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난 종국엔 올림픽이 취소될 것이라는 데 한 표 걸겠다. 멜버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테니스컵’도 온갖 소동과 논쟁 끝에 개최되었지만, 그런 과정들이 사례가 되어 도쿄올림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다 수천명의 운동선수들이 코로나19가 한창인 도쿄를 방문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로 비치기도 한다.(관람객 수천, 수만을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특히나 일본은 아직 전 국민 백신 접종도 요원한 나라다. 하지만 내가 어찌 알겠나. 기적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기적이 일어나면 올림픽이 열릴 수도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올림픽 광팬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나는 올림픽과 그 관련된 모든 것을 증오한다. 나에게 올림픽 경기는 비뚤어진 현대 음식 산업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겪는 난항이 조금도 기쁘지 않다는 점은 꼭 밝혀두고 싶다. 올림픽에 생사가 걸려 있는 이들에게도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싶다. 특히나 올림픽 특수를 바랐던 레스토랑, 독립 가게를 비롯한 소규모 자영업자들, 택시 회사와 기타 등등의 이유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안쓰럽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 모임 제한 등으로 아주 힘든 1년을 보낸 직후가 아닌가. 올림픽 자원봉사를 준비했던 많은 사람에게도 유감을 표한다.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남을 위해 내어줄 자세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이런 고결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려는 일은 분명 멋진 일이다.
스포츠 팬들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들은 올림픽에서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게 될 자신을 상상하며 오매불망 달려온 선수들이 보고 싶을 것이다. 선수들도 아마 이런 팬들의 마음을 알고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선수들은 팬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단련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슈퍼맨 혹은 원더우먼의 업적 같은 걸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1968년께 열린 멕시코시티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참가한 조정 선수 켄 드완은 지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산소마스크 훈련’을 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트레드밀에 올라가 뛰는 훈련이다. 1만피트 상공과 같은 조건을 만들어 뛰다가 다시 산소가 부족한 환경을 만들어 또 그만큼 뛴다. 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죽을 것 같은 환경을 이겨내야 올림픽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다. 프로 스포츠선수들이란, 정의를 내려 보자면 지구상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장 좁은 시야를 유지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이다.
과거 올림픽은 순수한 아마추어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경쟁의 장이다. 그때는 최고의 순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고귀함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선수들은 한순간의 퍼포먼스를 위해 스스로 신체를 단련해 인내력의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그 결과로 결국 단상에 올라 목에 메달을 걸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 순간의 선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먹어치우는 데 전력을 다해 인생을 바치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미안하다. 난 그 정도로 스포츠맨십은 없다. 하지만 그 매력만큼은 알겠다.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스포츠 경기가 어떻게 변질하였는가? 몇십년간 쇠락과 부침을 겪은 오늘날 올림픽은 뿌리 깊이 썩어서 금·은·동메달 단상을 둘러싸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맹목적 애국주의가 판을 치는 잔치마당이 되어버렸다.
덴마크인은 국기를 유난히 사랑한다. 내가 불편한 심사를 비추자 한 덴마크인이 항의하듯 말했다. “다른 나라들도 자기네 국기를 사랑합니다. 올림픽을 보세요!” 그래, 뭐, 그냥 휘게를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비뚤어진 심사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인은 고양이 생일에 자기 나라 국기를 게양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애국주의는 아주 훌륭한 비즈니스 재료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영예만을 좇는 스포츠 글로벌 ‘스타’의 스폰서로서 나서는 것이다. 이제 올림픽은 선수들이 흘린 땀의 영광을 대신 누리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착취 현장이 되어버렸다. 음료수 판매 기업과 식품회사가 이런 기업 중에서 가장 악랄하고 위선적일 것이다. 내가 어딜 말하는지 독자님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떠올릴 것이라 믿는다. 굳이 이 지면을 빌려 쓸 것도 없다.
설탕과 소금을, 고도로 정제한 탄수화물과 지방을 영양가 거의 없는 음식에 섞고, 매혹적인 포장을 해 유혹하는 회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손쉽게 구매하게 만든다. 유화제, 각종 화학제품, 부패방지제와 교묘한 탈을 쓴 설탕까지 마구 넣는다. 이런 것들로 범벅된 음식은 야생화를 흉내 낸 플라스틱 조화랑 똑같은 것이다. 진짜 꽃은 아니지만 화려하고 예쁘며 생기 발랄해 보이는 조화 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모습 그대로가 유지된다.
글로벌 식품회사들은 왜 올림픽에 멍에를 씌우려는 것일까? 청량음료 회사와 버거 기업들은 본인들의 생산품이 종국에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그로 인해 적어도 비만, 암, 심장병, 당뇨병 등 생명과 직결된 병을 일으킨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의 유통망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글로벌 의료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영리하게 수백만달러를 퍼부어 이를 모면하려고 한다. 건강을 해치는 그들의 인공 음식은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완벽한 몸매의 스포츠 스타와 짝짓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건강하고 날씬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자기 이득만 추구하는 계략이고, 교묘한 속임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특히나 어린 세대들이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면서 빨갛고 하얀 글자, 황금빛 ‘엠’(m)자를 스포츠의 활기와 건강한 스포츠맨십, 완벽한 몸매와 연결해 마음에 새기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수들은 경기를 준비하는 동안 이런 정크푸드를 건드리지도 않을 것이다. 출렁이는 뱃살과 고장 난 심장과 인슐린 주사와 직결되는 음식들이니까. 하지만 이런 건 브랜드 이미지에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