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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 남편 말 기분 나빠요

등록 2021-01-22 07:59수정 2021-01-22 11:11

Q1 오래전 어색하게 멀어진 친구
방문 수업 교사로 다시 만나 너무 불편해
A2 일하다 보면 때로 괴로운 순간도 있어
초라한 마음 대신 일의 의미 되새겨볼 것

Q2 자존감 무너뜨리는 남편, 지긋지긋
졸혼으로도 법적인 권리 찾을 수 있나
A2 경제∙정서적 독립 방법 모색한 다음
자신감 찾아 당당하게 인생 2막 시작하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1 안녕하세요. 저는 방문 수업 교사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찍 결혼했고, 잠시 직장 생활을 하다 남편이 해외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2년간 해외에서 지내다 귀국해 아이 낳고 살다 보니 벌써 30대 중반이 됐네요. 경력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짧은 직장 생활, 하지만 이제 아이도 크고 제 일을 좀 찾고 싶었어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영유아 미술 체험 수업을 배워서 방문 교사로 일하게 됐어요. 코로나로 수업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제가 맡은 지역 부모님들 사이에서 꽤 좋은 평을 받아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신규로 등록한 한 아이의 집에 갔는데요, 가기 전까지는 아이 이름만 듣고 가다 보니 몰랐어요. 아이 엄마가 제 중학교 동창인 거 있죠. 그런데 반갑기보다는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그 친구는 학창시절 저와 어색하게 멀어진 친구였어요. 한 1년 친하게 지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 말이 얽히는 일이 있었고, 좀 불편해졌어요.

드문드문 소식을 전해 듣다가 대학을 각자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소식을 들을 일조차 없었는데, 너무 좋은 집에서 여유 있게 지내는 듯한 모습에 저는 사실 좀 위축됐어요. 하필 제 남편이 코로나 직격탄을 받는 직종이라 지금 휴직 중인데요, 그래서 마음이 더 그런 것 같아요.

친구도 좀 놀란 기색에 어색해하더군요. 내심 그 친구가 수업을 중단해주길 바랐는데 지금 한달째 그 집에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편하게요. 하필 이 동네에 배정되는 교사가 저뿐이라 이 친구가 그만두지 않는 이상 수업은 계속해야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말을 건네 볼까요? 친구는 아무 생각 없는 걸까요? 아니면 모른 척하고 지금처럼 수업만 하고 나오면 될까요? 그 시절 ‘손절’한 친구가 불편한 여자

A1 어색하게 멀어진 중학교 동창을 그냥 모임에서 마주쳤어도 어색하고 불편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맞닥뜨렸으니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이 들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이 불편한 마음을 차분히 관찰하세요. 어떤 마음이 가장 큰가요? 그것을 보세요.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와 현재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이 너무 비교되어서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서 싫은가요? 그 친구는 여유롭게 쓰는 어떤 돈이, 나의 생활비가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자격지심이 느껴질 수도 있겠고요.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 법한 상황이에요. 그러니 스스로 이렇게 말해주세요. ‘이런 상황에는 누구라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겪을 거야’라고요. 불편한 감정을 그저 없애려고만 하기보다, 내 감정을 인정해주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차분해진 후에는 현실적인 사고를 해야겠죠. 당신은 애초 당신의 일을 찾기 위해서 이 일을 한 거예요. 남편이 휴직 중인 상황에서 자신의 배움과 재능을 통해 분명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어요.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모든 일에는 좋은 순간, 성장하는 순간도 있지만 괴로운 순간, 소모되는 순간도 무조건 포함돼요. 대기업 회장조차도, 자기가 좋아하는 업무만 할 수는 없어요. 아이들과 교감하고 가르치는 것은 이 일의 좋은 순간이지만, 부모와의 소통이나 만남, 상사와의 업무 조율 같은 것은 당신이 이 일을 하고 있기에 겪어내야 하는 어려운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번 일은 넓은 시각에서 보면 그저 후자의 예일 뿐이죠.

내가 지금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짚어보세요. 일터에서 내가 초라하다 느껴질 때, 관계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 그럴 때마다 회피하고 그만두는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세요. 친구에게 수업을 중단해 달라고 말을 하면 간단히 그만둘 수도 있겠죠. 하지만 문제는 있습니다. 앞으로도 일하다가 초라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30년 넘는 인생, 20년 전 고작 1년 친했던 친구와의 희미한 기억 때문에, 혹은 그 친구가 나보다 여유로워 보여서 속상한 마음 때문에 지금의 내 소중한 일이 지장을 받는다면 그건 결국 일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겪게 될 손실일 뿐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모두 이런 것들을 견뎌내며 일터에서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의미라는 것이, 절대 가볍지 않으니까요.

