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두드리는 산악고릴라. 주먹을 편 상태로 빠르게 두드려 내는 드럼 음은 1㎞ 밖까지 들린다. 다이앤 포시 고릴라재단 제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고질라 vs 콩’이나 ‘킹콩’에 등장하는 고릴라는 벌떡 일어서 우람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전의를 불태운다. 야생의 고릴라도 정글에서 비슷한 동작을 한다.
그러나 현장 연구 결과 고릴라의 가슴 두드리기는 힘을 과시한다기보다 자신의 솔직한 정보를 알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런 음향 정보는 짝짓기 상대를 얻고 싸움 없이 분쟁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드워드 라이트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연구원 등 국제 연구진은 르완다 화산 국립공원의 다이앤 포시 고릴라재단이 모니터링하는 수컷 산악고릴라 25마리를 3년 동안 추적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9일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실린 논문에서 “고릴라의 가슴 두드리기는 경쟁력의 솔직한 신호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큰 수컷일수록 가슴 두드릴 때 나는 소리의 주파수가 낮았다. 연구자들은 “덩치가 클수록 후두 공기주머니의 부피가 커 가슴을 두드릴 때 저음이 난다”고 설명했다. 주 저자인 라이트는 “동물 왕국의 아이콘인 고릴라 가슴 두드리기에 몸 크기가 암호처럼 숨어 있었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고릴라들은 한 살 때부터 가슴 두드리기를 연습한다. 다이앤 포시 고릴라재단 제공
산악고릴라 수컷이 가슴을 두드리는 행동은 발정기 암컷을 유혹하고 경쟁자 수컷을 겁주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는 고릴라가 내는 소리가 자신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몸 크기를 거짓 없이 드러내는 신호임을 밝힌 것이다.
수컷 고릴라는 상대가 내는 소리를 듣고 싸움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싸움을 시작할지, 확전으로 이어갈지 아니면 후퇴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수컷 산악고릴라는 몸무게 120∼190㎏에 커다란 송곳니를 지녀 싸움이 벌어지면 상대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유용한 억제수단 덕분에 격렬한 싸움은 매우 드물다. 연구자들은 “이런 잣대는 수컷끼리뿐 아니라 무리 사이의 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가슴 두드리기는 암컷의 선택에도 영향을 끼친다. 고릴라는 우두머리 수컷 고릴라를 중심으로 여러 마리의 암컷으로 이뤄진 무리를 이루고 성체 암컷은 이 무리 저 무리를 옮겨 다닌다. 덩치 큰 수컷이 있는 무리일수록 암컷도 많다.
고릴라의 가슴 두드리기 연속 사진. 몸을 일으켜 주먹을 펴고 두드리면 소리가 더 멀리 퍼진다. 조르디 갈바니, 다이앤 포시 고릴라재단 제공
흔히 고릴라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실제로는 소리가 잘 울리도록 손을 컵 모양으로 움켜쥔다. 이렇게 빠르고 연속적으로 두드리기가 지속된다.
조사 결과 가슴 두드리기 행동은 흔치 않아 10시간 동안 평균 1.6회 관찰했을 뿐이다. 암컷이 발정기이거나 다른 무리와 분쟁이 벌어질 때는 더 잦아졌다. 초당 8번의 횟수로 평균 0.65초 동안 지속됐다.
고릴라의 가슴 두드리는 소리는 1㎞ 밖에서도 들렸다. 시각적 신호가 잘 전달되기 힘든 울창한 열대우림에서 적합한 신호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야생동물 가운데는 사슴, 자이언트판다, 코알라, 미국 엘리게이터 등이 울음소리로 몸의 크기 차이를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울음소리가 아닌 소리로는 이제까지 아프리카의 대형 영양인 일런드가 무릎 관절에서 내는 소리로 덩치 차이를 가리는 것이 유일한 사례였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1-86261-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