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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레스토랑들, 들으시오! 좀 조용히 먹읍시다!

등록 2020-06-12 13:45수정 2020-06-12 14:46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소음 데시벨이 높은 뉴욕 레스토랑
소음 공해가 많은 도시라서일까
최근 소음 정도 따라 식당 평가하는 앱 인기
아무리 유명한 식당이라도 시끄러운 건 싫어
주방 일꾼 청각 손상 올 수도 있어
소음 가득한 식당, 계속 불평하라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음식점에 갔는데, 혼잡한 도로의 데시벨과 비슷한 정도의 소음이 들려서 일행의 말이 잘 들리지 않으면? 더구나 같이 간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 얘기해야 상대방이 겨우 알아듣는 수준이라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린다. 시끌벅적한 레스토랑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니 말 그대로 인기 있는 곳이다. 하지만 레스토랑의 음향 상태가 테이블에서 일행들과 대화조차 곤란하게 만드는 곳이라면 그 음식점이랑은 ‘안녕’이다.

대체 왜 일부 레스토랑들은 소음을 발생시키기 위해서 심사숙고까지 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해서라도 실내 소리 디자인을 하는 것인지 때때로 궁금하다. 아니, 적어도 왜 현재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도 말이다.

<가디언>에 실린 한 기사에 따르면 런던에 있는 레스토랑들의 소음 측정 결과 90데시벨(dB)을 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90데시벨 소음이면 머플러(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때 소음 줄이는 장치)를 떼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바이크가 바로 옆에서 시동 걸 때 나는 소리다. (또 90데시벨이면 케이크에 붙어 있는 폭죽을 터트릴 때 나는 소음이고, 옆에서 개가 달려들며 짖어대는 소리와 같은 수준으로 청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소리이기도 하다.) 내 경험상 한국의 레스토랑들도 꽤 시끄럽다. 먹으면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느라 발생하는 소음뿐 아니라 후루룩 쩝쩝 들이켜는 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소바를 먹을 때 와인 마실 때처럼 공기와 함께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끄러운 레스토랑’ 부문에서 일등상을 주고 싶은 도시가 있다면 다름 아닌 뉴욕일 것이다. 미국인들은 정말 큰 소리로 말하는데, 먹는 소리까지 더하면 목소리는 한층 더 커지는 것 같다. 내가 겪어본 것 중 가장 시끄럽고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났던 곳은 ‘에스텔라’(Estela)였다. 뉴욕 맨해튼의 하우스턴가에 있는 소위 ‘뉴아메리칸 키친’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아마 버락 오바마가 가장 ‘애정’하는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종종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었다.) 음식은 정말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고, 메뉴 고안도 누가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한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이다. 하지만 몇 년 전 친구와 저녁 식사하러 간 날, 우리 둘 다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질러야 했던 그 날 밤, 그 이후로 굳게 결심했다. 두 번 다시는 가지 않겠노라고.

훗날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째서 특히 뉴요커들은 그렇게 시끄러운 레스토랑을 좋아하는지 말이다. 서로 할 말이 다 떨어져서? 혹은 갑작스레 대화가 끊겨서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공백 상태가 생기지 않도록 소음이라도 대신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아니면 레스토랑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야말로 ‘행복에 겨운 시끌벅적한 손님’과 동의어라고 믿어서 그러는 걸까? 뉴욕이 전반적으로 소음 공해가 심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지하철이나 도로에서 들리는 소음은 100데시벨을 가볍게 넘긴다.) 이런 상황이기에 이보다 소음 정도가 약하다 싶으면 ‘평화롭다’나 ‘고요하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 한 뉴요커가 ‘사운드프린트’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소음 정도에 따라서 레스토랑을 분류·검색해주는 앱인데, 말할 것도 없이 난청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즘 핫한 레스토랑 인테리어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유행을 어쩌지는 못하더라. 우드슬랩(나무의 가장자리를 제거하지 않은 판재) 테이블(심지어 테이블 위에 소리를 죽여줄 리넨 한장 안 깔린)과 노출 콘크리트 바닥과 에폭시 수지 처리도 안 한 거친 벽돌을 벽 전체에 쌓는 것 말이다. 이런 곳에서 소리는 깡통 안에 던져 넣은 돌덩이처럼 데시벨이 올라간다. 소리가 여기저기 딱딱한 표면에 부딪히며 올라갈 수밖에 없다. 보기에는 힙할지 모르지만, 이런 레스토랑들은 음향적인 측면에서 보면 정말 ‘꽝’인 거다.

또 데이비드 창이 오픈한 트렌디한 퓨전 레스토랑, 모모푸쿠는(어디냐고? 아메리칸 아시안 퓨전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당연히 뉴욕이다!) 오픈키친에서 메탈리카, 혹은 이와 비슷한 수준의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든 글램 메탈이든 헤비 록 계통의 음악을 틀어 레스토랑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셰프님이 보내시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감히 내 레스토랑에 들어왔으면 내가 정한 메뉴를 내가 정해준 순서대로 따라 먹으면서 내가 튼 음악도 들어라! 맛의 독재며 맛의 횡포다!

다른 한편으로는 레스토랑 오너들이 심혈을 기울여 레스토랑을 시끄럽게 만든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시끄럽고 마음 편하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은 오래 뭉개지 않고 금방 일어날 테고, 먹는 것도 천천히 음미하며 먹지 않고 후딱후딱 먹고 마신 뒤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레스토랑 측에서는 저녁 시간에 한 테이블을 더 받고 돌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물론 고생하는 사람은 식사하러 온 손님들만이 아닐 것이다. 식사하러 온 이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되니까. 진짜 미스터리는 바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왜 그 소음을 참고 있는지 모르겠다. 매일 70~80데시벨의 소음이 나는 환경에서 일하면 본인들의 청각에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레스토랑에서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류층들이나 갈 것 같은 <미쉐린 가이드> 별 몇 개에 빛나는 프렌치 레스토랑들, 무슨 교회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곳은 확실히 요즘 트렌드로 보면 한물간 곳 같지만, 마찬가지로 난 양철 깡통 속에서 밥을 먹고 싶지도 않단 말이다. 아마 이 두 극단적인 레스토랑들 사이에 ‘기분 좋은 수준의 소음’이라는 답이 분명 존재할 것이고, 레스토랑 오너들은 결국엔 답을 찾아낼 것이다.

온라인 맛 평가 별점 후기를 살펴보면 근래 들어 식당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에 대한 코멘트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아마 점점 바뀔 것이다. 미국의 레스토랑 가이드북인 <자갓 서베이>는 최근 들어 식사 한 사람들이 음식의 맛이나 서비스보다 식당의 소음에 대해 더 불만을 토로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불평하라. 시끄러운 레스토랑에 대한 특효 처방이 될 것이다. 당신이 지금 아주 크게 소리 내고 있다고, 아주 큰 소리로 시끄럽게 불평하고 있다고 말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라. 그래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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