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번성하는 이집트과일박쥐 새끼. 생존에 필요한 담력은 환경에서 얻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키 사무니-블랭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하면서 야생동물 가운데 도시생활에 적응해 번성하는 종이 적지 않다. 이들은 도시의 조각난 서식지에서 어쩌다 얻어걸리는 먹이로 살아간다. 사람과 인위적 시설에 겁먹지 않는 대담함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도시 야생동물의 겁없는 성격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얻는 형질일까. 이스라엘 연구자들이 도시와 농촌에서 모두 번성하는 이집트과일박쥐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이 질문의 답을 구했다.
연구자들은 과일박쥐를 상대로 일종의 성격 테스트를 했다. 박쥐 우리 바닥에 통 모양의 상자를 놓고 안에 맛있는 과일을 집어넣은 뒤 박쥐가 밤새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과일박쥐는 날개를 접고 바닥에 내려앉기를 꺼린다. 더구나 좁은 구멍에 들어가 먹이를 찾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험 결과 농촌 박쥐가 구멍 속 과일을 먹기까지는 여러 시간이 걸렸지만 도시 박쥐는 주저하지 않고 문제를 풀었다.
연구에 참여한 리 하르텐 박사는 “도시에 적응한 과일박쥐는 야생의 박쥐보다 더 대담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이런 형질을 타고나는지 획득하는 건지 알아봤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도시를 나는 이집트과일박쥐. 몸길이 60㎝인 대형 박쥐로 농촌과 도시 모두에서 열매를 먹으며 번성한다. 새끼는 태어난 뒤 3주 동안 어미의 젖꼭지를 문 채 들러붙어 지낸다. 유발 바르카이 제공
연구자들은 먼저 도시와 농촌에서 포획한 과일박쥐 어미와 새끼 86쌍을 대상으로 대담한 형질이 유전되는지 실험했다. 갓 태어난 과일박쥐 새끼는 첫 3주 동안 어미의 젖꼭지에 들러붙어 지낸다.
실험 결과 한 번도 홀로 먹이를 찾지 않은 새끼도 농촌 출신보다 도시 출신이 더 대담했다. 연구책임자인 요시 요벨 교수는 “이 결과로부터 박쥐의 대담함은 어미로부터 유전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새끼는 태어난 뒤에도 어미에 노출된다. 새끼는 어미로부터 배우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진은 이번에는 교차 입양 실험을 했다. 도시 어미 박쥐의 새끼를 시골 어미 박쥐에 맡겨 기르게 하고 시골 어미가 낳은 새끼는 도시 어미에 입양했다.
그랬더니 결과는 뒤집혔다. 하르텐 박사는 “실험에서 새끼 박쥐는 생물학적 어미가 아니라 입양한 어미처럼 행동했다”며 “이것은 대담함이 유전되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어미에서 새끼로 전달되는 획득 형질임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새끼를 안은 채 열매를 따먹는 어미 과일박쥐. 도시는 먹이가 다양하고 가변적인 환경이어서 스트레스 수준이 높다. 유발 바르카이 제공
최근 다양한 동물이 개체마다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다양한 서식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다. 세계의 55% 이상이 도시일 정도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하면서 도시에 진출한 야생동물이 어떻게 적응하게 됐는지를 두고 ‘유전이냐 환경이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연구는 적어도 이집트과일박쥐에 관한 한 유전보다 환경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도시에 입양된 농촌 출신 과일박쥐 새끼는 어떻게 후천적으로 대담한 형질을 얻게 됐을까.
하르텐 박사는 “어미의 젖에 포함한 어떤 물질이 전달되는 것 같다”며 “별도의 실험 결과 도시 박쥐의 모유 속에는 농촌 박쥐의 모유에서보다 코르티솔 호르몬이 많이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코리티솔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많이 분비된다. 연구자들은 “농촌 과일박쥐는 비교적 단일하고 일정한 과수원에서 주로 먹이를 찾지만 도시에서는 먹이 종류도 많고 변화도 크다”며 “이 때문에 도시 과일박쥐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을 수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요벨 교수는 “도시환경은 역경이 많고 상황변화도 심하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박쥐 등 동물은 더 대담하고 재빨리 배우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박쥐 이외에 금화조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새끼가 먹이 찾는 행동은 유전적 부모보다 양육 부모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번 연구는 과학저널 ‘비엠시 생물학’ 최근호에 실렸다.
인용 논문:
BMC Biology, DOI: 10.1186/s12915-021-01131-z
조홍섭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