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공격수…“6초안에 패스하라” /
골키퍼의 역할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골넣는 골키퍼’로 유명한 파라과이의 호세 칠라베르트, 드리블이 뛰어난 콜롬비아의 레오 이기타가 쉽게 떠오르는 공격 성향의 골키퍼다. FC서울의 김병지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의 플레이는 축구 흐름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선수 개인의 개성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축구규칙의 개정으로 골키퍼의 역할 자체가 공격적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골키퍼를 통한 시간끌기를 줄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위해 1992년과 2000년 골키퍼 규칙을 크게 손질했다. 피파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경기시간을 계측해 본 결과, 90분 가운데 실제 경기를 하는 시간은 54분에 불과했고, 이 중 골키퍼가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1사람 당 4분, 두팀을 합쳐 8분이나 된 데 따른 조처다.
92년 개정의 핵심은 의도적인 백패스를 손으로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많은 팀은 골키퍼에게도 패스연습을 시키기 시작했다. 규칙개정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시간끌기식의 안이한 백패스가 크게 줄어들었고, 득점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4년 뒤 미국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월드컵 때보다 30골이나 더 터졌다.
2000년에는 골키퍼가 공을 잡고 걸어가는 숫자(이제까지 4걸음)의 제한을 풀고, 6초 이상 공을 소유하지 못하도록만 했다. 이 규정으로 골키퍼는 효과적인 패스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이전처럼 공을 잡으면 멀리 뻥 내차는 것이 아니라, 팀의 공격라인에 맞춰 정확하게 ‘최초의 패스’를 하는 기능을 갖춰야 했다. 이운재가 공을 잡자마자 100m 달리기를 하듯이 뛰어나가 빈 공간에 공을 던져주는 역동적인 모습은 ‘골키퍼도 공격수’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오태규 선임기자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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