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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코로나 공포도 꺾지 못한 나의 선택, 그리스 여행

등록 2020-09-04 10:58수정 2020-09-04 11:05

코로나19로 집에서 외국 그리워하며 요리만 해
하지만 무력감, 호기심에 결국 그리스 여행 선택
공항·숙소 방역 철저한 그리스, 긴장도 됐지만

30도에도 마스크 쓴 식당 종업원 덕에 즐거운 외식

그리스식 가지 요리 비밀 등 알게 된 건 큰 소득

다시 부엌에 가 요리 매달려 살찌는 것, 그만하고파

독자 여러분은 내가 오로지 먹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새로운 맛, 새로운 식감, 새로운 식재료와 새로운 조리 기법부터 먹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까지 이 모든 것은 세계를 탐험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황홀한 지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올해 나는 그 어떤 곳으로도 떠날 수 없었기에 사진을 보며 다른 곳에 관한 기사를 읽고, 책 속에 들어가 머릿속 세계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요리를 했다. 전 세계를 다시 누비고 싶었다. 그래서 그 나라를 떠올릴 수 있는 요리를 했다. 난 초밥을 만들기 위해 쌀알을 쥐었고, 타이의 커리와 인도의 커리를 만들었으며,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재창조했다. 해산물 요리를 할 때는 스페인 사람들처럼 올리브유와 소금만 살짝 곁들였고, 고기 요리는 프랑스 사람들처럼 와인과 허브 스톡을 넣고 슬로 쿠킹을 했다. 아마도 이렇게 명명할 수 있으리라. ‘식탁에서 즐기는 세계여행.’

하지만 이대로는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력감과 근지러움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난 지난달에 가족들을 데리고 지난해에 예약해놓은 그리스 여행을 떠났다. 그리스는 내가 제2의 고향이라 늘 말하고 다니는 덴마크처럼 전염 위험성이 비교적 낮은 곳으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행 내내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었다.

마스크 50장과 손 소독 젤 열통을 챙겼고, 게다가 나는 건강염려증이라는 심각한 질환도 앓고 있기 때문에 벌벌 떨면서 혈액의 산소포화도 측정기까지 사서 짐 가방에 넣었다. (감염 초기 단계에서 수치가 떨어지는지 아닌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로 떠나기 하루 전날 집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코로나 패스 여권’을 발급받았다. 각종 공항 업무와 비행만으로도 이미 편치 않은데 이 모든 과정을 마스크까지 끼고 진행하려니 고역이 아닐 수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아남았다. (한국으로 가는 장거리 비행은 엄청난 시련이 될 것이다.)

덴마크에서 발행해준 코로나 음성 확인 여권은 아테네 공항 출입국에서 무시당했고 일행 중 두명, 즉 내 아내인 리센과 아들 아스거가 무작위 검사 대상자로 뽑혀 즉석 진단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무사통과 되었다.

그러고 나서 곧장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택시 운전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접수원이 우리가 예약한 방의 방역 처리가 완비되었다고 안심시켜주었으며 조식 뷔페 대신 선주문 받은 식사로 대체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방에서 짐을 풀고 나니 우리에게 코로나 시대 최대의 지상 과제가 떨어졌다. 저녁 먹으러 나가기. 아테네 거리를 보니 20명 중 한 명꼴로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것 같았지만,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일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안 되는 고역이겠지만 그분들의 희생에 감사할 뿐이다.

그들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당일 저녁 식사뿐 아니라 아테네에서 머무는 내내 외식을 할 수 있었다. 이오니아 제도의 섬들을 돌기 위해 전세 낸 요트에서도, 우리가 들른 아름다운 항구 마을인 바티와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쿠오니에서 먹은 식사들까지 문제없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관광객은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사흘쯤 지나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비로소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난 그리스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 엄청난 특혜를 누린 것 같았고, 예전에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음식을 즐기던 그 어느 때보다 더 감사했고, 모든 순간에 감탄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또한 여행 중에 새로운 음식을 발굴하기도 했고, 그동안 잊고 있던 음식을 재발견해서 재평가할 기회도 얻었다. 난 다시 한 번 음식이 줄 수 있는 엄청난 즐거움에 파묻혔다.

예를 하나 들자면 난 그리스식 가지 그릴 요리에 집착하다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개방 화덕에서 나오는 센 불길에서 가지를 굽는데, 가지가 연기를 흡수해 그리스식 독특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스 라자냐라고도 불리는 무사카(moussaka)에는 계피가 아주 살짝 들어가 맛의 복잡한 즐거움을 끌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이 토마토소스를 허브 딜과 어떻게 섞는지를 알게 되어 정말 기뻤다. (토마토소스에 딜이라니,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토마토소스에는 바질’이라는 철칙이 있다. 딜을 넣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재발견한 것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싱싱한 감칠맛 폭탄 같은 타라모살라타를 꼽을 수 있겠다. 타라모살라타나 타라마살라타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전채 요리로 먹는 메제스(술과 곁들이는 여러 가지 전채 요리) 중 하나인데 빵에 발라먹기도, 채소를 찍어 먹기도, 그냥 퍼먹기도 하는 스프레드 형태의 음식이다.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 소금에 절여둔 대구, 잉어, 숭어 등의 생선알, 타라마(단맛 나는 조미료)만 있으면 된다. 양파, 마늘에 레몬즙과 올리브유, 타라마를 볼에 듬뿍 넣고 갈다가 찐 감자를 섞어주면 끝이다. 명란젓 마요네즈보다 맛있다.

그리스 쌈장인 타라모살라타는 때론 인공 색소로 과한 분홍색이 되기도 하지만, 타라모살라타를 아는 사람들은 연한 베이지색을 최상으로 친다. 타라모살라타는 중독성이 매우 강해서 내 가족들은 타라모살라타가 레스토랑 식탁에 나오면 즉시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은 맛도 못 볼 테니 말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 이 글을 쓰면서 난 우리의 그리스 여행이 전 세계 봉쇄령이 다시 강화되기 직전에 행한 마지막 일탈이었는지 아니면 해외여행의 새로운 모델을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후자이기를 바란다. 아니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서 맨날 칼질하고 오븐에 음식을 넣고 요리를 연구하다가 살만 찌고 말 테니까.

글 마이클 부스(푸드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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