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안녕하세요. 저는 35살 여성입니다. 저는 만나던 사람과 며칠 전에 헤어졌습니다. 그는 저와 15살 차이가 납니다. 올해 50살인 거죠. 그분은 사별했고, 고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일까요. 그 사람이나 저나 주변에서 응원하는 연애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어서 잘 만나보려 했고, 2년3개월 정도 연애를 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사람이 제 예전 남자친구를 “그놈”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도 오빠 옛사람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되냐”라고 묻자 “그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서로 기분이 상한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제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계속 기분이 상한 듯해서, 물었더니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저의 옛 남친과 사별한 자신의 부인을 같은 레벨로 이야기해서 상당히 불쾌했다고요. 그 사람은 영원히 자기 가족이라면서요. 그러면서 저에게 “엄연히 말하면 넌 가족은 아니잖아. 내가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지”라고 말을 하더군요. 저는 이 말에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그럼 가족이 있는데, 왜 날 만나냐”고 되물었더니, 저에게 “넌 지금 나에게 아주 큰 실수를 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드렸다”고 답했습니다. 더 할 말이 없어진 저는 그만 만나자고 했고, 그 사람도 알겠다고 했습니다.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이런 제가 싫습니다. 마음이 힘들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처음 하는 연애도 아닌데 왜 상처를 받고 난리일까요. 이렇게 힘들어하다가 혹시 그가 잡으면 잡힐 것 같아요. 근데 전화가 다시 올 것 같지도 않아요. 한번 잡지도 않네요. 저, 어떻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요? ‘
레벨’로 차별받은 여자
A1 나이 차이도 꽤 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어렵고 특별한 상황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기에 2년이나 함께해왔던 사람. 한 번의 언쟁 때문에 그렇게 끝나 버렸으니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실 것 같습니다. 본인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하셨지만, 연락을 기다리는 마음을 보면, 당신이 이 관계에 대해 뭔가 감정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날의 그 싸움이, 그저 이런저런 단어 선택이 잘못되어 일어난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신은 그의 사별이 완전히 지나가 버린 ‘과거의 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그의 사별한 부인을 ‘옛사람’정도로 표현했지요. 그에게는 그녀가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훨씬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고요. 안타깝게 이별했고, 소중한 내 2세를 낳아준 존재이니, 당신이 당신의 전 남자친구와 동일 선상에 놓은 어떤 발언도 용납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지나가 버린 관계는 지나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지나간 관계라고 해서 다 같은 관계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2년3개월, 이 긴 시간 만나고 서로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그 와중에 아마도 기분이 더 나쁜 상황에 노출되었을 확률이 높았겠죠. 그는 자신이 특별하고 애틋하고 슬픈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너와는 달라’, ‘너는 내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싸움은 이번에 하필이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 관계의 시작부터 이미 잉태된 무엇이었을 겁니다. 피할 수 있는 싸움은 아니었을 거예요.
당신이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건, 헤어지자고 말한 것은 당신이긴 해도 그것이 당신의 진심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당신을 가볍게 여기는듯한 말을 했고, 당신이 큰 실수를 했다고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심각한 비난을 하니, 당신은 이별 선언으로 그저 분노를 표현해 버린 거죠. 홧김에 했다기보다는,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밖에 없게 어떤 코너에 몰린 느낌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여요.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관계는 끝나 있는 거죠. 이별을 결정한 쪽과 헤어지자는 말을 한쪽이 일치하는 때도 있지만, 당신은 엄밀히 말하면 헤어지자는 말은 했지만, 이별을 결정한 쪽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 이별이었다면, 상실감은 들더라도 상처가 깊어지진 않아요. 잡는다고 해도 잡힐 생각이 전혀 없죠. 두 번, 세 번, 아니 백 번째 연애를 해도 상처는 언제나 생길 수 있어요. 상처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상처가 났는데도 그 관계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죠. 그런데 자신의 경험만이 특별하다고 여기고 상대방의 과거 관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왜 여전히 좋고 그리우세요? 기분이 상해서 뭔가를 물어보는데, ‘큰 실수’ 운운하며 제대로 설명해 주지도 않는 사람과 어째서 관계를 이어 가려고 하세요? 나이 차이와 결혼 경험 여부를 떠나, 당신은 당신과 의견이 다를 때 너그럽고 다정하게 자신을 설명하는 능력 정도는 있는 사람과 만날 자격이 있어요. 마음을 다잡고 싶으시다면, 당신이 가진 자격과 권리를 떠올리세요.
