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지 겨우 한 달 지났는데 마치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교황이 여기 머무는 동안 사람들 마음은 잠시나마 먹구름이 걷힌 맑은 하늘이었다. 교황의 말 한마디, 눈짓과 손짓 하나에까지 온 나라의 눈과 귀가 쏠렸던 걸 보면 한국에 머무는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실상 우리...
최근 출간된 학담 스님의 <아함경>(12권)은 원고지 4만5000장에 육박하는 분량만으로도 한국 불교 번역·연구 역사에 획을 긋는 성취라 할 만하다. 1970년 법대 1학년 재학 중 출가한 학담 스님은 1980년 겨울안거 때 용맹정진 하던 중 “‘아함’에서 ‘화엄’까지 붓다의 교설이 연기중도의 진실을 밝히는 한맛의 법임...
“천둥 번개와 함께 몰려오는 먹구름, 무시무시한 화산, 폐허를 남기고 가는 태풍, 파도가 일렁이는 끝없는 대양….” 이마누엘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열거하는, 숭고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은 인간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만약 안전한 곳에서 이 광경을 목격...
미국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스트레스에 관한 흥미로운 조어를 소개한다. 디스트레스(distress)와 유스트레스(eustress)가 그것이다. 스트레스가 다 몸에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디스트레스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스트레스라면, 유스트레스는 긍정적이고 성장을 돕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전쟁사학자 존 키건의 첫 문장이다. 1000만의 목숨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비극이었고, 전쟁의 끔찍한 결과를 미리 알았더라면 외교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다는 것이다. 1차 대전은 유럽에 전쟁은 없다는 낙관이 낳은 역설적 참화이...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애도와 우울증>을 발표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프로이트의 설명을 따라가자면, 애도(Trauer, 슬픔)의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데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어서 아무리 격심하다 해도 치료를 요하진 않는다. 충분히 깊이 슬퍼하고 나면 아픔은 가라앉고 다시 일상...
사회학자 김덕영의 <환원근대>는 박정희 집권기에 굳어진 한국 근대화의 성격을 ‘환원근대’라고 명명한다. 민주·인권·자율·개성 같은 근대성의 모든 가치를 경제적 가치 하나에 종속시키는 것이 환원근대의 핵심 특징이다. 이 환원근대의 틀을 결정한 박정희가 ‘강력한 국가를 이끈 강력한 지도자였다’는 데는 박...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작 <세계사의 구조>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해 좀 생소한 주장을 편다. 흔히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라타니는 민주주의가 소아시아 해안 지역 이오니아에서 발원했다고 말한다. 이오니아에서 출현한 이소노미아(isonomia)가 민주...
대런 애러노프스키 영화 <노아>의 바탕은 <구약성서> 창세기 6~9장에 실린 ‘홍수와 방주’ 이야기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의 말미(9장18~27절)에 뜬금없다 싶은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술에 취한 노아 이야기다. 이 삽화는 방주 밖으로 나온 노아가 최초의 포도 농사꾼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