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지난해 했던 일 중 가장 멍청하고 위험한 행동은 바로 그것이었다. 새벽 2시경 ‘마르디 그라’(Mardi Gras·사순절 전에 열리는 축제·‘참회의 화요일’이란 뜻) 기간 중에 뉴올리언스 중심부에 있는 호텔로 걸어간 것 말이다. 그것도 혼자서. 굳이 변명하자면, 나 역시 ‘참회의 화요일’ 축제 분위기에 조금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더 빅 이지’(The Big Easy)라는 애칭이 붙어 있는 뉴올리언스에 온 것은 50살을 맞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였다. 나 외에 초대장을 받은 열댓명의 손님이 한 일이라고는 비행기를 타고 뉴올리언스에 간 것뿐이었다. 파티의 나머지는 생일을 맞은 친구가 알아서 다 준비했다.
일주일 남짓이었던 그 여행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그 전에는 뉴올리언스에 와본 적이 없었지만, 그 유명한 크리올(Creole·이주해온 유럽계와 현지인의 혼혈) 음식 문화가 얼마나 특별한지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1699년 프랑스인이 미국 멕시코만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는 음식. 서아프리카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와 스페인 음식이 섞인 환상적인 요리 말이다. 검보와 잠발라야가 대표적이다. 이 도시 음식의 양대 축인 케이준은 어떻고! 케이준이야말로 순수 프랑스 요리에 가깝다. 영국인이 캐나다 아카디아 지역을 점령하면서 그곳에 살던 프랑스인들이 루이지애나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생긴 음식이니 케이준이야말로 프랑스 요리다.
크리올 음식과 케이준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간단하다. 크리올은 토마토를 쓰고 케이준은 쓰지 않는다. 케이준에는 고기와 해산물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며 종종 밀가루를 넣어 아주 진득하게 만든다고 한다. 크리올 요리든 케이준 요리든 매운 소스를 아낌없이 팍팍 뿌리기에 한국인들 입맛에 딱 맞을 것이다.
뉴올리언스 음식 개시는 뉴올리언스 추천 맛집인 굴 요리 전문점, 즉 ‘아크메 오이스터 하우스’(Acme Oyster House)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시작했다. 석쇠에 구운 빵 부스러기와 한 줌의 허브를 올려 구운 그 굴 요리를 맛보기 전에(바게트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같이 준다.) 누가 나한테 굴이랑 치즈를 같이 먹으라고 했다면 굴에 치즈라니 무슨 소리냐고 통렬히 비웃었을 텐데 뭘 먹든,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이냐는 뉴올리언스 분위기 탓인지 치즈랑 굴도 같이 먹으면 뭐 어때, 한번 먹어볼까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진짜 맛있다. 훌륭한 생각이다!
나는 기름에 푹 담가서 튀기는 ‘딥 프라이’ 요리의 신봉자다. 쩨쩨하게 스프레이로 기름을 조금 뿌리고 굽지 말라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한국의 치킨을 몹시 사랑한다. 그리고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보기에는 뭐든 일단 기름에 담가서 튀겨볼 것 같다. 이 ‘일단 기름에 튀겨보자’ 정신이 잘 드러나는 음식은 포보이다. 바게트를 갈라 새우튀김, 생선튀김, 여기서도 빠질 수 없는 굴튀김 등등을 가득 올려 채운 음식이다. 바게트도 세상에 얼마나 크던지! 둘째 날 점심은 프렌치 쿼터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포보이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먹고 나서 한 시간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프렌치 쿼터는 사람들이 뉴올리언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곳이었다. 부르봉가를 포함하여 아름답고 반듯하게 잘 정돈된 거리마다 2~3층 높이의 18~19세기 양식인 테라스 하우스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주물 단조 장식으로 치장한 발코니는 뽐내고도 남을 만했다. 마드리 그라 축제가 한창일 때는 그 거리가 소리 지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미어터진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발코니에서 마드리 그라 축제의 상징이기도 한 금색, 초록색, 보라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구슬 목걸이가 날아온다.
