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이색 운동을 취재하면서 처음 폴댄스를 접했다. 지금은 많이 대중화됐지만 당시엔 소수만이 즐기는 운동이었다. 한번 매달려보라는 강사의 말에 봉을 한번 잡았는데 0.1초도 안 돼 떨어졌다. 손바닥에서 불이 나는 거 같았다. 가로 철봉에서 턱걸이도 못 하는 내가, 세로로 세워진 철봉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겠나.
당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빈약한 내 팔 근육이 아니라, 폴댄서의 손이었다. 굳은살이 박여 울퉁불퉁한 손 말이다. 많은 여성이 즐기는 손톱 관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꺼리는 ‘미운 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몸은 멍 투성이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영상 속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을 비틀 때마다 100m 달리기를 할 때나 나올 법한 거친 숨이 터져 나왔고, 봉과 몸이 부딪힐 때 ‘텅텅’소리가 울렸다. 철봉으로 몸을 때리는 셈이었다. 춤이라기보다는 기계체조에 가까웠다.
노출이 심한 이유도 있었다. 피부의 마찰력을 이용해 몸을 봉에 밀착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옷을 입게 되면 그만큼 마찰력이 줄어 미끄러질 위험이 커진다. 쉽게 말해 피부가 봉에 쓸려야 버틸 수가 있다. 그동안 섹시한 춤, 음란한 춤으로 인식되던 폴댄스의 편견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폴댄스를 보면 백조가 생각난다고 했다. 유유히 물 위를 떠다니지만, 수면 아래에선 발을 쉼 없이 휘젓는 백조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사뿐한 몸짓이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내한 결과물인 것.
육체의 고통은 익숙해진다. 오히려 폴댄서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편견’이다. 우리는 아주 적은 에너지로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손끝으로, 너무나 날카로운 칼들을 내뱉고 있다. 이정국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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