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1996년 7월, 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남자농구 선수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재·강동희·문경은·우지원·이상민·현주엽 등 내로라하는 최고스타들이 나섰지만 7전 전패로 12개국 중 꼴찌에 그쳤다. 몇몇 선수는 시합 전날 술 마신 사실까지 드러났다. 불난 집에 기름 붓듯 국민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최하위 결정전에서 앙골라에 61-99로 패한 뒤엔 여론의 돌팔매질을 받아야 했다.
사실 여자농구와 비교하면 남자농구는 ‘우물 안 개구리’다. 여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967년 체코대회와 1979년 서울대회 때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에선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첫 올림픽 은메달 기쁨을 맛봤다.
반면, 남자농구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티켓 따는 데 급급하다. 세계무대에 나가도 조별리그 탈락은 기정사실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9전 전패 최하위, 1998년 그리스세계선수권 5전 전패로 역시 꼴찌였다. 1978년 필리핀세계선수권 이후 세계무대 조별리그 1승도 없고, 결선 진출은 꿈이었다. 마치 과거 한국축구가 월드컵 16강 진출과 ‘1승’에 목말라 한 것처럼.
그런데 최근 대학 1년~고교 2년생 어린 선수들이 ‘작은 기적’을 이뤄냈다. 김승기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팀이 세르비아 세계청소년선수권 결선에 진출한 것이다. 지역예선이 없던 1948년 런던올림픽 8위를 빼면 사실상 한국농구 100년 사상 남자팀으로선 첫 쾌거다.
한국은 대진운도 나빴다. 2006세계선수권 우승팀 스페인, 2004아테네올림픽 우승팀 아르헨티나, 중남미 강호 푸에르토리코와 한 조에 들었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미국에 이어 세계랭킹 2·3위 나라다. 청소년이라고 결코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비록 졌지만 악착같은 수비와 적극적인 튄공잡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침내 한국(25위)보다 랭킹이 12계단 높은 푸에르토리코(13위)에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국제농구연맹(FIBA)은 홈페이지에서 한국팀의 근성과 정신력을 칭찬했다. 박유민(중앙대) 변기훈(건국대) 김민섭(성균관대) 김민수(미국 사우스켄트고) 등등…. 한국 남자농구에 희망의 빛을 던진 어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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