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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채집이 세련된 트렌드라고? 독미나리 뽑다 죽을 뻔!

등록 2020-03-26 09:24수정 2020-03-26 11:01

마냥 구미 당기는 일, 채집
최근 고급 레스토랑도 활용
전문 채집인이 되려면 시간 등 투자 필요
하지만 유행과 함께 거센 반발도
채집, 자연 훼손 등 문제로 인식
채취하다가 독미나리 먹을 뻔한 나
일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이민혜

처음에는 마냥 솔깃했다. 아니, 어디를 봐도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어슬렁어슬렁 한가롭게 교외에 산책하러 나가서, 아니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문 열고 밖에 나가서 가까운 공원이나 하다못해 도로변 길거리에서 저녁거리를 쉽게 얻어 올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진 일도 없을 테니까. 온갖 딸기류를 따고 쌈채소들을 얻고, 은행이나 개암,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각종 견과류를 수확하고 나무 밑동에서 자라는 버섯을 똑똑 따서 아름다운 왕골 바구니에 담아온다고 생각하면? 채집 말이다. 생태계 교란종 가재나 무섭도록 번져 영국을 집어삼키고 있는 일본 잡초인 호장근을 따서 온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그 호장근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던 영국은 일본에서 호장근의 천적 벌레를 수입할 묘책을 내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겨레> 기사 참고)

먹거리 채집은 전 세계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의 일상생활이었다. 언제부터였냐고 한다면 “오래전부터”라고 답해야겠다. 교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자연 속에서 먹거리를 찾아내는 일을 사랑하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철에 맞는 식자재들을 구해와 꽤 잘 조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 같이 시간을 돌려보자.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부족했던 결핍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한국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채집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 채집의 기억과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지 않고 없어져 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2000년대에 들어서서 뜬금없이 먹거리 채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같지만 아니다. 유행이 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아마 1~2년 정도였던 것 같다. 조금 ‘핫’하다는 레스토랑에 가면 달래(참고로 달래의 영명은 wild garlic)와 엘더베리로 맛을 냈다는 설명이 버젓이 메뉴판에 적혀있다. 그 옆의 경쟁 레스토랑에 가면 선갈퀴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아무리 이름이 바다 상추여도 그렇지, 태평양 바닷가에서 자라는 관목을 뽑아다가 수프를 끓여놓질 않나, 하여간 대단했다. 달팽이는 물론이요, 갈매기 알에, 심지어 정체 모를 버섯과 이끼까지.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수확 철이라며 인기 레스토랑 밖에 세워놓는 세움 간판에 ‘오늘의 스페셜 메뉴’로 당당히 올라가는 것이다.

아마 이런 경지까지 안 가는 게 오히려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와 우리 모두를 위한 윈윈 전략으로 보였을 테니까. 자본주의를 거부하다 못해 공업화로 이루어진 식량 생산체제와 대기업을 부정하는 이들은 밖에 나가 시간을 즐기고 소중한 지갑까지 지킬 수 있는 채집이 중요한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난 곧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의 이치대로 전문 채집인의 경지에 오르려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이다. 금전적인 투자가 아니라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신체적으로는 절대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있어야 하며, 어떤 때에는 옛날, 진짜 채집 시대부터 사용하던 단순무식함까지 동원해야 한다. 황소랑 맞닥뜨려야 할 때도 있을 테고 쐐기풀에 얽히고 긁혀 곤경에 처할 수도 있으며, 사람들의 비웃음은 물론이요, 때로는 성난 농부들까지 상대해야 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채집 길을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이 계속될지라도 스스로를 다잡는 인내심 역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이 유행이 휩쓸기 시작하자 곧 거센 반발이 몰려왔다. 채집 열풍이 감당 못 할 지경이었다. 공원과 모두를 위한 올레길, 둘레길이 벌거벗겨지면서 말이다. 나무 둥치에서 자라고 있던 버섯들을 조심조심 기둥만 떼어가는 식이 아니라 뿌리째 뽑아가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자연에만 온전히 생존을 의지하고 있는 동물들은 어쩌란 말인가! 자연은 사람과 동물 모두가 넉넉하게 쓸 만큼 주지 않는다. 인간이 싹쓸이해가면 새들은 어쩌란 말인가! 사람은 도토리가 없어도 되지만 다람쥐는 도토리 없이 못 산다!

개인적으로 난 도시에서 하는 채집이 특히 걱정된다. 이유는 채집 환경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지나야 대로변 공해물질로부터 안전한 먹거리를 채집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개들이 눈 오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한편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갔지만 언제나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던 나의 야생 버섯 채집을 둘러싼 모험은 특히 나를 절망에 빠뜨렸다. 드디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우연히 손바닥만 한 버섯을 발견하고 첫 수확에 성공했을 때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환희와 감동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하면 향과 맛은 없고 질겅질겅 기분 나쁜 식감만 남더라. 채집 산책 중 가장 많이 땄던 이파리들은 인간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썼다. 달래라, 음! 솔직히 말해서 재배한 마늘이 달래보다 맛있지. 내 말이 맞지 않는가?

먹거리 채집 동호회를 그만두기로 한 날, 채집에 대한 나의 모든 기대와 희망과 로망을 버리게 된 그 순간이 떠올랐다. 경험 풍부한 전문가와 함께 이웃들과 집 근처를 산책하며 ‘프로 산책러’, ‘프로 채집러’가 돼볼까 하고 기웃거리던 날 중 하나였다. 그날 채집 나들이가 끝날 무렵, 비록 알량하기 짝이 없지만 새로 얻은 지식에 한껏 고무된 나는 무릎을 꿇고 프릴이 자글자글하게 붙은 예쁜 풀을 뽑았다. 그 예쁜 풀은 꼭 파슬리 친척뻘쯤 되는 허브 같았다. 난 아주 자랑스럽게 산책 및 채집 전문가에게 수확한 것을 들이밀었다. 내가 뽑은 그 풀은 내가 사는 집 바로 밖에 있는 테라스에서도 자라는 것이라서 특히 더 흥분했던 것 같다. “오, 독미나리!” 전문가가 아주 쾌활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한 주먹만 있어도 마을 하나를 몰살시킬 수 있답니다.”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꽤 자주 쓰던 독초랍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 자리에 그가 없었더라면, 난 그 예쁜 독초를 씹었을 것이다. 난 정말 진지하게 무슨 맛이 나나 씹어보려고 했다. 그랬으면 아마 이 글은 다른 사람이 쓰고 있겠지. 난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난 슈퍼마켓을 간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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