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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합신센터의 탈북자 “선생님들 친절”…민변 “증거조작 호도”

등록 2014-04-07 08:43수정 2014-04-21 19:19

국가정보원이 지난 4일 언론에 공개한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중앙합동신문센터 전경. 오른쪽 건물에 숙소와 교육·후생시설이 있고, 정면 건물에는 조사실 등이 있다.  국가정보원 제공
국가정보원이 지난 4일 언론에 공개한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중앙합동신문센터 전경. 오른쪽 건물에 숙소와 교육·후생시설이 있고, 정면 건물에는 조사실 등이 있다. 국가정보원 제공
일급 국가보안시설 첫 공개

휴대폰 맡기고 사진촬영도 제한
안내 직원도 헷갈리는 미로 구조
‘유가려 사건’뒤 독방출입방식 개선

“여기선 폭행 불가능…환대 고마워”
탈북 ‘합격자’, 간담회서 밝혀

국정원, 공개 거부 태도 뒤집고
‘한국의 관타나모’ 비난에 문연듯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 32명을 태운 버스가 경기도 시흥시로 향했다. 국도를 달리던 중 표지판이 없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했다. 이윽고 높은 담장에 철조망이 둘러쳐진 회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탈북자들이 입국하자마자 입소해 진짜 탈북자가 맞는지 조사를 받아야 하는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다.

국가정보원은 2일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국가보안시설 중 최고 수준인 ‘가’급으로 지정된 합신센터 내부를 공개하겠다는 것이었다. 2008년 12월 개소 후 보도용으로 언론에 공개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간첩 혐의를 받는 유우성(34)씨의 동생 유가려(27)씨가 이곳에서 6개월간 독방에 갇혀 조사받다가 폭행·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해, ‘한국의 관타나모’라 불리며 비난이 거세지던 참이었다.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았고, 기자들은 휴대전화를 맡기고 들어가야 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잡은 합신센터는 20만1435㎡(6만평) 터에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로, 사무동·심사동·숙소동·교육후생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54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현재 350여명이 머물고 있다고 했다.

국정원의 안내에 따라 방문한 곳은 탈북자가 조사받는 동안 지내야 하는 독방, 기초 조사를 하는 1인 조사실, 의심스러운 탈북자를 기무사령부 등과 함께 조사하는 합동조사실, 의무실, 도서실, 놀이방 등이었다. 사무동을 제외한 건물들은 ‘ㄷ’자 형태로 배치됐는데, 안내를 하는 국정원 직원도 잠시 위치를 헷갈릴 정도로 구조와 동선이 복잡했다.

국정원은 유가려씨가 여섯달 동안 머물렀던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있는 방은 공개하지 않았고, 다른 독방을 보여줬다. 16.5㎡(5평) 남짓한 크기에 옷장, 책상, 침대, 화장실이 있었다. 유씨는 6개월간 달력 없이 지냈다고 했는데, 지금은 2014년 달력이 벽에 붙어 있었다. 유씨가 머물 땐 밖에서만 문을 열 수 있어 사실상 24시간 감금 상태였는데, 국정원은 지난해 가을부터 탈북자들이 출입증 카드로 스스로 드나들게 바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도 없었다. 의무실에 가니 5명의 탈북자가 소파에 앉아 있는데, 합신센터가 제공한 운동복을 입고 ‘김○○, 4252’ 식의 이름표를 걸고 있었다. 5명 중 여성 4명은 모두 같은 자세로 무릎을 모으고 두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었다.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아 마치 정지화면을 보는 듯했다.

조사실마다 시시티브이가 달려 있는데 모니터만 할 뿐 녹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합신센터장이라는 국정원 관계자는 “보통 5~10일이면 조사가 끝나는데,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어 장기 조사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당사자 동의를 받고 녹화를 한다”고 했다. 유가려씨 조사 영상은 보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3개월이 지나면 삭제한다”고 했다.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국정원 주장을 입증할 증거인데 왜 법정에 안 내고 삭제했느냐’는 질문에는 “조사관들이 법정 증언 등으로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걸 증명했다”고 답했다.

센터를 둘러본 뒤 탈북자 5명과 면담을 했다. 모두 4~5일간 짧은 조사를 받고 진짜 탈북자로 ‘합격’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들이 진술한 내용을 확인하거나 서명하지 않았고, 확인해보라는 요청도 없었다고 했다. 국정원은 애초 여성 탈북자의 경우 반드시 여성 조사관이 조사를 한다고 설명했으나, 한 10대 여성은 남자 조사관한테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조사관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에 대해 한 30대 여성은 “탈북자를 조사해야 하니 응당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우리를 환대해줘서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라고 말했다.

유가려씨가 이곳에서 폭행당했다는 말을 들어봤느냐는 질문에 40대 남성은 “폭행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서는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십니다”라고 말했다. ‘증거조작 사건을 보면서 비슷한 일에 엮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마음이 검으면 그런 걱정을 하겠는데 전혀 걱정이 안 됩니다”라고 했다.

합신센터 공개는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때와 여러모로 상황이 닮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국정원은 2급 비밀인 대화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전격 공개했다. 국정원은 유우성씨의 1심 재판에서 합신센터 내부에 대한 설명이 공개되면 안보에 위험이 생긴다는 이유로 탈북자들의 증인신문에 대해 비공개 요청을 한 바 있다. 그동안 몇몇 언론이 합신센터를 찾아갔지만 같은 이유로 취재를 제지당했다. 그러던 국정원이 국가 안보상 기밀이라는 합신센터 내부를 공개했으니,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려는 시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유씨 변호인단은 4일 보도자료에서 “이번 공개 행사는 국정원이 증거조작 행위에 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가혹행위를 통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제공하는 일방적 설명, 국정원의 의도에 따라 진술할 수밖에 없는 수용 탈북자의 인터뷰와 제한적 공개로 마치 인권침해가 없는 양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흥/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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