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구멍을 뚫고 도토리를 저장하는 도토리딱따구리. 대형 식량창고를 둘러싼 싸움이 복잡한 사회관계를 낳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까지 북미 서해안 숲에 사는 도토리딱따구리는 큰 나무줄기에 수백∼수천개의 구멍을 뚫어 식량인 도토리를 저장하는 습성이 있다. 이 소중한 식량 저장고를 둘러싼 패싸움과 독특한 구경꾼 문화의 실태가 밝혀졌다.
사하스 바브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박사 등 연구자들은 이 딱따구리 3개 무리 36마리에 무선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해 조사한 결과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보고했다.
도토리 창고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동물이 훔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도토리가 마르면서 크기가 줄어들면 자리를 옮겨주어야 한다. 닐 로신 제공
도토리 창고를 관리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어치 등 도둑을 막아야 하고 마르면서 크기가 줄어드는 도토리를 구멍에서 수시로 바꿔 끼워야 한다. 무리는 성체 암컷 1∼3마리와 수컷 7마리에다 이들의 미성숙한 새끼들로 구성된다.
번식하는 암컷이나 수컷이 늙어 죽거나 매에 잡혀가면 혼란이 시작된다. 번식지를 차지할 기회를 노리던 외부 집단의 젊은 암컷들이 몰려들어 이를 지키려는 무리와 죽기 살기 싸움이 벌어진다. 한 싸움터에 10여개 무리에서 온 50마리의 젊은 암컷이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도토리딱따구리는 집단생활을 한다. 한 마리가 도토리를 갈무리할 구멍을 뚫는 동안 다른 두 마리가 각각 다른 각도로 경계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주 저자인 바브 박사는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큰 나무에 다가서면 멀리서도 수많은 딱따구리가 쉬지 않고 울어대고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듣고 볼 수 있다”며 서너 마리로 이뤄진 10여개 무리의 딱따구리가 나뭇가지에 진을 치고 서로 싸워대는데, 영역을 차지하려면 한 무리가 다른 모든 무리를 이겨야 하는 동물계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새들의 움직임을 맨눈으로 관찰하기는 불가능하다. 연구자들이 딱따구리 등에 무선추적장치를 부착해 이들의 움직임을 분 단위로 확인하자 싸움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드러났다.
과시 행동과 외침, 그리고 종종 눈알이 튀어나오고 날개가 부러지며 죽음으로 이어지는 유혈충돌은 여러 날 계속됐다. ‘출·퇴근 싸움’이 불가피했다. 젊은 암컷 2마리는 이웃 영역에서 나흘 연속 싸움터로 찾아와 하루 10시간 이상 버텼지만 결국 영역 탈취에는 실패했다.
싸움은 마구잡이로 벌어지는 게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단서를 토대로 이뤄진다. 바브 박사는 “새들은 자기 무리의 수가 충분히 커지고 기회가 올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린다. 그때가 오면 전면전을 벌여 좋은 영역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복잡한 사회관계를 이루는 도토리딱따꾸리는 호기심이 많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하스 바브 제공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예상치 못한 사실은 구경꾼의 존재였다. 우연히 지나가다 싸움 현장을 보는 수준을 넘어섰다. 싸움 소식은 재빨리 퍼져 1시간 안에 구경꾼이 도착했는데,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매일 평균 1시간 동안 싸움을 지켜봤다.
가장 큰 영역싸움이 벌어졌을 때는 그 지역에 서식하는 딱따구리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0여 마리가 구경꾼으로 모여들었다. 심지어 이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제 둥지를 비워놓고 3㎞ 이상 먼 곳에서 온 딱따구리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구경꾼 딱따구리가 싸움을 보면서 얻는 사회적 정보의 가치는 자신의 영역을 상당한 시간 동안 방치하는 것을 능가한다”고 설명했다. 영역싸움 당사자보다 더 먼 거리에서 날마다 찾아와 이들이 찾는 정보는 각 무리의 구성원, 나잇대, 몸 상태, 영역의 가치 등이다. 무엇보다 이 싸움에서 누가 승리하는지가 관심사이다.
연구자들은 “도토리딱따구리는 매우 치밀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어 무언가가 무너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가서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0.07.073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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