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유네스코 등재’가 일본 레스토랑의 성공에 기여할 가능성은?

등록 2020-12-24 07:59수정 2020-12-24 11:42

최근 일본 방송 취재 와
일본 전통식 유네스코 등재 의미 질문해

크리스마스 직전에 내게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는데, 요지인즉슨 우리 집으로 와서 나를 인터뷰해 화면에 담겠다는 것이었다.

<한겨레>의 내 칼럼을 쭉 읽어온 애독자 여러분이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오, 마이클, 당신처럼 매력이 철철 넘치고 중요한 사람한테 이런 일은 매일,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는 일어나는 것 아니에요?’ 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은 난생처음이다.

처음 퍼뜩 든 생각은 ‘이 사람들이 나를 또 만화 캐릭터로 만들 생각인가보군’이었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예전에 내가 일본 음식 문화에 대한 책을 써서 일본에서 나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 때 아티스트 라레초와 <엔에이치케이>가 나를 취재한답시고 영국판 호머 심슨으로 만든 이후 그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물론 내가 개그 감각이 좀 뛰어나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 <엔에이치케이>가 원한 것은 유네스코가 일본 전통 요리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일에 대해 내 소견을 말하라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와 전 세계 일식 업계에서 두각을 보이는 유명 인사들이 로비를 벌인 뒤 2013년께 일어난 일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였다. 이보다 앞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음식 문화로는 프랑스 요리, 지중해 요리, 멕시코 요리, 터키 요리 정도이니 기분이 좋을 만도 하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와쇼쿠(和食)로 불리는 일본 전통 요리는 특히 신년 축하를 위한 일본의 전통 식문화를 가리킨다. 주바코라 불리는 찬합에 담긴, 한입에 쏙쏙 들어가는 예쁜 음식들은 확실히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자손 번성을 상징하는 말린 청어알, 부지런하게 일하도록 해주길 기원하는 구로마메(검은콩), 설탕으로 조린 멸치, 생선살을 갈아서 으깨고 물들인 홍백 어묵, 달걀과 으깬 어묵을 섞어 구운 다테마키, 고구마를 삶아 체로 거른 다음 설탕에 조린 밤을 곁들인 구리킨톤 등 정성과 멋이 가득하다. 하지만 신년 축하음식이라는 데서 드러나듯 평소에는 먹지 않는 요리들이다. 와쇼쿠 전통은 일본에서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까.

같은 해에, 한국 독자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유네스코는 김장 문화 역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는데, 그 근거로 ‘김치는 한국 음식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계급과 지역 차를 초월하는 것이며 김장이라는 집단행동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재확인시킬 뿐 아니라 가족의 협동심을 강화할 훌륭한 기회’라는 점을 들었다. 한국에서도 요즘 김장하는 문화가 많이 약해졌다고 들었다. 김치는 사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말이다.

등재로 일본 식당 덕 보는 것 없어
그해 한국 김장 문화도 등재
자국 식문화 가치 재확인 계기는 되나
레스토랑 찾는 이들이 그걸 따지진 않을 터

난 음식이 극찬을 받는 문화적 지위에 오르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생각은 없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경우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정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엔에이치케이>에서 날아온 사람들이 우리 집에 촬영 장비를 들여놓고 이런저런 부산한 준비를 하더니, 게다가 6시간 동안이나 머물러 있으면서 퍼부은 질문은 하고많은 것들 중에서도 딱 하나, 하필 이것이었다. 일본 음식 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 전 세계에 있는 일본 레스토랑 성공에 얼마나 많이 기여했을까? 뉴욕, 런던, 파리, 싱가포르 등 주요 도시에도 <미쉐린 가이드> 별점을 받는 일식당이 기본적으로 2곳 이상 있을 정도이니 이런 질문을 던진 것도 이해해주겠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로!”

왜냐하면 정치인들, 행정 각료들, 부처 공무원들과 비정부기구(NGO) 인사들과 홍보 담당자들까지 섞여 유네스코 신청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 그 순간 주도권은 미팅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신청서 양식을 메우면서 자신들이 월급 받은 만큼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하려 애쓰는 남자들(일본에서는 대부분 남자가 한다)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음식을 경이롭게 만드는 요소들, 즉 맛있음, 친절함, 사랑은 잊히기 마련이다.

물론 <엔에이치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지만, 유네스코로부터 인정받는 것 역시 어떤 면에서는 중요한 일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함으로써 일본인 혹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식문화 유산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을 것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려고 할 테니 말이다.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급속한 노령화로 인한 인류통계학적인 변화의 시점에 유네스코 등재는 농업과 음식 생산과 전통 음식의 측면에서 봤을 때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나라들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실상은 신문 헤드라인을 몇 개 장식한다거나, 혹은 신문 몇 군데에서 4~5쪽짜리 지면을 할애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하루치 에피소드일 뿐이고 곧바로, 완전히 잊힐 것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국인이든 짐바브웨인이든, 아니 세상 그 누구든 오늘 밤에 무엇을 먹으러 갈까, 어느 레스토랑을 가면 좋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음, 무슨 음식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올랐더라? 모로코 음식이었나? 아니지! 일본이었다! 그래, 오늘 저녁은 스시야!’라고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혹시 내가 유네스코의 영향력에 관해 부적절할 정도로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음, 그렇다면 혹시 2013년께 음식 관련으로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벨기에의 오스트덩케르크의 말 위에서 새우 잡기’도 같은 해에 등재되었다. 이건 그물을 매단 말이 바다에 들어가서 걸어 다니며 그물을 넓게 펼치고 다시 그것을 오므려서 새우를 잡는 벨기에 전통 어로를 가리킨다. 오스트덩케르크에서 하루 두 번 세 시간씩 말 타고 새우 잡는 12가구는 자신들의 생존 방식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소식에 기뻐했을지 모르지만, 이 한 가지를 보기 위해 벨기에 오스트덩케르크까지 가고 싶어지는지 솔직히 묻고 싶다. 아니 이 글 이전에 한 번이라도 새우잡이를 말 타고 한다는 것을 들어본 적은 있는가?

내가 하는 말이 바로 그거다.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1.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2.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전설의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서 3.

전설의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서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4.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내 얼굴은 어떤 꼴? 5.

내 얼굴은 어떤 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