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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나만 바라보던 그의 배신, 자꾸만 의심이 들어요”

등록 2020-07-10 14:38수정 2020-07-10 14:45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Q1 나밖에 모르던 그, 모르는 이성과 만난 뒤
안정형이었던 나, 의심형 인간으로 바뀌어
A1 불안의 씨앗, 그가 아닌 당신 내부에 있어
불안정한 마음 회복하는 것이 결혼보다 우선

Q2 나보다 잘난 라이벌 친구, 자꾸 신경 쓰여
다 가진 것 같은 그 친구는 왜 나를 이기려 들까
A2 나의 불만을 그에게 투사하는 건 아닌지
타인의 삶도 그저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Q1 저와 남자친구는 5년째 연애 중이고 올해 말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제가 갑이고 남자친구는 을이었던 연애였어요. 남자친구의 열렬한 구애 끝에 연애를 시작했고, 연애 초반 결혼을 결심했어요. 저는 연애 경험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그는 다른 남자들과 달랐어요. 연락 문제, 이성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성향도 저랑 정말 잘 맞았어요.

남자친구는 취업 이후 일 스트레스가 극심했어요. 그래서 지난해 한 번 크게 싸우고 다 그만하고 싶다고 했던 걸 제가 붙잡았어요. 이후 전보다 오히려 더 좋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 남자친구가 제게 거짓말하고 게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여자와 밥 먹고 영화까지 본 걸 알게 됐어요. 남자친구는 이성이라서 만난 게 아니라 왜 자기를 좋다고 하는지 호기심에 만났대요. 남자친구는 평소 자존감이 낮아요. 본인을 무조건 치켜세워주는 게 신기하고 궁금했다고 하더라고요. 슈퍼스타가 된 느낌이었다며 신체적 접촉이나 감정은 일절 없었대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제가 평소에 남자친구를 띄워주는 게 아예 없어서 그랬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어요.

기회를 달라는 말에 일단 넘어갔지만, 그때부터 지옥의 날이 시작됐어요. 그 여자에 대해 모든 걸 묻고 답을 들었는데도 어디까지 더 물어야 제 속이 편할지 모르겠어요. 의심 한 톨 없던 안정형이었던 제가 불안형 인간이 되어 조금만 연락이 안 돼도 불안하고 심장이 뛰어요. 제가 이러니 남자친구는 또 일도, 결혼도 다 그만두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남자친구의 상태가 ‘매리지 블루’와 번아웃이 함께 온 것이라 생각해서 자존심 버리고 붙잡았어요. 그런데 얼마 후 다시 헤어지자길래 저도 이제는 끝이다 싶어서 정리했어요. 그랬더니 이틀 만에 울면서 “너 없이는 안 되겠다”라며 애원하며 돌아왔어요. 그 이후 남자친구는 정말 노력해요. 그런데 저는 평소처럼 대하기 어려워요. 남자친구 인생 통틀어 여자는 저밖에 없고, 그가 한없이 투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제가 인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또 그런 호기심이 생기면 그땐 어떡하지? 결혼을 못 하겠다고 했다가 왜 이러는 거지? 끊임없는 의심이 저를 갉아먹고 있어요. 헤어지면 편할 것 같다가도 막상 헤어지긴 싫어서 못 놓겠어요. 불안해하는 제 모습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의 변화가 불안한 여자

A1 큰일을 앞둔 상황에서 당신의 감정이 크게 요동친다면, 그때야말로 멈춰 서서 자신의 마음과 이 관계를 찬찬히 돌아봐야 한다는 사인입니다. 우리는 더러 부정적인 감정은 그저 없애거나 무시하는 것이 답이라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 우리가 놓치거나 외면했던 마음속 문제들을 돌이켜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혼란을 분석해 드릴게요. 당신에게 열렬하게 구애했고, 연애 경험이 없으며, 한없이 투명한 사람처럼 보이고, 그동안 이성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 남자. 당신이 그를 만나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들이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나밖에 모르고,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예측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행동하는 투명한 남자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이 관계는 지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불안정한 것을 원래부터 아주 싫어하는 무의식적 성향이 있었든, 예전에 했던 연애 이후로 불안정한 연애만큼은 피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든, 당신은 그에게 ‘안정적이고 배신하지 않을 것’을 근거로 가중점수를 주었을 확률이 높지요.

