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 작가가 이성 관계, 사랑, 연애 고민 상담에서 벗어나 상담 분야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Q1 저는 20대 초반 여자입니다. 제 고민은 저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착한 사람은 이래야 해,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식으로 사고했어요. 그래서인지 그 잣대가 이젠 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가 생기면 그와 관련해서 나의 책임은 없는지 스스로 검열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가 대두하면 제가 옛날에 분리수거를 안 한 적이 한번 있었는데, 그 일이 떠오릅니다. 그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그 이후로는 환경 문제 관련 글만 봐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습니다. 그럴 때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곤 합니다.
내가 이런 나쁜 사람이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면 모두가 절 떠나갈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주제를 바꿔가며 주기적으로 찾아옵니다. 20살 때부터였어요. 집에서 독학 재수를 하면서부터였지요. 부모님께 이런 점을 털어놓자 “사람들 다 그러고 산다”, “네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괜찮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치셔서 저에게 화를 내시기도 합니다. 점점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와 새로운 일이 힘들어집니다. 전공하고 있는 학문의 특성상 사회적 문제를 다뤄야 할 일이 많은데, 공부에도 지장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H6자기검열이 힘든 여자
A1 결론부터 이야기할게요. 당신은 사회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제 의견은 다릅니다. 사회문제를 중요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옳다, 그르다’라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온 그 태도가 원인입니다. 당신은 ‘엄격한 기준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등분해 생각하는 것’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네요. 사회에 관심이 많으면 얼마든지 유연하고 수용적인 태도로 사회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관심사가 문제가 아니라, 외부 상황에 대한 당신의 태도가 이 불편한 마음의 원인입니다.
뇌의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사고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라도 사람이 자주 지나다니다 보면 길이 나고, 그 길이 점점 넓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아마도 당신의 이 검열적인 사고패턴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당신에게 반복적으로 일어났을 것이고, 그렇게 된 데에는 분명 반복적인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을 추측해볼 수 있어요. 사실 어렸을 때 양육자가 아이에게 보여주는 태도가 이런 사고패턴이 정착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지요. 전문 상담자와 개인 심리 상담을 진행해보면, 어느 시점부터 이런 사고패턴이 생겨났는지 파악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는지 알면, 자신의 사고패턴을 훨씬 객관적으로 보는 눈도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 재수라는 심적으로 힘든, 그리고 ‘합격(옳다)’과 ‘불합격(나쁘다)’이라는 무엇보다 강력한 이분법적 상황에 인생 전체가 놓이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사고패턴은 더욱 강화되었을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서 자기 집착의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죠. 오로지 자신에 대한 강박적 집착에 빠져있고, 그러니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회문제는 도저히 생각할 힘조차 없게 되죠. 삶의 중요한 것들은 놓쳐 버린 채, 자신이 만들어둔 작은 방에 스스로의 의식을 가두고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입니다.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넌 나빠, 모두가 떠날 거야’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올라올 때 그것에 압도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압도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관찰’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어요. 혹시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한 생각과 감정에 대해 좋다 나쁘다 판단과 평가를 하지도 않으며 단지 ‘이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다정하고 친근한 시선으로 지금 현재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부릅니다. 안 좋은 자세로 앉는 버릇 때문에 허리 디스크가 생긴 사람이, 또 안 좋은 자세로 앉으려는 자신을 관찰하고 재빨리 자세를 고쳐앉는 것과 비슷하죠.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려고 할 때마다, 그 감정에 빠지려는 자신을 그저 관찰하는 것입니다. 판단과 평가 없는 다정한 관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파워풀해서, 우리가 자주 빠져드는 감정과 생각의 패턴을 무력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마음챙김’에 대해 좀 더 공부하시고(책과 논문이 이미 많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적용해보세요. 그리고 꼭 전문 상담자와 만나 지금의 이 고민을 공유하고 나도 몰랐던 내 마음에 밝은 손전등을 비추는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스스로 마음이 편해지고, 내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훨씬 편안해질 거예요. 당분간은 죄책감이 당신을 괴롭히겠죠. 그래요, 당신은 조금 나쁜 구석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도 다 그만큼은 나쁜 구석이 있어요. 그걸 알고 괴로워하는 당신은, 적어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시간이 지나 ‘이런 때가 있었지’라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당신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작가
Q2 안녕하세요. 저는 4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저의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 때문에 고민이 생겨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30대 후반부터 연애를 못 하고 있습니다. 30대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연애를 이어왔는데, 그 뒤로 뚝 끊겼어요. 저는 스스로 생각하길 ‘연애가 필수는 아니지’ 하며 지냈어요. 실제로 저의 생활이 크게 불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나도 친구 같은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요. 정말 문득 누군가 내 편이 있었으면 하는 잔잔한 외로움을 느낍니다. 친구도 여럿이지만, 그걸로 채워지지 않는 게 있더라고요.
소개팅도 끊겨가는 마당에 얼마 전 누군가를 소개받았습니다. 만나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무엇보다 ‘수다’ 떨 듯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상대방도 저에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 만남 뒤 더는 연락이 없더군요. ‘괜찮은 사람’이었지,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저도 더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더 연락을 해보고 그만뒀어야 했을까요? 나이를 이유로 조급해지고 싶지 않은데, 점점 저의 선택지는 줄어들 것만 같아 조바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바심이 나는 여자
A2 당신의 편지를 읽고 문득 저의 20대와 30대를 돌아보았어요. 연애가 마치 지상 과제인 듯 열심히 한명이라도 더 만나보려 살았던 20대와 어떻게든 내 인생의 정착지 같은 사람을 찾으려고 애를 썼던 30대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지금은 어떤가 보니, 당신처럼 잔잔한 외로움을 느끼긴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려 애를 쓰지는 않는 제 모습이 보이기도 하네요. 40대란 그런 나이가 아닌가 싶어요. 연애가 좋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어떤 관계에 아주 열정적으로 빠져들지는 못하는 그런 나이, 상대방에 대해 내가 참을 수 있고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기준이 아주 확고해져서 ‘어 아닌데?’라는 생각이 조금만 들어도 별 타격 없이 그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나이요. 작은 불씨라도 어떻게든 살려내던 사람도, 인생의 중반에 다다르면 작은 불씨 정도는 그저 방치하고 꺼지게 그냥 두는 일을 더러 하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때로 ‘연애 세포가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데, 40대는 그냥 그 잔잔한 외로움도 인생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나이라고요. 자, 당신도 40대가 되었지만, 당신이 만나는 사람도 그 나이 또래일 테니 예전보다 적극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적극적인 성격의 남자였다면 이미 결혼을 했겠죠.) 그리고 솔직히 우리끼리 이야기이지만, ‘이 사람이다!’ 싶어서 만난 사람이라고 뭐 특별히 다르긴 하던가요? 당신이 정해야 할 것은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판단이 선 경우에 한 번 더 연락할 건지 말 건지 자기 인생의 태도를 정하는 것뿐입니다. 남자 눈에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 건 이미 많이 해봤으니 이제 그만하고요. 그리고 나한테 관심 없다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쯤 한 번 웃고 지나갈 나이가 또 마흔 아닌가요?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세요, 눈치 보면서 살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고, 조바심을 내기에는 당신이 가진 그 자유가 너무 귀하니까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