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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햄스터 따라 하는 거냐” 사재기 조롱하는 유럽

등록 2020-05-01 12:28수정 2020-05-01 12:36

한국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
다른 나라는 심각, 먹거리에도 치명타
사재기는 비난받지만, 필요한 생존기술

비축할 때 식탁의 큰 그림 그릴 필요 있어

기계화된 농장이 아닌 소규모 농장 걱정돼

‘최애’ 하는 아시아 재래시장도 없어질까 걱정

일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이민혜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있다. 전 세계는 당신들을 보며 본받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코로나19가 우리의 먹거리, 우리가 기르고 재배하는 식품과 이 먹거리를 유통하는 과정과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상점까지 전례 없는 대규모로, 다방면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축하기와 쟁여두기는 이해받기 힘든 기술이다. 독일에서는 햄스터 따라 하는 것이냐고 조롱을 받기 일쑤이며 내가 살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먹을 것을 잔뜩 물어 볼이 터질 것 같은 햄스터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놀리든 간에 비축은 충분히 생각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계획도 잘 세워야 한다. 내 쇼핑 리스트에는 내 가족을 일주일간 먹여 살릴 수 있는 품목이 촘촘히 적혀 있다. 이제 그 품목들은 냉동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닭고기, 고기 다진 것, 각종 콩류와 냉동 시금치 및 냉동베리류와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각종 냉동 베이커리류 식품들까지. 맞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파스타를 샀고 파스타에는 필수인 토마토소스를 만들기 위해 깡통 토마토도 사는 것을 잊지 않았다.(어쩌면 마늘 파우더를 쟁여둬야 할지도 모른다. 신선한 생마늘을 구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금과 각종 식용유도 잊지 말도록. 이 두 가지 아이템 없이 만들 수 있는 음식이란 참으로 드물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설탕도 필수 아이템이다. 비축에 성공하려면 전체 식사 메뉴에 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개별 품목에 집착하지 말고 말이다. 그래서 잡곡 코너에 놓여 있는 각종 콩류와 깡통에 든 병아리콩을 사두었다. 당연히 쌀도 샀다. 아, 그리고 준비해둘 품목 리스트 마지막엔 휴지도 있다.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 화장실 휴지 말이다. 상황이 정말 안 좋아져서 최악으로 치달으면, 그래도 나에게는 대책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별로 관계가 없을 수도 있지만 ‘먹거리’에 관한 고찰을 하나 더 하자면 비타민 보충제를 먹어라. 비타민의 효과를 믿든 안 믿든 말이다. 매해 겨울 나는 그해에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에 걸렸고, 그럴 때마다 꼼짝없이 심하게 앓았다. 침대에 누워 평균 3~4주 끙끙 앓으며 꼼짝도 못 했다. 이건 나한테는 일종의 연례행사였다. 아내는 내게 비타민을 좀 먹으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난 아내에게 비타민 섭취가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를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는 증거 자료들을 들이밀곤 했다. 비타민제를 믿는다 치더라도 내 평소 식사의 양, 유기농 식품 위주로 구성된 식단과 패스트푸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식습관만으로 이미 난 비타민 보충제 따위는 없어도 충분할 터였다. 하지만 혈액검사 결과는 달랐다. 결국 내게 심각한 비타민D 부족, 아니 부족을 넘어선 결핍 상태라는 판정이 나왔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우리 몸은 다른 비타민들을 처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면역 체계는 속수무책이었을 테고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나는 매일 아침 비타민 보충제를 한 줌씩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난 내 목숨을 걸고 모험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올해는 지금까지 괜찮다.

난 또 앞날을 그려보고 있다. 북부 유럽은 채소와 과일 등의 신선 식품에 대해서는 대부분 남유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작물들은 변함없이 나고 자라겠지만,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가지, 토마토, 시금치와 각종 샐러드용 채소를 따서 대륙을 가로질러 이송할 일을 담당할 인력은 충분하지 않다. 난 진즉에 씨를 몇 개 뿌려놓았다.

내가 아는, 곡류를 주로 재배하는 농부들, 옥수수·밀·유채씨 등을 생산하는 이들은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미 충분히 기계화가 되어 있고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수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경작지를 관리할 수 있으므로. 내가 정말 걱정되는 이들은 과일 농사를 짓는 이들이다. 사과 농부, 딸기 농부, 블루베리 농부, 포도 농부와 복숭아나 자두 등의 핵과 과일을 재배하는 농부들 말이다. 이 과일들은 손이 정말 많이 간다. 노동집약적인 농장들은 꽤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 덕분에 이윤을 내는 먹거리 관련 분야 중 하나는 슈퍼마켓일 것이다. 몇 주 전부터 매출이 가파르게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길은 이보다 영세한 규모로 일하며 ‘장인정신’으로 임하는 지역 빵집, 쇼콜라티에, 지방 농산물 판매업자들, 소규모 와인 생산자들, 바이오다이내믹 기법으로 농사짓는 모든 이들을 향하고 있다. 안전망이 없는 이들은 수확할 때, 그리고 이렇게 만든 제품들을 유통시킬 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시아의 ‘웻 마켓’(wet market·신선한 농산물이나 부패하기 쉬운 식품을 파는 시장으로, 전자 제품 등을 파는 ‘건조한 시장’과 구별됨)에 관한 고찰이다. 살아 있는 동물이든 생고기든 살 수 있고 때로는 각종 동물을 우리에서 꺼내 그 자리에서 바로 도축해주기도 하는 재래시장은 혹자에게는 축축하고 비위생적인 시장이겠지만, 내게는 다르다. 지구 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다. 중국에 갔을 때든, 베트남 여행을 했을 때든, 한국을 방문했을 때든 이 웻 마켓은 내가 그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찾던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바로 그 시장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곳 사람들이 뭘 먹고 사나만 보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취향, 역사, 기후, 지리 전반을 꿰뚫을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있는 그곳, 이보다 더 사람을 매료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이러스가 이런 시장 중 한 곳에서, 야생동물 거래가 이루어지는 우한에서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물론 어디까지나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슬프게도, 비극적인 것은 문화의 일부였던 그 시장들이 앞으로는 더는 존속하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아마 이전보다 더 따분한 세계,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동질화된 세계로 가는 한 보를 내딛는 것이겠지만, 부디 이 따분한 세계로 가는 것이 좀 더 안전한 사회로 가는 결실을 보기를 희망한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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