당신은 안정형에서 불안정형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제 담담하게 스스로 물어볼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예전에는 안정형이었을까?’ 라고요. 배신당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사람들에게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조건은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그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에 당신이 변한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속에 원래 있던 어떤 과제가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아닐까요?

아무 일 없었다는 말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만, 지금 이대로 결혼을 진행한다면 당신은 매일 저녁 불안에 시달리며 ‘나를 이렇게 만든’ 그를 원망할 것이고, 그는 결국 지쳐 당신을 떠나가겠죠.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별과 배신이 결혼 후에 일어나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 진행보다 당신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회복하고 나면, ‘나는 이 정도의 불안을 견딜 수 있겠다’는 자각이 들고 나면, 그때 당신이 해왔던 사랑도 담담하게 돌아보고 결혼을 할지 말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문 상담자와의 개인 상담을 통해 내면에 대한 분석을 꼭 받아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작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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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저는 악기를 전공하는 음대생입니다. 저에겐 라이벌이 있습니다. 같은 과 동기인 A는 대학 내내 저와 늘 전공 시험 1, 2등을 다툰 사이입니다. 제가 보기에 A는 완벽한 사람입니다. 실기도 잘하고 외국어도 잘하고 집도 잘삽니다. A는 대학을 마치면 미국 유학을 갈 계획입니다.

저는 A와 달리 어렵게 음악을 시작한 터라 집에서 유학까지는 지원받을 수 없는 형편이고, 음악을 계속하고 싶지만, 앞으로 솔직히 어떡해야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좀 막막한 상황입니다.

상황만 보면 제가 A에게 질투나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저를 대하는 A의 태도가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꽤 큰 국내 연주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 후 그가 한 행동 같은 겁니다. 그 전까지 “국내 대회에는 관심이 ‘1’도 없다”던 A가 다음 해 같은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휴대전화를 골똘히 보고 있길래 지나가며 슬쩍 보니 에스엔에스(SNS)에 올려놓은 제 연주 영상을 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교수님이나 선배들과 친한지도 늘 의식합니다.

차라리 A와 사이가 나쁘면 “쟤 왜 저래”하고 무시하겠지만 우리는 겉으론 친한 편입니다. 앞으로 인생이 탄탄대로인 A는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잘난 사람인데 왜 이럴까요? 그냥 모든 걸 다 자기가 갖고 싶은 걸까요? 이게 쌓이다 보니 A가 저에게 음악 얘기를 하면 ‘얘가 또 나한테서 뭘 캐가려고 이러는 거지?’ 하며 의심이 듭니다. 저도 이 아이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은 솔직히 제가 A보다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몇 년 뒤 A가 유학하고 돌아오면 실력이 역전되지 않을까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이 바닥이 좁다 보니 앞으로 계속 부딪힐 것 같습니다. 어떻게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건강한 관계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라이벌이 계속 의식되는 미래 음악인

A2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복잡한 마음을 경험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있어요. 그 친구의 조건이나 미래가 다 탄탄대로인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가 자기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죠. 국내 콩쿠르에 관심이 없었지만, 당신의 성취를 보고 자극을 받아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그저 그 친구의 선택일 뿐이 아닌가요? 만일 그 친구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당신을 늘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은근히 무시했다면 당신은 지금보다 기분이 좀 나았을까요? 혹은 당신에게 늘 양보하고 일부러 져주었다면, 당신은 기분이 좀 나았을까요?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이것이죠. 당신이 괴로운 것은 그 친구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작용 때문은 아닐까요?

하루에 우리가 하는 생각의 가짓수는 6만개에서 8만개,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자기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을 나와 연관 지어 생각하고, 집착하고, 그로 인한 불편함과 걱정에 사로잡히죠.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지만, 그저 끊임없이 나에 대한 상념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내 인생에 대한 불만과 걱정을, 역시 나처럼 고민과 걱정이 있을 나의 친구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친구의 태도가 어떠했든, 나는 편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면 그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필요한 말이 아니면 안 하고, 그러다 보면 서서히 멀어지겠죠. 하지만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친구가 가진 것에 대해서는 늘 신경 써 왔지만, 친구의 고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는 것. 오직 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언제나 관계는 불편해지리라는 것. 나의 상황에 대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타인의 삶도 그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삶으로 가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과제일 거예요. ‘이 바닥’은 좁더라도 삶은 아주 넓고 광활한 어떤 세계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축소되지 않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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