내가 가르치는 아이에게 그저 온전히 몰입해서 일하고, 더도 덜도 아닌 다른 부모에게 하는 만큼 정확히 서비스를 제공하세요. 다시 친한 친구로 지낼 것도 아닌데요. 친구도 불편함이 없진 않겠지만, 그저 아이 생각을 해서 당신을 편안하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기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귀함을 더 깊이 깨닫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당당함이 당신에게 더 뿌리 깊이 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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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졸혼하려고 합니다. 애는 셋. 다들 잘 컸어요. 직장인 한명, 대학생 둘. 자기 밥벌이는 알아서 잘할 거 같아요. 남편과는 나이 차가 커요. 가구 수입, 부동산업 등 사업 수완은 좋은 양반이죠. 제 자랑 같지만, 전 젊었을 때 꽤 인기가 많았는데요, 남편이 워낙 제게 정성을 다해 결혼했지요. 전업주부로 열심히 살았어요. 애들 잘 키웠고, 내조도 잘했지요. 하지만 이제 졸혼하고 싶어요. 뼈에 사무치는 얘기 그만 듣고 싶어요. 남편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간혹 집에 들어오면서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라고 물어요. 기분 나빠요. 전 노는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죠. 싸울 때는 “돈 한 푼 못 벌면서…”라는 식으로 말하죠. 홀로 집에 있으면 우울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습니다. 그런 얘기 하면 “너만큼 편한 여자가 어디에 있나”고 합니다.

명절 가사노동도 대가 지급, 뭐 그런 기사도 무시하죠. 여성의 힘이 세졌다, 남녀평등시대다, 요새 어디 여성 비하하는 말을 하느냐 등등, 그런 건 전업주부인 나 같은 사람한테는 해당이 안 돼요. 다 일하는 여자나 젊은 애들 얘기죠. 실제 제 주변 전업주부는 저처럼 남편의 생각에 속 터지면서 사는 이가 대부분입니다. 학력이나 스펙이 좋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일이 있는 여자들은 잘 모를 겁니다. 아직 세상은 변한 게 없어요. 블로그에 평범한 제 얘기를 썼다가 그게 출판사 눈에 띄어서 책도 출간했는데요, 남편은 축하해주는 게 아니라 “뭐 하러 그런 걸 하느냐, 돈도 안 되는데…”라고 해요. 졸혼할 겁니다. 그런데 졸혼하자고 하면 남편은 분명히 “해, 해. 나가 돈 벌어봐라. 네 맘대로 해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내가 가정에 기여한 거 무시할 겁니다. 재산이 모두 남편 명의니까, 전 아마 한 푼도 못 받고 몸만 나가게 되겠죠. 다들 이젠 전업주부가 이혼하면 법적으로 재산권 등 다 보장받는다고 아는 이 많은데, 안 그래요. 현실과 달라요. 그래도 이혼은 그나마 뭐라도 해 볼 수 있잖아요. 졸혼해도 이혼처럼 여러 가지 보장받을 순 없을까요?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혼 말고 졸혼하고 싶은 여자

A2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태도의 남편 때문에 많이 지치셨군요. 일해서 배우자만큼의 돈을 버는데, 가사노동은 도맡아 하다시피 하는 여성도 ‘집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봅니다. 결혼하고 일하는 남자는 전보다 안정적인 존재로 여겨지지만, 결혼하고 일하는 여자는 ‘곧 임신할 여성’, ‘언제든지 그만두고 쉴 수도 있는 여성’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많지요. 임신과 출산에도 업무를 놓지 않으면 ‘독한 여자’가 되지만 임신과 출산, 양육 문제 등으로 직장을 포기하면 ‘이래서 여자들은 뭘 못 맡겨’라는 말을 듣지요. 이래도 욕을 먹고, 저래도 말을 듣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차별적인 언행은 이처럼 여성을 노동시장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뿌리 깊은 차별적 시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도 죄책감 없이 당신에게 ‘돈 한 푼 못 벌면서’라며 비아냥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쟁해도 바뀔 것 같지 않고, 이혼까지는 아닌 것 같으니 졸혼을 하기 원하는 사연 보내주신 분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다만 졸혼은 두 당사자 간의 사적 합의일 뿐 법적인 관계가 아니기에,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며 여전히 배우자의 상호의무가 남게 됩니다. 졸혼도 이혼처럼 상호 간 합의가 필요한 부분인데, 그것조차 해줄지 미지수입니다. 정말 말씀하신 대로 아무것도 없이 몸만 나가게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여요. 결혼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재산이라도 제대로 분할 받고, 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면 졸혼이 아니라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다만 경제적, 정서적 독립이 기반이 되지 않은 채 감행하는 이혼은 생활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이 또한 신중해야겠지요.

어려운 시국이지만 일단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내조와 가사노동은 할 만큼 하셨잖아요. 이제라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무엇이든 배우고, 일할 방법을 찾아보세요.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원에는 50대를 훌쩍 넘긴 여성들이 꽤 있습니다. 배움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것에는 늦은 때란 없습니다. 글재주가 있으시니 그것에 초점을 맞춰 봐도 좋겠네요. 졸혼보다 중요한 건 일단 내가 경제적 독립이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쉽지 않겠죠. 그러나 그 행보는 지금보다 분명 보람찰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열릴 때, 나에게 비아냥대던 사람에게서 잃었던 발언권을 되찾아오게 됩니다.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남편과 대화하고, 부부 상담이든 졸혼이든 이혼이든 선언하세요. 위대한 선언은 고작 홧김과 울분이 아니라 자신감과 당당함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남은 날이 많습니다. 가족에게 헌신했던 내 인생의 2막의 시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건투를 빕니다. 작가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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