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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보는 월드컵스타 ⑤왼발의 달인들
“왼손에 150㎞를 던지는 투수가 있다면 지옥에서라도 데려와라.” 야구에서 왼손 강속구 투수는 엄청난 대접을 받는다. 희소성의 가치 때문이다. 한화의 ‘루키’ 류현진(19)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면 축구는 어떨까? 야구에 비해 희소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축구도 왼발의 유리함이 작용한다. 박성화 전 20살 이하 청소년 축구대표팀 감독은 “야구의 왼손투수만큼 왼발선수가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왼쪽에서는 왼발선수가 센터링이나 슈팅 때 정확도가 높다”고 말했다. 명수비수 출신의 김호곤 축구협회 전무는 “왼발선수가 드물기 때문에 수비하기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 가운데는 하석주, 고종수, 이을용, 김동진, 백지훈 등이 왼발잡이의 계보를 이루고 있다.
세계무대에서는 1970 멕시코월드컵을 제패한 브라질의 리베리누부터 시작해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히바우두(브라질), 사니나 미하일로비치(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이 유명했다. 그러면 이번 2006 독일월드컵을 빛낼 ‘왼발의 달인’은 누가 있을까?
가장 눈길을 끄는 선수는 누가 뭐래도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33·레알 마드리드)와 아드리아누(24·인테르밀란)이다. 하지만 ‘누가 더 왼발의 달인이냐’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허리통만큼이나 두꺼운 허벅지에서 터져 나오는 이들의 폭발적인 왼발슛은 모두 핵탄두급의 위력을 지녔다. 이 때문에 브라질은 골문에서 20~30m 떨어진 상황에서 프리킥을 얻었을 때 누구를 키커로 내세울지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 할 처지다.
먼저 왼발로 뜬 사람은 167㎝에 79㎏의 ‘땅딸이’ 카를루스다. 카를루스는 1997년 6월에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 대표팀과의 대결에서 그 유명한 ‘유에프오(UFO) 킥’을 성공시키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제일의 강력한 왼발 슈터로 떠올랐다. 당시 프랑스 문전 오른쪽 30m 지점에서 왼발 아웃프런트로 날린 프리킥 슛은 처음에는 완전히 골문 오른쪽으로 벗어나는 듯하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면서 세계 축구팬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왼쪽 윙백인 카를루스는 이런 가공할 슈팅력 외에도 강인한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오버래핑에 이은 정확한 문전 띄우기로 공격 선수 못지않게 상대 문전을 괴롭힌다.
이에 비해 189㎝, 86㎏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공격수 아드리아누는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몸싸움을 바탕으로 페널티지역 안팎에서 틈만 나면 결정력 만점의 왼발 대포알 슛을 가동한다. 같은 골잡이이지만 호나우두가 현란한 드리블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가볍게 골을 넣는 테크니션이라면, 아드리아누는 강력한 신체에서 뿜어나오는 힘을 100% 그대로 공에 실어나르는 정통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능력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기력이 쇠잔하고 있는 호나우두를 제치고 아드리아누가 이번 대회의 득점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밖에 네덜란드 대표팀의 ‘멀티플레이어의 교과서’ 필립 코쿠(PSV에인트호번)와 스페인 대표팀의 골잡이 라울 곤살레스(레알 마드리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 대표팀의 해리 키월(리버풀)도 빼놓으면 서운해할 왼발의 전문가들이다. 오태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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