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과테말라 동포 김영구씨는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 가는 길 같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구불구불한 길이 그랬고, 귀가 멍해지는 고지대라는 점도 같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옥수수밭까지 영락없는 강원도였다.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파나하첼까지는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서울에서 속초나 강릉 정도 가는 시간이었다. 강원도가 서울에서 동쪽으로 뻗었다면 파나하첼은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125㎞를 달려야 했다.
강원도에 동해가 있다면, 파나하첼에는 마치 바다 같은 아티틀란 호수가 유명하다. 해발 1550m에 자리한 이 호수는 둘레 120㎞, 최저 수심이 320m에 이른다. 아티틀란 호숫가에는 인디오(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적게는 100~200명에서 많게는 3천명이 부락을 이루고 있다. 아티틀란 호수에 채 닿기 전, 깨진 시멘트 바닥 위에서 어린 인디오들이 농구 하는 모습이 보였다. 농구대는 낡고 그물도 없었지만 어린이들은 마냥 신바람이 났다.
배를 타고 아티틀란 호수를 건넜다. 40여분간 20여㎞ 물살을 헤쳐 도착한 곳은 원주민 400여명이 사는 작은 부락 산티아고 카트리나. 이곳에선 아직도 여자들이 인디오 전통의상 ‘티피코’를 입고 다닌다. 그만큼 문명과는 거리가 있다. 주민들은 직접 만든 공예품과 그림, 옷 등을 관광객들에게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어린이들은 관광객을 졸졸 따라다니며 구걸하듯 “싱코 케찰!”(5케찰·우리돈 600원)을 외쳤다. 그런데 어린 인디오들이 쇠그물이 걸린 농구대를 양쪽에 두고 농구를 하고 있었다. 30~40명이 흙먼지 풀풀 날리며 고무로 만든 농구공 2개를 가지고 떼지어 놀았다. 티피코를 입은 여자 어린이도 절반쯤 됐지만 아랑곳않고 경기에 열중했다. 드리블도, 슛 폼도 엉성했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농구 하는 아이들은 1773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옛 수도 안티과에서도 목격됐다.
과테말라는 국제농구연맹(FIBA) 세계 순위에도 못 드는 나라다. 1포인트 이상 얻어 순위에 든 나라는 모두 74개국. 미국이 1위(832포인트), 한국은 25위(52포인트)다. 하지만 과테말라 깊숙한 곳까지 농구는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와 지구 정반대편 오지의 원주민들이 남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바스켓에 공을 넣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스포츠’ ‘평화’ ‘농구’…. 이런 단어들이 기자 뇌리를 한순간 스쳐갔다.
파나하첼(과테말라)/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해발 1550m 인디오 아이들 ‘희망의 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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