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을 부풀려 단열효과를 높인 박새가 마치 패딩을 입은 것 같다. 몸무게 15g의 박새가 영하 10도의 날씨에 체온 40도를 유지하는 비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추위가 닥치면 사람은 두툼한 패딩을 꺼내 입는다. 마찬가지로 추운 곳에 사는 새일수록 보온성이 좋은 두툼한 다운으로 무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새 깃털은 매끈하게 공기를 가르는 비행 기능과 함께 체온을 지키는 구실도 한다. 대개 겉으로 드러난 윗부분이 비행에 쓰이고 감춰진 복슬복슬한 아랫부분을 가리키는 ‘다운’은 단열에 쓰인다. 패딩 단열재의 주재료도 새의 다운 깃털이다.
깃털 구조. 윗부분은 비행에 쓰이고 아래 다운은 단열용이다. 사하스 바브 제공.
사하스 바브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박사 등 미국 연구자들은 히말라야 산맥 일대에 서식하는 새를 대상으로 고도에 따라 깃털에서 다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했다. 해발고도 0m에서 5000m까지 올라가면 연평균기온이 25도나 떨어진다. 추운 곳일수록 다운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어지면 더 두툼한 패딩을 입은 것처럼 단열효과도 커질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이 지역에 사는 참새목 조류 249종 1715마리를 대상으로 가슴 깃털의 부위별 길이를 일일이 측정했다. 이런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이 세계 최대 규모인 62만5000점의 새 표본을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에 서식하는 뱁새의 일종. 아디티야 차반 제공.
측정결과 처음 생각한 대로 고도가 높아져 기온이 낮은 곳의 새일수록 깃털 가운데 다운이 차지하는 길이가 최고 25%까지 길었다. 또 덩치가 작은 새일수록 깃털의 상대적인 길이가 최고 3배까지 길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깃털이 길수록 깃털끼리 겹치는 부위가 늘어나 피부와 바깥 공기 사이를 두툼하게 막아주고 다운의 길이도 길다.
덩치가 작은 새일수록 단열에 대비하는 이유는 작은 새일수록 열을 쉽게 잃기 때문이다. 몸집이 작을수록 단위 체중당 표면적이 늘어나 열손실량이 커진다.
히말라야에 서식하는 딱새의 일종. 아디티야 차반 제공.
히말라야의 새들은 열대와 온대지역 살던 새들이 점점 솟아오른 고산지대 기후에 적응해 진화했다. 연구자들은 “각각의 새들은 수백만년의 진화적 거리가 떨어진 종이지만 추위에 적응하면서 깃털 구조가 비슷한 방식으로 바뀌어 나간 ‘수렴진화’의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바브 박사는 “많은 종에서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히말라야 산맥에 국한하지 않고) 참새목 새들의 일반적인 양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이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참새목은 조류의 절반 이상을 포함하는 분류군으로 대부분 덩치가 작고 나뭇가지에 앉기 편하도록 발가락 3개가 앞으로 1개가 뒤로 난 특징을 지닌다.
추운 환경에 사는 새일수록 다운이 더 많다는 사실은 장차 기후변화로 어떤 새들이 가장 취약할지를 단지 깃털을 보고서도 짐작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했다. 깃털 구조에서 다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잦고 강한 한파에 견딜 수 있는지를 예상할 수 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조류 표본관 모습. 62만5000점의 새 표본이 보관돼 있다. 칩 클라크, 스미스소니언 제공.
연구자들은 또 이런 종류의 연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자연사박물관의 기능을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한 칼라 도브 박사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지난 200년 동안 62만 점 이상의 새 표본을 수집해 온 것은 이런 종류의 연구를 하기 위한 것”이라며 “표본이 당장 어디에 쓰일지 모르지만 잘 간직하고 보충해 나간다면 과거의 표본이 미래를 예측하도록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Ecography, DOI: 10.1111/ecog.05376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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