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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대만 보물에 새겨진 건? 고기와 배추?

등록 2020-10-21 19:24수정 2020-10-21 19:36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한국과 대만
대만은 내게 첫사랑 같은 존재
전 세계 오만가지 음식이 섞이고 발전한 그 나라
과바오·샤오룽바오· 단짜이몐·버블티 등
대만 음식이 발달한 데는 먹거리 집착 있어서
그곳 최고 보물로 꼽히는 유물엔 고기와 배추 조각돼

아마 이 시점에 한국인 대다수는 해외여행을 갈 생각 자체를 안 할 것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 세계 여느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독보적인 대책으로 바이러스 위기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잘 통제하고 있으니까. 한국보다 더 안전한 나라가 드문 이 마당에 뭐 하러 다른 나라에 가 굳이 자신을 감염 위험에 노출시키겠는가?

이곳 유럽에서 한국은 록다운(도시 봉쇄)을 거친 후 사회가 어떻게 재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긍정적인 롤모델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정부가 정한 행동 강령과 지침을 지키며 전례 없는 위기에 침착하게 대응한 국민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구상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 정도 수준으로 통제한 나라는 흔치 않다. 그러니 한국인들이 안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을 터다.

그러나 대만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만도 코로나19 사태에 지금까지 훌륭하게 대처한 나라다. 혹시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과 대만 간 여행이 증가 추세인지가 궁금하다. 한국에서 대만으로 가는 여행뿐만 아니라 대만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여행도 말이다.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강렬한 내 마음’이다. 대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 말이다. 매일매일 그 생각뿐이다. 나와 대만은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연인 같은 관계다. 그건 분자 단위에서 일어난 강력한 화학적 결합 같은 것이었다. 과거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하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가 서로를 위한 완벽한 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가 어떤 도시냐! 따뜻하고, 어디를 봐도 푸르면서 울창하고, 화려하면서 동시에 모던하고 효율적이며 곳곳이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핫’하면서 ‘쿨’하고 ‘쿨’하면서 ‘힙’한 곳이 바로 대만이다. 게다가 사람들, 대만 사람들은 내가 만나본 이들 중 가장 사근사근하고 친절했다. 도와달라고 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대만에 갔는데,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대만은 상하이에 견줘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었다. 심지어 텅텅 빈 것 같았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 내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대만의 먹거리였다. 중국 푸젠성과 광둥성의 요리, 폴리네시아의 음식, 대만 토착민들의 전통 음식,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일본 요리 등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흥미진진한 요리 지형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온 이들이 각자 자기네 요리를 선보여서 대만 요리를 더 풍성하게 했다.

대만에 도착하기 전부터 난 런던 소호의 맛집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바오’의 과바오(일명 대만식 버거) 광팬이었고 홍콩에 있는 식당 ‘리틀바오’의 팬이기도 하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일 것이다. 대만에서 먹었던 과바오는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환상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장난 아니게 맛있었다.

물론 딤섬 전문점 딘타이펑에도 갔다. 전설의 샤오룽바오 전문점 말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작고 아름다운 기적의 딤섬 체인점의 본점이자 1호점이다. 이 평범한 만두를 기적의 맛으로 만드는 비법은 피 속에 담긴 젤라틴 형태의 국물이다. 식었을 때는 굳은 젤리 같지만, 찜기에 올리면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게 할 만큼 뜨거운 액체로 변한다. 난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 있는 딘타이펑 체인점에서 식사를 했다. 이제 런던에도 체인점이 생겼다. 하지만 역시 타이베이 본점이 가장 훌륭했다. 본점답게 섬세했고, 본점답게 맛있었다.

대만은 또 알아야 할 음식이 많은 곳이다. 넓적한 당면으로 속을 채운 튀김두부도, 단짜이몐도 대만에서 꼭 먹어야 하는 요리다. 단짜이몐은 감칠맛의 핵펀치를 맞은 맛이다. 돼지고기와 새우가 만났으니 그럴 수밖에. 아, 그러고 보니 절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먹고 싶어서 절의 담장을 뛰어넘었다고 하는 불도장도 꼭 먹어봐야 한다. 해산물과 닭, 오리, 돼지고기 등 온갖 맛있고 몸에 좋은 재료들을 함께 끓인, 아니 끓였다기보다는 꼬박 하루 이틀은 걸리니 고았다는 표현을 써야겠다.

대만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일본인과는 다르게 요리의 혁신과 개발에 좀 더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 이 개방성은 때때로 재미있는 음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웬일인지 대만인들은 먹는 것에 ‘버블’ 넣는 것을 좋아한다. ‘버블티’라든가 ‘버블 와플’이라든가 뭐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마법을 부리는 식재료가 따로 있으니 그건 바로 돼지고기다. 어느 뒷골목, 간판도 제대로 달리지 않은 야외 식당에서 먹은 ‘화자오 뿌린 돼지고기 간볶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난해 내가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먹었던 그 많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요리였다.

대만은 야시장도 정말 유명하다. 사람이 많아서 발 디딜 곳조차 없는 시장 골목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맛있는 김, 찜기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증기 등이 그립다. 어느 야시장 골목을 가든 특별한 푸드 페스티벌이 열린 것 같았다. 여느 푸드 페스티벌과의 차이점이라면 밤에 열린다는 것과 밤마다 열린다는 것뿐이다. 한국 전통시장과도 닮았다. 그중에서도 파가 잔뜩 들어간 길거리 음식이 내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파빵 아니 파 넣은 크루아상 같은 충좌빙과 파호떡인 충유빙은 내 눈엔 인도 탄두리치킨 화덕처럼 보이는 오븐에서 만드는 것 같았다. 왜 저격했다고 하냐면 늦은 밤에 30분 동안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단 1분도 불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베이 여행 마지막 날, 난 대만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집착을 보고야 말았다. 그것도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서 말이다. 장제스가 1949년에 대만으로 넘어올 때 사람보다 먼저 보냈다고 하는 명나라 시대 보물들로 가득 차 있는 곳 말이다. 박물원의 정중앙에 이 보물들을 위해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고, 보안 유리 케이스까지 설치되어 있다. 이 보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몇 시간씩 줄을 선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전체에서 가장 비싼 보물은 두 점일 것이다. 어쩌면 대만을 통틀어 가장 비싼 것일지도 모른다.

그중 하나는 육형석(肉形石)이다. 말 그대로 고기 모양 돌이고 설명에도 고기 모양 돌이라고 되어 있다. 야구공보다 작은 크기인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지층과 색 때문에 간장소스에 푹 졸인 돼지고기를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맛있게 생겼는지 순간 바오(대만식 만두 빵)를 하나 사서 반으로 가른 후 그 돌을 올리고 땅콩과 고수와 양파 채 친 것을 올린 후 한입 크게 베어 무는 상상을 하고야 말았다.

다른 한 점은 역시 청나라 유물로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취옥백채(翠玉白菜)는 흰색과 녹색이 섞여 있는 옥에 어느 장인이 배추를 조각한 작품이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른 잎사귀 위에 여치 한 마리와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전시실을 빠져나오면서 난 이 두 점의 보물을 접시에 나란히 올려놓으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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