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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로마 음식의 혁신은 내장 요리에서 출발!

등록 2020-05-28 09:30수정 2020-05-28 10:15

로마인들이 감추고 싶은 건 음식
미식의 나라 수도인데 왜 그런지
일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이민혜

코로나19 확산이 멈춘 후 다시 로마에 가게 되면, 로마에서 더 이상 카르보나라(크림소스를 얹은 파스타)를 찾지 말길! 로마에 가면 로마인이 되길! 가서 내장 요리를 먹어라!

이전에 나는 로마에서 로마인처럼 먹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파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가장 큰 비밀은 바로 끔찍한 날씨라고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아니 사실이다. 내가 파리에서 살아봐서 안다.) 로마가 감추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치부는 내가 보기엔 끔찍한 음식이다.

아주 오랫동안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수많은 음식을 찾아다니며 그 많은 요리를 먹으면서 그때마다 잊지 않고 떠올렸고, 내가 늘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한 가지 속담이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인이 되라.’ 하지만 이제껏 이탈리아 수도, 바로 그 로마에서 제대로 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탈리아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에서도 손가락으로 꼽히는데, 대체 이탈리아의 수도라는 곳에 있는 음식들은 어째서, 왜! 그다지도 실망스러운 것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슬프게도 이탈리아를 통째로 셧다운에 들어가게 하기 직전에 나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었다. 왜냐고? 내가 틈날 때마다 퍼부어대는 로마 음식 불평을 듣다 질린 담당 편집자가 로마에서 열리는 음식 페스티벌에 날 보내버린 것이다. ‘로마의 맛’(Taste of Rome)이라는 축제는 매년 열리는 행사로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한다. 로마에서 가장 힙한 14명의 셰프가 본인들 레스토랑에서 파는 메뉴 중에 몇 개를 골라 저렴한 버전을 만들어 파는 행사다. 간편한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 포크로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처럼 만들기에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로마의 맛’에 참여하는 셰프들은 정말 누구 하나 뺄 수 없을 정도로 쟁쟁한 사람들이다. <미쉐린 가이드> 별점이 높은 셰프도 많다. 그런 셰프들이 만드는 것이니 당연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스토랑 밖에서, 서서,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치여 가며 일회용 플라스틱 포크로 허겁지겁 먹는 일은 힘들었다. 확실히 난 푸드 페스티벌 체질은 아닌가 보다.

‘로마의 맛’ 행사 참여차 갔다가
유명 요리사 하인즈 벡 만나 대화

난 로마에서 일하는 셰프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 하인즈 벡도 있었다. 하인즈 벡이 누구냐고? <미쉐린 가이드> 별 사냥꾼이자 이탈리안 요리 기사단의 창시자다. 2005년 11월께 그는 로마 카발리에리 지역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리조트’에 그의 레스토랑 ‘라페르골라’(La Pergola)를 열었는데, 단숨에 <미쉐린 가이드> 별 3개를 획득했다. 발코니에 나가면 성 베드로 성당이 보이는 야경이 일품이고, 수영장도 딸린 이곳은 셰프의 디자인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절묘한 토핑의 음식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식사를 마친 후엔 먹은 음식에 대한 정보는 근사한 종이에 인쇄해서 기념품으로 나눠준다. ‘라페르골라’ 외 하인즈 벡이 차린 레스토랑도 최소 <미쉐린 가이드> 별 한개씩은 땄다.

벡은 로마의 음식 지형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노라고, 더 혁신적인 지각 변동이 가능할 수 있노라고 주장했다. 이미 혁신했다고 강조했다. 고루하기 짝이 없고, 맛도 내가 아는 맛만 주는 기존의 레스토랑과 카페에 견줘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레스토랑은 얼마든지 열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다 좋은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관광객들! 로마에 와서는 정통 메뉴만 찾는다고요!” 벡은 말을 이었다. “메뉴판에 카르보나라가 없으면 바로 컴플레인(불만)이 들어온다니까요.”

이튿날 난 벡이 투덜거렸던 그 말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그 유명한(유명하긴 유명한데 악명 높기로도 유명한) 캄포 데 피오리 시장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로시올리’(Roscioli)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난 한국에서 온 두 쌍의 노부부와 다 같이 앉을 수 있는 공용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곧 일행 중 한 부인이 카르보나라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친구들을 끌고 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웨이터가 와서 매우 공손하게 최근 메뉴에서 카르보나라는 없앴다고 하자 그 부인은 ‘멘붕’(멘탈 붕괴)이 온 듯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절망한 부인은 불쌍한 웨이터를 붙잡고 여러 차례 되묻었다. 그 바람에 웨이터는 “카르보나라가 없다”는 재앙에 가까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카르보나라가 메뉴에서 빠졌다고요? 왜요?” 그 중년 여성은 ‘정말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왜냐고? 그동안 카르보나라를 몇, 아니 몇천 그릇 만들고 나서 셰프가 질려버렸나 보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데보라 토메우치 셰프가 운영하는 프라이빗 레스토랑, ‘쿠오킨카사’(Cuochincasa)에서 식사를 했다. 음식은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어떤 메뉴도 로마의 혁신적인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메인 음식은 시칠리아 지방에서만 먹는 요리와 북부 이탈리안 스타일로 만든 라비올리였고, 디저트는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에서 생산한 레몬으로 만든 것이었으니까.

“카르보나라만 찾는 관광객들 때문 골치”
이미 로마의 음식 지형은 혁신 중이라고

토메우치는 실망한 내색이 드러난 나에게 로마 레스토랑 한 곳을 추천해줬다. 토메우치가 맛난 곳을 일러준 덕분에 난 이제 당당하게 ‘로마〓맛없는 곳’이라는 등식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알려진 레스토랑은 보르게세 궁전 근처, 관광의 성지인 로마에서도 가장 중심부인 곳에 위치한 ‘라 마트리치아넬라’(La Matricianella)다. 송아지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의 내장 요리가 특화된 곳이다. 이탈리아 정육 전문가들은 내장을 ‘제’5의 부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동물을 도축하고 나면 다리 네 개를 중심으로 크게 네 부위로 분류하는데, 내장은 가장 안쪽에 있는 부위다. 나도 안다. 먹기엔 다소 껄끄럽다는 것을.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다 읽지 않을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런데 나는 이 내장 부위가 고기 중에서 제일 맛있는 부분 같다.

난 그날 내 ‘최애’ 로마 음식이 된 요리를 만났다. ‘리가토니 콘 라 파야타’(Rigatoni con La Pajata)다. 아직 젖도 안 뗀 송아지, 그 말인즉슨 어미 젖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몸속에 맛있게 잘 소화된 우유만 남아 있어서 감칠맛만 나는 유미즙(음식물이 소화된 반액상의 장 내용물)과 잡스러운 맛이 섞이지 않은 리코타 치즈만 있는 아기 송아지의 내장으로 만든 요리 말이다. 리치한 느낌을 주고 고기 맛이 듬뿍 느껴지지만, 곁들여진 토마토소스의 산미 때문에 맛이 과하지 않다. 리가토니 콘 라 파야타는 진짜 맛있고,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데다 로마 레스토랑에서도 황홀한 맛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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