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증거조작 행태 보니
인터넷팩스로 선양에 보낸 문서
발신번호 ‘화룡시’로 고쳐 재전송
검찰이 화룡시에 보낸 공문은
제3자에 ‘팩스 가로채라’ 지시
법원 확인요청뒤 조작한 문서는
민변의 증거조작 폭로로 ‘빛’ 못봐
인터넷팩스로 선양에 보낸 문서
발신번호 ‘화룡시’로 고쳐 재전송
검찰이 화룡시에 보낸 공문은
제3자에 ‘팩스 가로채라’ 지시
법원 확인요청뒤 조작한 문서는
민변의 증거조작 폭로로 ‘빛’ 못봐
국가정보원은 ‘탈북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중국 공문서인 양 위조된 증거를 제출하고 이를 숨기려는 과정에서 공문 가로채기, 팩스 발신번호 변조, 공문서 내용과 관인 조작, ‘문서 세탁’ 등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수법을 총동원했다. 특히 국정원은 재판부가 중국 대사관에 공문서 진위 확인을 요청한 뒤에도 증거조작을 멈추지 않는 등 조작에 조작을 거듭해 사법 절차를 철저히 농락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31일 검찰 설명을 종합하면,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아무개 과장(48·일명 ‘김 사장’·구속기소)과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대공수사국 권아무개 과장은 지난해 10월 유우성(34)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을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검사는 중국 화룡시 공안국에 ‘당신들이 발급한 게 맞느냐’는 취지의 확인 공문을 보냈다.
가짜 출입경기록이 들통날 것을 우려한 이들은 ‘(화룡시 공안국에 있는) ‘제3자’에게 미리 팩스 송신 시각을 알려줘 책임자가 (대검이 보낸) 공문을 보지 못하게 하자’고 모의했다. 이와 동시에 제3자에게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발급사실확인서 위조를 지시했다.
김 과장과 권 과장은 이 제3자에게서 위조된 ‘화룡시 공안국 명의 발급사실확인서’를 건네받고, 서울 내곡동 국정원 사무실에서 인터넷 팩스를 이용해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으로 이 문서를 전송했다. 하지만 발신번호가 화룡시 공안국 대표번호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번호를 고쳐 다시 보냈다. 이들은 국정원 출신인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 소속 이인철 영사에게 “이 문서를 정식 외교경로로 대검찰청에 전달하라”고 지시해 위조 문서를 정식 외교문서로 ‘세탁’했다.
김 과장은 변호인단이 ‘삼합변방검사참(세관) 정황설명서’로 자신들이 위조해 온 ‘화룡시 공안국 발급사실확인서’를 반박하자 ‘삼합변방검사참 정황설명서에 대한 답변서’를 날조하기로 했다. 김 과장은 지난해 12월 협조자 김아무개씨에게 “변호인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답변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씨가 “가짜로 만들어 오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자 “중국에서 문제될 리 없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김 과장은 김씨에게 위조 문서에 적힐 문구를 적어줬다. 이후 중국인 위조업자가 740만원을 요구한다고 김씨가 보고하자 “그대로 진행하라”고 했다. 김씨는 중국에서 위조업자를 만나 답변서를 위조하면서 ‘삼합변방검사참이 유씨에게 위법한 정황설명서를 발급했다’는 내용의 범죄신고서도 함께 위조했다.
이렇게 위조한 문서의 공신력을 높이는 데는 또 이 영사가 동원됐다. 김 과장과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원 사무실에서 전문을 통해 이 영사에게 “‘위조 문서들이 진실하다’는 확인서를 작성해 외교행낭으로 송부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이 영사가 문서가 진실하지 않다는 점을 알면서도 확인서를 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유씨 출입경기록의 진위 공방이 사그라지지 않자 국정원은 마지막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변호인단이 합법적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발급받은 유씨의 출입경기록(출-입-입-입)에 대해 ‘실체와 다르다. 오류 수정이 시작됐으니 곧 고쳐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판부에 이런 내용을 주장하려고 2월 말 중국동포 임아무개(49)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동시에 국정원은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서 위조를 다시 시작했다. 협조자 김씨는 김 과장의 부탁을 받고 2월6일 중국인 위조업자를 만나 유씨 변호인단이 낸 ‘연변조선족자치주 명의 출입경기록’을 원본으로, 국정원 주장대로 ‘오류가 수정된’ 연변조선족자치주 명의의 출입경기록을 만들어냈다. ‘변호인단이 낸 출입경기록의 오류가 드디어 수정됐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씨는 이 위조 문서에 대한 공증서를 위조하려고 중국 지인의 자동차운전면허증에 대한 공증서를 활용하기도 했다.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가 중국 쪽에 사실조회를 요청한 뒤에도 이뤄진 출입경기록 조작은 2월13일에 완료됐다. 그러나 이튿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증거조작을 폭로하면서 마지막 조작 문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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