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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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대표팀은 뒤숭숭했다. 박명수 전 대표팀 감독 성추행 사건은 선수단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베이징올림픽 티켓이 걸린 아시아선수권이 코 앞에 닥친 지난달 하순 대표팀은 충격에 휩싸였다.
악재는 또 있었다. 베테랑 전주원은 무릎 수술로 대표팀에서 빠졌다. 신예 최윤아와 이경은은 팔꿈치와 손가락에 깁스를 했다. 포인트가드만 골라가며 다쳤다. 농구에서 포인트가드는 축구의 공격형 미드필더, 배구의 세터와 같은 존재. 공격이 바로 포인트가드 손 끝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포인트가드가 없다니…. 유수종 감독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유 감독은 지난해 도하에서 아시아대회 사상 첫 노메달 수모를 당했다.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고참들을 모두 뺀 결과다. 그는 도하의 참패를 만회해 보려고 절치부심했다. 더욱이 베이징올림픽 티켓이 걸린 아시아선수권은 한국에서 열린다. 그러나 하늘은 한국팀을 외면하는 듯 했다.
유 감독은 궁여지책으로 포워드 박정은에게 포인트가드를 맡겼다. 박정은 소속팀 삼성생명은 대표팀과 상황이 똑같다. 포인트가드 이미선이 부상으로 2년 동안 코트에 서지 못했다. 노련한 박정은은 이미선 대신 포인트가드를 맡아 팀을 지난해 여름리그 우승, 올해 겨울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표팀은 승승장구했다. 준결승까지 6전 전승.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중국과 결승을 앞두고 유 감독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준비된 기회는 행운이고 준비되지 않은 기회는 불운이다.” 아시아 정상을 탈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왔다. 그런데 과연 대표팀은 행운을 잡을 준비가 돼 있었던 걸까?
중국과 결승 2쿼터에서 박정은마저 다쳤다. 앞니가 흔들리는 중상이었다. 코칭스태프는 눈 앞이 캄캄했다. 이젠 정말 포인트가드가 없다. 하지만 코트에 들어선 5명 모두가 포인트가드였다. 패스에 패스를 거듭하며 더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도움주기에서 중국을 16-8로 압도했다. 종료 총성이 울리고 꽃가루가 뿌려졌다. 선수단 입가에 그제서야 미소가 번졌다.
한국여자농구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4강에 올랐다. LA의 영광이 베이징에서 재현되길 기대해 본다.
김동훈 기자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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