작가
Q2 저는 30살 직장인 여성입니다. 저에게는 2년 정도 교제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흔히 말하는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에요. ‘집돌이’에 친구도 별로 안 만나고, 술과 담배를 아예 못합니다. 직장은 공공기관이라 안정적이고, 좋은 학교를 나왔고, 집안도 화목해요. 똑똑하고 합리적이고 경제관념도 아주 확실합니다. 집안일도 저보다 훨씬 잘해요. 저를 많이 좋아해서 결혼하면 쓸데없는 걱정을 안 시킬 사람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제 마음입니다. 결혼 얘기가 나오니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남자친구와는 흔히 말하는 ‘티키타카’가 안 됩니다. 그는 그 흔한 취미조차 없습니다. 꼭 필요한 것 외에 돈을 쓰는 것을 아주 싫어해서 대화거리가 한정돼 있어요. 그런데 일상적인 대화조차 길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마냥 제 의견을 지지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오늘 라면 먹고 싶다”고 하면 “오늘 날씨에 라면 좋지” 하다가, 근데 이러저러해서 냉면을 먹기로 했다고 하면 “맞아, 냉면도 좋아” 하는 반응을 합니다. 저랑 싸운 적도 없고 제가 타박하거나 짜증을 부린 기억도 없는데, 의견 대립이 있으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제 말에 맞장구만 칩니다.
장난을 쳐도 가끔 진심으로 받아들여 장난치기도 힘들고, 그러다 보니 데이트도 점점 재미없습니다. 남자친구가 말수가 적은 편인데, 이제 저도 점점 지쳐서 대화 주제를 먼저 던지기도 귀찮아요. 한번은 같이 차를 타고 가다 말없이 가만히 있어 보기도 했는데, 그가 한두 마디 걸 뿐 분위기를 띄워본다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조용한 공기는 저에게만 무겁지 본인에게는 딱히 불편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남자는 없고,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이 너무 사치인가 싶어 헤어지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결혼 생각만 하면 내면에서 계속 질문이 올라옵니다. 결혼해서 재밌게 살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주관적인 질문 말이죠. 저의 부모님이 조금 위태롭게 사셨기에 결혼은 저에게 로망이라기보다는 두려움입니다. 퇴근길에 남편이랑 맥주 한잔하는 소박한 로망은 못 이루겠지만, 두려움이란 요소는 확실히 제거해줄 것 같은 남자친구. 그와 결혼을 진행해도 후회하지 않을까요?
그 남자가 재미없는 여자
A2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것은 누가 정해준 기준인가요? 당신이 숙고해서 얻게 된 기준이었다면 지금의 혼란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네요. ‘티키타카’가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결혼에 대해 망설이게 된다면, 그 마음이 바로 문제의 열쇠인 것이에요. 당신이 원하는 행복한 결혼의 요소에는, ‘나와 위트와 유머를 담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있다는 완벽한 증거죠. 당신이 원하는 결혼과 그것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상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당신은 사회의 인식에서 ‘결혼하기 좋은 사람’, 즉 ‘속 썩이는 일 없이 결혼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을 골랐어요. 부모님의 위태로웠던 결혼 생활 속에서 ‘안정된 결혼’에 대한 당신의 욕구가 훨씬 커졌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순 없었어요. 처음 그를 선택할 때에는 자신의 또 다른 욕구를 모른 척했거나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이 되니 이제야 그 욕구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게 아니겠어요?
완벽한 남자는 당연히 없어요. 그러나 완벽한 남자가 없으므로 남들이 ‘결혼용’으로 좋다고 말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인 귀결이 아니에요. 완벽한 남자를 찾으려는 시도는 그저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 테지만, 자신의 욕구를 무시한 채 결혼을 해버린다면 그것은 그저 불행한 삶이라는 결과만 낳겠죠. 자신의 소중한 욕구와 기준을 발견해놓고 구태여 ‘사치’라는 단어를 붙이지 마세요. 고민할 수 있을 만큼 고민하는 것이 어째서 사치입니까? 평생을 누군가와 같이 살겠다는 게 결혼이에요. 자신을 다 알지 못하는 채로 결혼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그토록 피하고 싶던 위태로운 세상으로 진입하는 티켓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작가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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