마르디 그라는 프랑스어로 ‘살찐 화요일’이라는 뜻이다. 사순절의 시작일인 참회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이 되면 금식과 금욕의 기간을 갖는데 하루 전날인 이 참회의 화요일에는 다양한 뉴올리언스 음식을 먹는다. (영국에서는 팬케이크를 먹는다. 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참회의 화요일’이라는 말보다는 마르디 그라에는 ‘뚱뚱한, 살찐, 기름 넘치는 팻(fat) 화요일’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다면 살찐 화요일뿐 아니라 그 언제라도 뉴올리언스에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1년 내내 말이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커피만 먹어도 살찐다. 휘핑크림을 올려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도 똑같다. 일단 커피를 주문하면 슈거파우더를 듬뿍 뿌린 스페셜 튀김이 함께 나오니 말이다. 양파가 됐든 튀김 빵이 됐든 말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진정한 내장 폭파 담당 메뉴는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머플레타이다. 여러 층을 쌓은 샌드위치로 햄, 치즈, 올리브 등이 속 재료로 들어간다. 이탈리아의 둥근 참깨 빵이 어원이라는데, 루이지애나에 와서는 빵이 보이지 않게, 빵이 부끄러울 정도로 속을 꽉꽉 채워 올리는 샌드위치가 되었다. 기름지고, 배부르고, 풍성하고 맛도 진해서 누가 샌드위치를 가벼운 다이어트식이라고 했는지 무색할 정도다. 하나만 먹어도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고 남는다.
그러니 그날 밤 술에 취해 도시를 좀 방황한 것이 뭐가 그리 위험하단 말인가? 친구는 다음 날 아침 해장을 위해 그리츠를 차려주었다. 굵게 빻은 옥수숫가루로 만든 걸쭉한 죽 같은 음식인데 이탈리아 옥수수죽인 폴렌타와 매우 비슷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인들이 오기 한참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그리츠를 한술 뜨려는데 친구들이 대체 간밤에 어디로 사라졌던 것이냐고 물었다. 혼자서 비틀거리며 집으로 왔다고 대답하자 친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난 정말로 뉴올리언스가 미국 내에서 ‘살인사건의 수도’라는 점을 몰랐던 것인가? (사실상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데 한동안은 1인당 변사 수치가 미국 내 최고였다고 한다.)
불현듯 나는 아침 식사를 하러 모인 사람들의 수를 세어보았다. 일행 중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앨런과 매슈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내가 새파랗게 질려 물어보았다. 우리를 초대해준 친구의 대답을 듣고 나는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렸다. “앨런은 아직 병원에 있어. 매슈는 침대에 누워 있어.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했지.”
다행히 앨런도, 매슈도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린 것은 아니었다. 둘 다 스스로 먹은 술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부르봉 거리에서 흥청망청 마시다가 나가떨어졌다고 한다. 이 둘은 나중에 우리랑 합류했는데 앨런은 눈에 화려한 멍을 달고 왔고 매슈는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다른 나라를 갔던 여행들을 하나씩 곱씹어보고 있는 이 시점에 아주 약간의 비애감과 한 줌의 노스탤지어가 내 마음에 섞여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겠다. 내가 다시 그곳을 방문할 수 있을까? 루이지애나에 가서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놀 수 있는 날이 내 생애 다시 한 번 오기는 할까?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뉴올리언스는 코로나19의 피해를 정말 크게 입은 지역 중 한 곳이다. 아마도 마드리 그라를 예정대로 진행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140만명이 되는 인파가 모여들었고, 한동안 이 도시는 미국 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높은 도시였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인 것은 시민들이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를 아주 철저히 지켰고(솔직히 미국인들도 놀랐다.) 덕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는 나흘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0’을 기록하고 있다.
뉴올리언스가, 그리고 다른 모든 세계도 이 고비를 넘기기를 바라본다.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