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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딱 한 입만 줄래?…코로나19 시대 사라진 식문화

등록 2020-05-15 11:16수정 2020-05-15 11:48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코로나19가 부른 혼밥 문화

이전에도 이미 혼밥 즐긴 나

한국과 일본의 밥 문화 비교해보니
혼밥은 일본, 여럿이 먹는 건 한국

내 욕구대로 모든 게 가능한 식사
‘슬기로운 혼밥 생활’ 시대 열려

오늘 밤 외로우신가요? 적적한가요? 쓸쓸한가요? 뭐, 그렇다고 한들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건가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만든 격리의 시대를 맞이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혼자 집에서 밥 먹는 법을 배우려고 고군분투 중일지 상상이 간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지금보다 행복했던 시절, 그때도 난 웬일인지 혼자 레스토랑에 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고 행복했다. 사실 혼자 가는 것을 더 선호한 편이었다. 같이 식사하러 간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옷차림으로 암호 해독을 해 그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이지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혼자 가면 적어도 그 시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레스토랑이 텅 비어 있을 때 내 곁에는 언제나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한 책이 있었다. 그 책 때문에 휴대전화에서, 그리고 휴대전화 액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끔찍한 빛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모바일 기기 액정에서 나오는 불빛은 레스토랑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얼굴 밑에서 올라오는 시퍼렇고 핏기 가신 불빛은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손님들 얼굴을 공포영화에 나오는 희생자처럼 보이게끔 했다.)

난 코로나19 시대가 열리기 전에도 내 직업 특성상 전 세계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밥 먹었던 경험이 꽤 많다. 그랬기 때문에 난 누구든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먹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깨달은 바가 있다. 저녁 시간에 당당히 혼자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가 정찬을 먹는 일은 나라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느낌이 꽤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혼밥을, 그것도 저녁 혼밥을 먹는다는 것은 한국에선 그다지 통하지 않는 일 같았다. 출간할 책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 차원에서 한국에 머문 적이 있다. (기대하시라. 한국에 있는 동안 난 한국의 동서남북을 다 헤집고 다녔고 새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런데 내가 부산에 갔을 때든, 속초에 있을 때든, 광주든 서울이든 관계없이 한국의 어떤 식당에 들어가도 같은 경험을 했다. 내가 “자리 있냐”고 물으면 웨이터(웨이트리스도 마찬가지로)가 예외 없이 내 어깨너머를 훔쳐보고는 ‘동행인은 어디 있냐’는 표정을 짓곤 했다. 혼자, 그것도 저녁 시간에 당당하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당신네, 한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없는 것 같더라. 문전박대당한 곳은 한 군데도 없지만 말이다.

이제는 이해한다. 한국인들은 정말 전 세계가 다 알 정도로 사회적인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은 좀 다르다. 일본 사람들은 혼자 저녁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같이 먹는 것보다 혼자 먹는 걸 더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일본의 음식점들은 혼밥족들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지구 상에 혼자 저녁 먹으러 온 사람들을 위한 레스토랑이 일본보다 더 잘 마련된 나라는 없을 것 같다. 초밥집 카운터든, 라면 전문 체인점의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서양식 작은 의자)이든, 하다못해 가이세키 음식들까지도 혼자 식사를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구성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저 사람은 왜 혼자 밥 먹으러 온 것일까’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는다. 여러 명과 온 이와 똑같이 친절한 응대를 받는다. 주문이 후순위로 밀리는 일 없이 섬세한 배려도 받는다. 그리하여 똑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영국에서도 혼밥의 인기는 늘어나고 있다. 레스토랑 예약 웹사이트인 오픈테이블에 따르면 1인석을 예약하는 건수가 2014년 이후 지금까지 160%나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트렌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작은 트라토리아에 들어갔을 때다. 물론 혼자였다. 나는 식당에서 가장 어두침침한 구석자리에 배정받았다. 스페인에서 타파스를 먹으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타스카에 가든, 메손에 가든 그 어떤 타파스 바에 가도 ‘나 홀로’를 반겨주는 곳은 없었다. 타파스는 알폰소 10세가 백성들한테 빈속에 와인을 먹지 말라고, 꼭 요깃거리부터 먹어 속을 보호하라고 아예 법으로 못 박아서 생긴 배려의 음식이라던데, 배려는커녕 화장실 앞 구석 자리에서, 입구 근처에 앉아서 누가 들어올 때마다 찬바람 맞으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몇 시간씩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내 음식, 내 물, 내 계산서를 찾아 결국 웨이터 앞에 서서 ‘나 여기 있노라’고 알려주곤 해야 했다.

저녁 혼밥이 어째서 일본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한국인들보다 겉으로나마 자신만만하고 행복한 것인가? 아니면 더 고립되고 외로운 것일까? 난 아마도 둘 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다 보면 어딘지 겸연쩍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미쉐린 가이드> 별이 반짝이는 비싸고 고상한 프렌치 레스토랑에 갈 때면 그렇다. 아마도 레스토랑 측에서 ‘호스피탈리티·접객 서비스’를 고민하던 끝에 이상한 해석을 내린 결과일 것 같은데, 어떤 셰프들은 레스토랑 홀을 고요하다 못해 침울한 분위기로 세팅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레스토랑에 온 손님들이 자기네가 만든 음식을 경건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도록 하니까. 그런 곳은 아무리 나라도 참기 힘들어서 혼자 가는 것을 되도록 피하려 한다.

나는 혼밥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주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촌스럽다는 둥, 고기 먹을 줄 모른다는 둥,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안 들어서 좋다. 남들이랑 있을 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도 한다. “스테이크 웰던으로 바싹 구워주세요!” 디저트를 두 개 주문한다든가, 와인을 반병만 시킨다든가, 눈치 안 보고 한다. 이런 일은 사실 전부 당신 혼자만을 위한 주문이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게다가 누가 먹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볼 필요도 없다. 자기 식사가 끝나면 동행한 다른 사람이 접시를 비울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식후 커피를 시킬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누가 맛만 보자며, 딱 한 입만 달라며 당신이 주문한 음식을 대놓고 훔쳐 먹는 꼴을 안 봐도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보통 한입으로 끝나는 상식적인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내 접시에서 이제 그만 손 떼!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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