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청 빙상 팀 코치 면접 참석하는 안현수. 연합뉴스
최근 빅토르 안(안현수)의 성남시 쇼트트랙팀 코치직 지원과 후보 탈락, 선수들의 반발과 성남시의 선발 무효 결정 등은 한국 스포츠계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스포츠 스타와 관련된 기사는 늘 폭발성을 갖고 있기에 미디어의 보도 후폭풍도 컸다.
지도자 공개 모집의 당사자인 성남시의 아마추어 같은 행태는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서류 접수 뒤 안현수 등의 지원 사실이 노출된 것도 잘못이고, 이후 선발 과정이 안팎으로 논란이 되자 아예 코치 선발을 포기해 버린 것도 무책임한 일로 비친다.
성남시가 정한 자격 요건, 심사 기준을 거쳐 지원자 중에 뽑으면 된다. 외부에서 의혹을 보낸다면 정성·정량 평가의 결과 자료를 제시하면 될 것이다. 최종 압축된 후보에 대해 성남시청 팀 선수들이 반발하자, 합격자 발표 당일 채용을 포기한 것은 내부에서도 신뢰받지 못한 공모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빙상지도자연맹이라는 단체가 특정 지원자를 지목해 성명을 발표하고, 이것이 마치 빙상지도자 전체의 의견인 양 포장돼 전달된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장광덕 한국빙상지도자연맹 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 단체에는 상임위원 20여명과 지부장 등 70여명의 일반 회원이 있다. 이는 한국의 스피드, 쇼트, 피겨 스케이팅 전문 지도자 300여명 가운데 3분의 1은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빙상지도자연맹의 실체나 정체성은 불투명하다. 성명서는 단체 전체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기에 책임성을 수반한다. 하지만 성명서 발표 때 내부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말할 의무가 있느냐”며 답하지 않았다. 상임위원들이 누구인지, 또 잘 알려진 사람이 있는지 묻자, “개인정보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라며 공개를 꺼렸다. 공적인 활동을 지향하는 단체로서는 이례적으로 폐쇄적인 모습을 보인 셈이다.
한국빙상지도자연맹이 보내온 집행부 명단. 이름 부분은 가리고 보내왔다.
한국빙상지도자연맹은 안현수가 과거 러시아에 귀화하면서 받은 올림픽 금메달 연금 수령을 비판했다. 성명서에는 “이중국적이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돈을 받아간 뒤 몰랐던 척했다”며 도덕적 예단을 했다. 하지만 안현수가 최근 에스엔에스를 통해 밝힌 전후 사정은 다르다. 안현수는 “귀화하기 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일시불로 받은 연금은 심장병 어린이와 재활 후배 선수를 위해 전액 기부했다”고 밝혔다.
선수들이 집단반발로 지도자 채용이 무산된 것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선수나 부모들이 볼 때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최종 합격자로 내정돼 있다면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지도자를 뽑는 것은 지자체나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주체의 고유 권한이기도 하다. 합격자 최종 발표 전에 선수들이 반발해 무효가 된 이번 사태가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이해집단의 다툼이 치열한 종목일수록 채용 과정의 절차적 투명성, 평가 기준, 합리성 등의 잣대는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한 달간의 사태는 스포츠 보도에 대해서도 고민할 점을 안겨 주었다. 미디어는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을 선별적으로 다뤄 뉴스를 생산한다. 이것이 의제 선정이고, 이를 통해 대중이 특정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된다. 미디어에서 대중에게 영향력이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미디어의 현실 구성력은 뉴스를 나르는 포털 중심의 정보 소비구조에서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번에 특정 단체의 성명서가 배타적으로 과잉 대표된 것은 취재원 등 정보 소스에 대한 진실성, 정당성, 진정성 등의 검증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스포츠도 미디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스포츠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할 수도 없다. 적어도 상식과 양식이 기반이 돼야 한다. 좀 더 생산적인 스포츠 저널리즘을 위해서라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남시 쇼트트랙 코치 채용 과정 논란을 보는 많은 이들의 생각도 비슷할 것 같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