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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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저는 30살이고 애인은 7살 연상입니다. 3년째 연애하고 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결혼을 할 줄 알았어요. 만나는 순간부터 행복한 일만 있었거든요. 연애 기간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사는 곳이 달라 장거리 연애합니다. 일이 바빠도 주말마다 빠짐없이 봤고요.
만나면 좋고 설레요. 하지만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제가 화를 내는 입장이 되었어요. 오빠는 “결혼하고 싶다”고 말만 하고 왜 안 하는 걸까요? 결혼 말만 하는 사람인 것인지. 평소 말하는 걸 봐서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하긴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늘 없어요. 따지면 늘 “미안하다, 잘하겠다”고 합니다. 결혼 문제로 다투다가 헤어지자는 말도 몇 번 오갔습니다. 상대방이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오빠가 너무 좋아요. 오빠는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다. 결혼은 정말 하고 싶다”말하는데 전 혼란스럽습니다. 결혼은 하고 싶고 준비가 안 된 것도 아니라면 뭐가 문제일까요? 오빠 아버님이 편찮으십니다. 약 2년째 병원에 입원 중이신데, 전 부모님 두 분 다 뵌 적이 없어요. 심지어 주변 사람도 본 적이 없어요. 뭐 자기 성격인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 생각이 있으면 부모님이 편찮으실수록 더 결혼하려고 하지 않나요? 지금 제 아빠가 편찮으셔서 입원 중이신데 타이밍이 참 왜 이런 걸까요? 최근엔 자기도 힘든지 적당히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제 지쳐서 더는 못 만나겠다고 헤어지자고 했는데 답이 없었어요. 이대로 헤어지는 걸까 하는 생각에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
결혼 희망 고문에 지친 여자
A1 지금까지 많은 호소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 호소와 대화 시도는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은 온통 ‘너는 나와 다르구나’라는 단절과 판단의 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이죠. △3년을 사귀었으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는 것이다.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부모님이 편찮으면 결혼을 더 빨리 진행하는 법이다. △헤어지자고 했는데 답이 없다는 것은 헤어지자는 뜻일 수 있다. 당신의 편지 속에 담긴 당신의 생각들입니다. 요즘 말로는 ‘답정너’인 셈이죠.
3년을 사귀었지만 결혼하지 못하는 수도 많고, 결혼을 지금 당장 진행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을 수도 있고,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결혼 진행은 어려울 수도 있고, 헤어질 맘까지는 없었는데 당신의 헤어지자는 말에 이별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수도 있지 않나요? 마음속에 ‘OO는 OO여야 한다’는 말들이 온통 차지하고 있으니, 당신 표현대로 “3년을 행복하게 사귀고도”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화가 진행되기 쉽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와 평생 연결되길 원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단절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상황이 당신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고 당신을 계속 희망 고문하는 그의 태도는 확실히 실망스러운 것이 맞죠. 하지만 원래 결혼은 결정까지 어려운 관문들이 있는 일입니다. 이 상황도 그런 관문 중 하나죠. 진짜 이유는 결국 당신이 그의 입을 통해 알아내야 합니다. 화를 낸다고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요. 사실 당신과는 결혼까지는 할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요. 당신과 다투는 과정에서 결혼 생각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단, 당신이 ‘어떤 상태에서’ 그것을 알아낼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조바심과 이별에 대한 공포로 인해 화를 내며 결혼을 요구하는 입장인 채로는, 그의 속마음을 영원히 모른 채 갑작스러운 이별만 경험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 사람의 마음을 따져 묻기 전에, 자신의 지치고 급한 마음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돌보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그의 입장에 대해 ‘연결된 마음으로’ 들어줄 용기가 생겼을 때, 원망과 조바심 없이 있는 그대로 그의 입장을 이해해줄 마음이 생겼을 때 다시 대화를 해보길 바랍니다. 그가 제시하는 이유가 당신이 정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결혼을 진행하면 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때는 이별도 감당해야 하겠지요.
지금처럼 당신이 분노와 두려움에 차있는 채로는, 그도 진짜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요. 어떻게든 결혼을 진행한다고 해도 그 결혼이 불행한 선택이 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결혼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토록 중요한 일에 대해서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사람과 결혼 이후에도 진심으로 행복할 자신이 있는지 진심으로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잊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실망하게 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기억하세요.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했던 사랑의 진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진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하는 결혼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 깨닫는 것은 인생의 비극 중 하나가 아닐까요?
작가
Q2. 저는 직장인이고 사귀는 사람은 대학생이에요. 저보다 어려요. 같이 아르바이트하다가 알게 되었고, 사귀자고 매달리는 그의 한결같은 모습에 반해서 만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학교 때문에 2시간쯤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어요. 거의 제가 그 지역에 가고 그가 데이트 비용 내는 식이었어요. 자주 보면 2주에 1번, 평균 한 달에 1번 봐요. 사귄 지는 1년 조금 넘었고요. 자상하고 애교도 많고 속궁합도 너무 잘 맞고 성격도 잘 맞고 연락도 잘되고 정말 많이 사랑해요.
그런데 최근 친구랑 술 마시다가 친구가 아는 오빠를 불러서 같이 만났는데, 말이 잘 통하기도 하고 엄청 가까운 곳에 살더라고요. 그 오빠와 거의 매일 만나서 노래방 가고, 영화 보러 가고 술 마시러 가게 되었어요. 변명 같겠지만, ‘남친’을 자주 못 보니까 그 오빠와 만나는 걸 즐기고 있었나 봐요. 근데 오빠가 저한테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남친과 헤어지는 상상만 해도 눈물 나고 가슴 아픈데, 남친도 놓치기 싫고 오빠도 놓치기 싫어요. 둘은 좋은 점이나 성격이 정반대입니다. 남친은 남친대로 좋고 오빠는 오빠대로 좋아요. 거리가 멀더라도 참고 궁합이 다 잘 맞는 사람과 사귀는 게 맞는 걸까요? 아니면 거리가 가까워서 매일 볼 수 있는 사람을 사귀는 게 맞을까요?
둘 다 좋아하는 게 죄인지 묻는 여자
A2. 당신에게 연애는 무엇인가요? 혼자 있는 것이 쓸쓸하고 견딜 수 없으니 그럴 때마다 나를 즐겁게 해주고 외롭지 않게 해주는 사람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행위인가요? 당신이 하는 고민을 보면, 당신에게 연애란 그저 그 정도의 정의인 것 같네요. 그러니 1년 넘게 만난 사람을 두고도 유대감이 생기기는커녕 여전히 몸이 혼자라는 걸 견딜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곁을 허락하고 결국은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지요.
A와 B 중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게 낫겠다고 말해드리지 않을게요. (이미 마음은 가까이 있는 그 사람에게 더 기운 것 같긴 합니다만) 어차피 제가 말한 대로 당신이 선택할 리도 없을 것이고, 어차피 누구와 만나든 그 관계는 또 다른 사람 C가 나타나 더 잘 해주고 더 많이 시간을 보내주면 순식간에 흔들리게 될 테니까요. 외로움을 잊어 보려 하는 연애는 바다 위 떠 있는 배에서 갈증을 잊으려 바닷물을 마시는 일과 같아서, 그런 관계를 반복할수록 지치고 상처 입으며 점점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지요. 이 슬픈 알파벳 노래가 끝나 Z에 이르기 전에, 당신이 연애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어떤 정의를 스스로 새길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묻습니다. 당신에게 연애는 무엇입니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