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자매가 부귀영화를 준다는 용의 비늘을 주웠다. 가난했지만 착했던 자매는 이를 가지지 않고 주인을 찾아주었고, 비늘의 주인이었던 봉과 아내인 황은 자매에게 축복을 내렸다. 하지만 그 축복이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장녀는 사랑할 상대를 만날 기회조차 없이 선계의 옷만 짓고 고쳐야 하는 운명을, 그리고 차녀는 오로지 지도자와 자매의 후계자를 낳을 운명만을 잇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현대를 살고 있는 자매 은침과 홍실도 이 저주와도 같은 축복 앞에 서 있다. 운명을 따르라는 선계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자 하는 이 자매 앞에, 어느 날 느닷없이 봉황 중 남편인 봉이 “정략혼인은 싫다”며 도망쳐 오는데….
도교 계열 신들과 우리네 민속신앙을 섞은 다음 웹툰 연재작 <수린당 – 비늘 고치는 집>의 이야기는 옛이야기를 현대에 맞게 절묘하게 비틀었다. 현대문물에 적응한 신들의 모습도 재미지만, 중요한 건 이 작품이 비추어내는 지점이다. 작중 선계의 압박은 사람들이 각자의 성별 및 위치에 따라 부여받은 역할로 인식되어 온 모든 종류의 암묵적 사회 규율이다. 그 모든 것에 물음표가 찍히고 있는 지금, 작품의 은유는 단지 동생 홍실의 비혼주의만이 아닌 다양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서찬휘(만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