. 나폴리 여행안내서 어떤 것을 집어 들어도 나오는 나폴리 중심가에 위치한 레스토랑들과 프레지덴테나 폴로네처럼 크루즈 여행객들과 함께 줄 서서 한 시간 기다려 먹어야 하는 그런 식당부터 교외 지역 숨은 맛집들만 골라 다니는 ‘푸드 너드’(음식 집착인) 사이트에서 별점이 높은 레스토랑까지 다녔다. 5일 내내 점심으로, 그리고 저녁으로 먹었던 모든 피자가 완벽했다. 게으른 관광객을 곤란에 빠뜨리는 최악의 피자마저 완벽했다.

한번은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폼페이 입구가 보이는 포장도로에 놓인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식구들과 함께 피자를 먹은 적이 있다. 로마 관광지 엽서를 파는 잡상인들과 소매치기들과 매연 가득한 한복판에서 먹었던 그 피자는 ‘맙소사’였다. 그 피자는 내가 먹었던 피자 중의 최고였다! ‘내돈내산 내먹최피!’(내돈 내고 산, 내가 먹은 최고 피자!)

피자는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베이스가 근사하게 바삭바삭해야 한다. 화덕 안에서 도는 화산처럼 부풀어 올라 터질 듯 말 듯 하고 때로는 멋지게 탄 거뭇거뭇 그을린 자국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덜 익은 밀가루, 이스트의 생반죽 냄새가 나면 그 피자는 망친 것이다. 그리고 아주 얇고 고르게 바른, 시지만 과일 향도 부드럽게 맴도는 토마토소스도 있어야 한다. 톡 쏘는 냄새가 신선한 버팔로치즈 덩어리는 토마토 바다의 뽀얀 섬처럼 보여야 하며, 바질 잎 두 장이 올라가는 건 아예 규칙으로 정해놓아야 한다.

참, 나답지 않은 일이긴 한데 난 집에서 ‘내먹 최피’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아니 사실, 난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일단 장작을 때야 하는 오븐이 필요하다. 오븐은 당연히 ‘메이드 인 이탈리아’, 이탈리아 회사인 페라라(Ferrara) 제품이 있어야 하는데 8000유로(한화 1000만원대) 정도 한다. 피자 반죽을 만들 밀가루의 종류와 밀가루의 질도 발효 시간만큼이나 피자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요소다. (발효는 72시간 언저리를 맞춰야 한다.) 게다가 물, 장작으로 사용할 나무와 부엌의 온도와 습도까지 완벽해야 하는데, 이들은 질 좋은 피자를 만드는 데 제 목소리를 내는 요소들이다. 그러고 나서 토핑에 쓸 토마토 종류를 골라야 하는데, 토마토는 베수비오산 중턱에서 재배한 마르차노(San Marzano) 토마토여야만 한다.

물론 이걸 다 갖췄다 할지라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노고를 하는 대신에 지구 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찾아다니는 게 낫다. 이탈리아 지도를 들고 베수비오 화산을 중심으로 대강 80㎞ 거리까지 동그라미를 그려 넣자. 거기에 가서 피자를 주문하는 것이다. 장담컨대 살면서 먹었던 그 어떤 피자보다도 맛있을 것이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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