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환이 10일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바람을 가르는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던 차준환(21·고려대). 그가 당당히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최초로 세계 톱5에 들었다. 메달 이상의 값진 성과였다.
차준환은 10일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오페라 곡 〈투란도트〉에 맞춰 4분여 연기를 펼쳐 182.87점(구성점수 93.59점+예술점수 90.28점·감점 1점)을 받았다. 앞서 열린 쇼트프로그램(8일)에서 99.51점(4위)을 받았던 차준환은 종합 282.38점으로 최종 5위에 올랐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쇼트, 프리, 종합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차준환은 이날 첫 점프였던 쿼드러플(4회전) 토루프 점프에서 넘어졌지만 쿼드러플 살코를 비롯해 나머지 6개 점프는 깔끔하게 수행해냈다. 그는 경기 뒤 인터뷰에서 “초반에 크게 넘어지는 실수를 했지만 나머지 구성 요소를 잘 마무리하려고 했다”면서 “올림픽인 만큼 경기하는 순간순간을 느끼려고 했고 기억하려고 했다. 그 목표 안에서 잘해낸 듯하다. 이번에 아쉬운 점을 보완해서 앞으로 더 강한 선수로 성장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다음 대회 때는 “더 많은 4회전 점프를 구성 요소에 넣고 깨끗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싶다. 숙제가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차준환은 주니어 때부터 한국 남자 피겨 역사를 바꿔왔다. 한국 남녀 통틀어 공식 대회에서 쿼드러플(4회전) 점프에 처음 성공했고, 주니어 세계신기록까지 작성했다. 2016~2017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남자 피겨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시니어 데뷔 이후에는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메달을 딴 최초의 한국 남자 피겨 선수가 됐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는 종합 15위에 올랐다. 한국 남자 싱글 올림픽 최고 순위였다.
2021 세계선수권 때는 10위에 오르면서 올림픽 출전 티켓 두 장을 따냈다. 한국 남자 피겨 선수 두 명이 동시에 올림픽 무대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준환과 함께 출전한 이시형(22·고려대)은 쇼트프로그램 연기 때 점프 실수를 하면서 27위로 첫 올림픽을 마쳤다.
차준환이 10일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오페라 ‘투란도트'의 음악에 맞춰 연기를 펼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이호정 〈에스비에스〉(SBS) 피겨해설위원은 차준환의 장점에 대해 “스케이팅을 할 때 배경 음악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안다. 음악 해석 능력이 좋고 강약 조절도 좋다”고 밝혔다. 프리 연기만 놓고 보면 다른 상위권 선수들은 쿼드러플 점프 4~5개를 구성 요소로 넣었는데 차준환은 2개만 뛰었다. 과감성보다는 안정성으로 승부를 봤고 곡 해석 능력으로 승부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성공적이었다.
차준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그래서 “좋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자”, “하루, 하루를 채워서 멋진 1년을 만들자”는 말을 자주 해왔다. 그의 하루, 하루가 모여 한국 남자 피겨는 그동안 전혀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한편, ‘점프 머신’ 네이선 첸(23·미국)은 쇼트에 이어 프리에서도 1위에 오르면서 금메달(332.60점)을 차지했다. 2위는 카기야마 유마(310.05점), 3위는 우노 쇼마(293.00점). 올림픽 3연패에 나선 하뉴 유즈루(28·일본)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쿼드러플 악셀(4.5회전)을 시도했으나 착지 때 넘어지면서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종합 4위(283.21점). 유영(18), 김예림(19·이상 수리고)이 나서는 피겨 여자 싱글은 15일 쇼트프로그램, 17일 프리스케이팅이 열린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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