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저는 27살 직장인입니다. 동갑 남자친구를 3년째 만나고 있어요. 우리는 취미도 비슷하고 만나면 너무 재밌어요. 그런데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만난 지 1년쯤 됐을 때인가, 어느 날 남자친구가 저에게 선물 꾸러미를 내밀더라고요. 무슨 날도 아닌데. 이게 뭐냐고 물으니 다짜고짜 열어보래요. 엄청 하늘하늘해 보이는 니트 카디건이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며 맘에 쏙 들어서 사 왔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절 생각하고 사온 마음이 고맙고 기뻤어요. 그러더니 남친이 “앞으로는 쭉 이렇게 입고 다니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 말이 내심 좀 찜찜했어요. ‘그동안 내가 옷 입는 스타일이 맘에 안 들었나?’ ‘내가 좋은 대로 입고 다니면 되지 무슨 상관이지?’ ‘이게 더 좋아 보인다는데, 이참에 스타일을 바꿔볼까?’ 갈팡질팡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때 한번 물어봤어야 했나 싶어요.
그 이후에도 남친은 종종 저를 속박하려는 행동을 했습니다. 통금 시간을 정해서, 자기를 만나지 않더라도 몇 시까지는 집에 들어가라고 하고, 뭔가 제안하는 듯 말하는데 사실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많은 편입니다.
어떤 날은 이런 요구도 하더군요. 남친의 어머니가 저를 궁금해한대요. 그런데 어머니가 교회 집사님이신데, 제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걸 내켜하지 않으실 것 같다는 겁니다. 가끔 장난처럼 결혼 얘기도 했는데, 남친이 그 얘길 하면서 어차피 결혼도 할 건데 지금부터 교회에 나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합니다. 좀 황당해서 나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남친은 뭔가 불만스러운 듯했어요. 이게 꼭 교회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정한 룰을 제가 지켜줬으면 하는데, 그 트랙을 제가 벗어나는 게 불쾌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것 빼고는 말도 잘 통하고, 재밌고, 솔직히 제가 좋아하는 외모이기도 해서 다 좋은데, 정말로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고개를 젓게 돼요. 친구들은 사람 달라지기 어렵다고, 애쓰지 말고 더 깊어지기 전에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고 합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올가미가 답답한 여자
A1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저는 작은 탄식을 했습니다. 선물을 주며 ‘앞으로는 쭉 이렇게 입고 다니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부터 무려 2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거든요. 아마도, 그때의 당신은 ‘그래도 나를 위해 소중하게 준비해서 선물한 건데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말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분명히 무언가 불편하고 찜찜한 마음마저 들었지만, 그것을 표현하자니 상대방을 실망하게 하거나 화날 것이 두렵기도 했겠죠. 이때 물어봤어야 했었나, 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건 그 이후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이 불편함과 찜찜함을 넘어서 ‘속박’이라는 감정까지 느껴본 후라서 그렇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첫 번째 징후였다는 것을 깨닫는 거죠.
자책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연인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결국은 속박하기 원하기에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사람 중 많은 이가 초반에 보여주는 신호가 바로 이렇게 옷차림이나 신체에 대해 발언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만, 다정한 연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주는 선물에서 ‘통제’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미리 책을 읽고, 논문을 접하고, 생각을 정리해두지 않는다면 쉽게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팡질팡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3년 전 이에 대한 지식은 없었어도 적어도 당신은 희미하게라도 감지했던 겁니다. 이것이 뭔가 나에게 해로운 것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당신이 말했듯, 연인으로서의 그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모든 것을 가려버리죠.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인데 별문제 있겠어?’ ‘이렇게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인데 저런 면은 아주 작은 거겠지’라며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과 찜찜함을 사소한 감정으로 치부해 버리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런 식으로 2년이 더 흐르고 그는 이제 옷차림, 통금 시간, 종교까지 한 단계씩 그 강도를 올려가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이네요. 사람에 대해 헷갈릴 때 제일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이 ‘이것 빼면 괜찮아’입니다. 그런 식으로, 지난 2년이 흘러왔을 것입니다. 몇 시까지는 집에 들어가라는 통제의 말이, 나에 대한 배려로 오해되는 것은 바로 ‘이것 빼면 괜찮잖아’라는 자기 주문 때문은 아니었는지요? 외모, 대화의 센스 모두 중요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외모이고 말도 잘 통하는 어떤 사람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당신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당신의 삶을 멋대로 하려고 한다고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외모가 마음에 들고 말이 잘 통한다는 매력이 때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요. 외모가 마음에 들고 말이 잘 통하는데 당신을 이런 식으로 단계를 밟아가며 속박하는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을 고르세요. 그런 사람이 없다면 애써서 눈을 낮추고 당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마세요. 연애는 나의 삶의 일부를 떼어 그 사람과 나누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내기에, 우리의 삶이 너무도 짧지 않습니까?
작가
Q2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 생겼어요. 요즘 지인들 모인 단톡방들 많잖아요. 그 가운데 한곳에서 올라오는 문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좋은 분들이 모여 있는데요, 그중 한 분이 ‘대략 난감’한 문자나 사진을 올립니다. 이 단톡방은 구성원들의 연령대가 다양해요. 20대부터 60대까지 모여 있죠. 60대인 그분은 약간 성적인 얘기나 사진을 올리곤 해요. 그렇다고 우리가 진짜 분노할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그 나이대 분이 올릴만한 아재식 유머 같은 겁니다.
그런데 전 그게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분은 그저 다 같이 웃자고 올리시는 거겠죠. 오래전 다 같이 웃자고 술자리에서 푸는 음담패설 같은 건데요, 지금은 그런 농담을 즐기는 이들이 별로 없죠. 단톡방 다른 이들은 저처럼 조용히 있는 이들도 있고, 호응하면서 같이 웃는 이도 있어요. 그냥 노인네 귀여운 농담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이들이 보면 ‘별거 아니네’라고 할 수도 있는 내용인데요, 전 불편해요. 그렇다고 여럿이 있는 방에서 정색하고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어렵네요. 그러면 저만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요. 어쩌면 좋나요?
그의 농담이 난감한 사람
A2 그냥 알고 지냈을 땐 좋은 분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저급한 민낯을 봐버렸네요. ‘얼굴 대 얼굴’로 만나는 상황이라면 정색을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하자니 전혀 분위기를 예측할 수 없어 어렵지요. 하지만 아재식 유머든 뭐든,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긴 해야겠어요. 저라면 그 모임에서 제가 가장 신뢰할 만한 두세명에게 지금 당신이 느끼는 불쾌함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를 할 거예요. 분명히 당신처럼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몇 명 있을 거예요. 물론 지금까지 호응해주고 같이 웃는 사람들은 당연히 빼야죠. 그리고 다음에 또 그런 게시물이 올라오면, 다 함께 한마디씩 집중포화를 하세요. 정색하고 ‘올리지 마세요!’라고 말하기 어렵다면 ‘보기 불편합니다’ ‘그만 올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도까지는 하세요. 한번 해서 말을 안 들으면 두번 세번, 계속하세요.
혼자라서 두렵고, 나 혼자 까칠한 사람이 되어 고립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당신이 먼저 타인의 손을 잡고, 의견을 모으고, 연대해서 행동하면 됩니다. 나와 함께 연대해주는 사람이 없거나 이렇게 해도 그 행동이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면…. 글쎄요, 저는 그런 집단에 제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쓸 이유가 있는지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해볼 것 같습니다. 성적인 유머를 올리면 대부분이 낄낄대는 단톡방.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의미와 이득이 있겠습니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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