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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초콜릿과 슬기롭게 이별하기

등록 2020-06-26 09:23수정 2020-06-26 14:16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코로나19로 락다운↓ 몸무게↑
체중 감량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초콜릿 러버’의 대체식은 과연

일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이민혜

코로나19로 영국이 락다운(lockdown)을 겪는 동안, 다른 이들처럼 나도 체중이 조금 불었다. 집에 갇혀서 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언제든 밖에 나가는 것을 허용했고, 우리 집에는 꽤 큰 정원도 있으니까. 그보다는 내가 지루했기 때문이다. 난 심심하면 먹는 경향이 있다. 난 또 스트레스 받을 때도 먹는다. 8주 남짓한 1단계 봉쇄 정책이 시행되는 동안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많이 지루했다. 이건 참 빼도 박도 못하고 몸무게가 늘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고 나서 체중을 조금 감량하기로 마음먹었다. 딱 10㎏만. 조금이 아닌가? 그래. 10㎏ 빼는 건 조금 빼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문제는 내가 초콜릿 홀릭, 초콜릿 러버, 초콜릿 피플이라는 것이다. 나는 매일 초콜릿 바를 적어도 한개 이상 달고 살고 내 짝꿍은 초콜릿 좀 끊으라는 말을 달고 산다. 거기에 요즘은 내 몸조차 나에게 정확하고 명료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숨이 차 헐떡거리고 있을 때, 양말 신다 말고 배가 접히지 않아서 분투하고 있을 때, 몸이 나에게 말을 건다. 이래도 초콜릿 계속 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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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초콜릿 러버’지만 방법 고안

누텔라 퍼먹다 피에몬테 헤이즐넛 생각나

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어중간한 것은 내 사전에 없다. 그래서 난 이제 초콜릿을 그만 먹기로 결심했고, 초콜릿과 헤어지기 위한 전략을 짰다. 신경 언어학적 프로그래밍 접근을 통한 테크닉을 활용한 임시 기법이랄까. 내가 고안한 이 방법은 나에게 계속 짧고 슬픈 방어 주문을 거는 것이다. 초콜릿이 나를 유혹하는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5시 반, 그리고 밤 9시에 말이다.

‘마이클, 왜 그래? 초콜릿은 전에도 실컷 먹어봤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래 봤자 네가 아는 그 맛이야. 이거 한 조각 더 먹는다고 더 맛있겠어. 네가 아는 그 맛이라고.’

‘내가 아는 그 맛’이라며 나 자신을 타이르는 전략, 내가 고안한 이 신경 언어학적 프로그래밍 접근을 통한 테크닉을 활용한 임시 기법은 한동안 효과를 봤다. ‘다크 밀크’라는 놈을 만날 때까지 말이다. (어떤 사악한 초콜릿 메이커는 여기다 한층 더 교묘하게 ‘슈퍼 밀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놈이 그놈인데 또 이 알량한 마케팅 전략 앞에서 한없이 무너진다.) 다크 초콜릿과 밀크 초콜릿을 섞은 이 초콜릿은 다크 초콜릿의 씁쓸함과 밀크 초콜릿의 달콤함을 오묘하고도 정확하게 섞었다. 정말 이 ‘다크 밀크’는 초콜릿 천재가 만든 천국의 맛이 아닐 수 없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맛이다.

저항해야 하는데…. 내 방어 마법 주문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다크 밀크’만큼 맛있지만, 지방과 설탕이 적게 들어 있는 뭔가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누텔라(이탈리아 초콜릿 제조업체 페레로가 만든 초콜릿 크림) 뚜껑을 열었다. 누텔라를 숟가락으로 열심히 퍼먹던 어느 날 아침 불현듯, 2~3년 전에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 여행 갔을 때의 맛이 떠올랐다. 피에몬테(Piemonte)는 말 그대로 알프스 산기슭 지역으로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유럽에서도 대표적인 미식 고장이다. 트러플(송로버섯)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는 ‘식탁 위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화이트 트러플의 생산지이다. 셰프들이 완벽한 리소토를 만들기 위해 가장 알맞다는 칭찬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그들의 사랑을 한껏 받는 카르나롤리(carnaloli) 쌀의 생산지다. 카르나롤리는 풍부하고 섬세한 맛이 장점이다.

또 이 지역은 와인의 왕, 이탈리아 4대 와인 천왕 중에서도 묵직한 바디감으로 해가 지날수록 빈티지의 가치가 상승하는 바롤로(Barolo)나 서리 맞은 포도로 빚은 섬세한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또 피에몬테는 ‘노치올라 델 피에몬테’(Nocciola del piemonte)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개암, 질 좋은 헤이즐넛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피에몬테의 헤이즐넛은 여느 지역에서 생산하는 개암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딱 좋은 예쁜 구슬 크기며, 아삭아삭 입안에서 기분 좋게 울려 퍼지는 소리와 식감하며, 오래도록 입안에 퍼지는 강렬하고 달콤한 헤이즐넛 맛이란! 이런 결과는 아마도 조밀하지 않은 식재료 특성에 따른 결과일 테지만 해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난다. (각종 견과류 나무들은 4~5년 만에 한 번씩 최고봉의 맛을 내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냥 먹기에도 너무나 맛있는 헤이즐넛이지만, 때때로 초콜릿과 섞으면 잔두야(Gianduja)라는 멋진 먹거리가 만들어진다. 1852년, 다크 초콜릿이 만들어진 지 5년 후에 헤이즐넛을 섞어 개발된 잔두야는 처음에는 ‘잔두야 페이스트’라고 불렸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팔리고 산업화된 거대한 설탕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지역에 가면 오리지널 버전의 질 좋은 잔두야를 실컷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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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대신 헤이즐넛 매일 먹기 시작

살 안 빠져 칼로리 확인해보니…‘나 뭐 한 거지’

냉장고 앞에 서서 누텔라를 들고 우두커니 있던 난 피에몬테에서 맛보았던 그 헤이즐넛이 얼마나 향기로웠는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것이 내 초콜릿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에몬테의 개암은 내가 먹어본 견과류 중 가장 맛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맛있으면 충분히 초콜릿의 대체품이 될 것이다. 난 바로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서 200g에 8유로씩이나 주고 다섯 팩을 주문했다. 비싸기는 하지만 내 건강은 돈보다 비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이 나의 초콜릿 치환 전략이 드디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데까지 와서 기대감에 부풀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가 중천에 뜨면 뜯어 먹던 내 관례와도 같던 ‘슈퍼 밀크’ 초콜릿 대신 이제는 ‘1일 1견과’ 봉투를 찢었다. 헤이즐넛 다이어트를 이렇게 한 달 열심히 한 후 체중계에 올라가 봤는데 몸무게는 단 1g도 줄지 않았다.

의아해하면서 온라인에 쓰여 있는 헤이즐넛의 효능을 싹 다 검색해보았다. 헤이즐넛은 만병통치약이고 누구에게나 좋다는 점이 조목조목 잘 정리되어 있었다. (다람쥐들이 달리 좋아하는 게 아니란다.) 그러다 우연히, 무심코 칼로리를 구글링한 결과 헤이즐넛의 100g당 칼로리는 629㎈라는 것을 알았다. 같은 양의 밀크 초콜릿은? 525㎈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이어트 백지상태. 누텔라를 들고 냉장고 앞에 서 있던 그 시점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누구 피에몬테산 화이트 트러플 칼로리 계산해본 사람 있소?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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