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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 특집

‘논란의 별’ 에일린 구, 그리고 폐쇄루프에 갇힌 중국 [링링 베이징]

등록 2022-02-21 04:59수정 2022-02-21 15:27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 정부가 보여주려던 것과 드러난 것
에일린 구가 18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스노우파크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키 프리스타일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우승한 뒤 오성홍기를 두르고 기뻐하고 있다. 장자커우/로이터 연합뉴스
에일린 구가 18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스노우파크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키 프리스타일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우승한 뒤 오성홍기를 두르고 기뻐하고 있다. 장자커우/로이터 연합뉴스

링링은 ‘청량하다, 시원하다’는 뜻의 중국말로, 소리가 깨끗하게 잘 들리는 모양을 의미합니다. 동음이의어 가운데는 ‘춥다, 얼음이 두껍게 얼다’라는 뜻의 말도 있습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부터 올림픽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베이징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올림픽 기간 베이징을 가장 뜨겁게 달군 스타는 단연 에일린 구(19)다.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2019년 6월 중국 대표로 뛰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 나라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중국 입장에선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었다. 구는 이번 대회 금메달 2개·은메달 1개를 따내며 맹활약했다. 중국은 ‘구아링’(구의 중국 이름) 앓이에 빠졌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생겼다. 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에 댓글이 달렸다. “왜 당신은 다른 중국인은 할 수 없는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만리방화벽’이란 통제 시스템으로 인스타그램, 유튜브, 구글 등 접속을 차단한다. 이에 구는 “누구나 앱스토어에서 무료로 가상사설망(VPN)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이피(IP) 우회를 이용해 접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난 듯 보였다. 대화가 오고간 게시글은 곧 삭제됐고, 구는 잇달아 메달을 목에 걸며 영웅이 됐다. 하지만 이 대화는 구를 대하는 중국 정부의 곤경을 보여준다. 구는 극심한 불평등에 처한 중국인의 감각을 건드린다. 구의 성공에는 중국 고위 관료 딸로 투자은행에서 일한 어머니가 있다. 구 본인도 광고 모델로 수백억원을 벌어들인다. 대다수 중국인은 가질 수 없는 배경과 부다.

올림픽을 앞둔 지난 1월말 중국에선 장쑤성에서 발견된 한 여성의 사연이 공분을 일으켰다. 이 여성은 판자집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지내고 있었는데, 감금된 채로 8명의 아이를 낳았다. 에일린 구 열풍에 이 여성이 다시 소환됐다. “쇠사슬에 묶인 여성과 에일린 구 가운데 누가 진짜 중국 여성의 모습이냐”는 질문이었다. 구의 인스타그램 이용에 관한 불만은, 이런 뿌리 깊은 불평등에 기반한다. 애국주의 상징으로 내세운 구가 오히려 중국 사회 불평등 문제를 떠올리게 한 셈이다.

중국은 올림픽 참가자와 중국 사회를 완전히 분리하는 폐쇄루프로 이번 대회를 치렀다. 한자릿수 코로나19 확진자, 효율적 행정체계, 친절한 자원봉사자…. 그들은 폐쇄루프를 통해 중국의 이런 모습만을 보여주길 원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중국에 올림픽 개최 권한을 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독일 나탈리 가이젠베르거)고 말하는 선수들이 보여주듯, 세계가 확인한 건 중국의 폐쇄성과 경직성이었다.

대회를 치르면서, 실은 중국 사회가 커다란 폐쇄루프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정부는 폐쇄루프 속 국민에게 애국심의 화신으로서 구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쓰며 인터뷰를 하던 구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어린 자원봉사자들이 그에게서 발견한 ‘영감’은 과연 시진핑 주석이 열었다는 ‘신시대 중국’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거침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구의 자유로움이었을까.

구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아이피만 우회하면 쉽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더욱이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감각은, 굳이 다운로드할 필요 없이 우리 뼛속에 새겨져 있다. 인스타그램 논란은 해프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말대로, “작은 불씨가 온 들판을 태울 수 있다.”

베이징/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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