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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혼자요? 세상 모든 생명과 겸상하는 중이에요”

등록 2019-12-02 13:24수정 2019-12-03 15:23

[애니멀피플]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⑥
‘해피 비건’ 양다솔씨의 직장 생활 노하우…풍성하게, 즐겁게, 맛있게!
직장인 양다솔씨는 비건이 되고도 즐겁게, 맛있게, 멋있게 사는 삶을 지향힌다. 친구들에겐‘해피 비건’이란 별명을 얻었다. 양다솔 제공
직장인 양다솔씨는 비건이 되고도 즐겁게, 맛있게, 멋있게 사는 삶을 지향힌다. 친구들에겐‘해피 비건’이란 별명을 얻었다. 양다솔 제공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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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영상 기획자로 일하는 양다솔씨는 늘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다닌다. 가방 속에는 다솔씨가 양팔을 한 아름 벌려서 표현할 만큼 큼직한 도시락이 들어 있다.

“비건 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철분 어떡하냐, 단백질은 어떡하냐 해요.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컵라면으로 때우거나 점심을 거르시더라고요. 저는 수라상처럼 점심을 차려 먹어요. 많이 먹기도 하지만, 손이 커서 엄청 많이 싸가거든요. 그러면 식사 거르는 분들이랑 같이 나눠 먹기도 하고 그러죠.”

그의 ‘수라상’ 점심 메뉴는 대부분 샐러드다. 아침 8시30분까지 서울에서 파주까지 출근해야 하므로 준비가 간편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샐러드라고 ‘초라한 풀떼기 밥상’이 되는 걸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주말에 채소 준비를 해두고, 카레, 수프, 디핑소스, 드레싱 등도 만들어둬요. 날마다 정말 풍성하게 가져가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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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친구와 함께

다솔씨는 ‘비건 직장인’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12시에 점심 먹으러 나가고 6시까지 일하는, 한국 직장인의 정석과 같은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비거니즘이 ‘끼어들었다’.

때는 지난해 가을,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모두를 만족하게 할 식당 하나 찾기가 어려웠다. 몇 달 만에 만난 친구들이 그사이에 각각 페스코, 비건, 생채식을 하는 베지테리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묘하게 시기가 겹쳤지만 이유는 다양했다. “애인이 페스코여서.” “건강 때문에 단식하다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동물권과 기후 위기 문제 때문에.”

다솔씨만 비건이 될 어떤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만난 친구들은 그가 평생을 함께 가기로 마음먹은 이들이었다. 이 친구들과 더는 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온 마음으로 엮인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았다. 식구 같은 존재와 밥을 함께 먹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양다솔씨가 직접 만든 비건 도시락과 식사.
양다솔씨가 직접 만든 비건 도시락과 식사.
그에겐 “이것만으로도 비건을 시작할 이유가 충분”했다. 늘 생각해 온 일이긴 했다. “그동안 마음속에는 있었지만 먹는 일은 생활과 밀착된 일이니까, 막상 시작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친구들의 선언이 불쏘시개가 됐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비거니즘은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이념이므로 다음날 당장 뭘 먹을지부터가 문제였다. 먹는 것도,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그였지만 “고기 없이, 잘 차려진 한 상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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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채소와 잘 지내고 싶어지다

부엌을 베이스캠프 삼기로 했다. 그동안 요리를 꽤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 다른 세계였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콩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콩으로 얼마나 창조적인 요리가 가능한지 처음 알았죠!”

자기만의 조그만 부엌에서 온갖 채소를 지지고 볶고 삶았다.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수많은 향신료를 사서 실험을 했다. 다솔씨는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채소의 다양한 맛을 깨치며 “모든 채소와 잘 지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비건이라고 맛의 스펙트럼이 줄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건이라고 잘 못 먹는 게 절대 아니에요. 비건을 하면서 실제로 먹는 것이 훨씬 다양해진 것 같아요. 때때로 자극적으로 먹기도 해요. 만약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으면, 동물성을 싹 빼고 최대한 비슷한 맛을 만들어 먹는 식으로요.”

‘열정 비건’의 도시락은 언제나 풍성하다. 처음에는 아침 5~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해 나가는 것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을 고려해 주말에 평일 먹거리를 최대한 마련해둔다.

“최근에는 더덕구이나 견과류 볶음, 토마토 절임 같은 걸 준비해뒀어요. 이런 건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고 꺼내 먹기도 하고요. 볶음밥이나 파스타를 많이 해서 요일마다 나눠서 가져가 전자레인지에 돌려먹기도 하고요. 물론 방금 한 음식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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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먹는 사람과 갈등하지 않았으면

회식 때는 어떻게 할까. “회식하면, 저희도 조개구이집, 곱창집, 삼겹살집 같은 데 가요. 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앞에서 열심히 구워드려요. 다만 저는 제가 싸간 음식을 먹어요. 우선, 서로 각자 먹고 싶은 것 먹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저는 저 때문에 누군가 맛없는 걸 먹는 걸 원치 않고, 반대로 저도 마찬가지예요. 고기 먹는 사람, 아닌 사람 사이에 긴장이 없으면 좋겠어요.”

양다솔씨의 도시락은 어디서든 풍성하다. 그는 “비건이라고 선택지 없는, 먹을 게 한정된 사람으로 여겨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더 열심히, 더 풍족하게 도시락을 싼다.
양다솔씨의 도시락은 어디서든 풍성하다. 그는 “비건이라고 선택지 없는, 먹을 게 한정된 사람으로 여겨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더 열심히, 더 풍족하게 도시락을 싼다.
점심시간에도, 회식 자리에서도, 심지어 멀리 여행을 떠나서도 자신의 도시락을 열심히, 맛있게 먹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해피 비건’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늘 비건이라면 선택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항상 웃고 있고 먹을 것도 많이 나눠주고 그러니까요.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나도 비건하겠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시든 파처럼 쓰러지는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해피 비건’은 커녕 평범한 비건의 삶도 꿈꾸기 어렵다. 지난해 5월, 서울여대 프로젝트팀 ‘다 함께 채채채’가 채식인과 비채식인 19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채식인들이 겪는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이 ‘메뉴 선정과 채식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간섭’(77.3%)이었다.

논문 ‘한국에서 채식주의자 되기: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채식주의 전략’(유태범, 2012)에서는 “한국의 강한 집단주의 문화는 채식주의자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식습관을 드러내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지켜나가는 데 있어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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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이 혼자일 수 없는 이유

이에 대해 다솔씨는 이렇게 말한다. “비거니즘을 지속하려면, 자기 안에 공고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건의 배경으로 동물권, 육식 산업 노동자들의 인권, 기후 위기 문제 등 너무 좋은 이유가 많지만, 우선 이게 계속되려면 나에서 비롯하는 게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는 비건을 하며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바꿔 살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비건을 하기 전에는)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돈에 쫓기고, 늘 외롭고…. 이미 너무 재미없게 제 삶의 서막을 써버려서 이제 볼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는 그 감정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 비건을 하고 알게 됐다고 한다.

“늘 홀로 먹는 밥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쑥, 내가 먹고 있는 이 음식이 누군가의 생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나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결코 혼자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비건이 되고 난 다음의 밥상을 마주하며 그는 생각했다. “지구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위해 어떤 선택을 했다는 것, 마치 세상 모든 생명과 겸상한 기분이 들었죠.” 고기가 빠진 도시락이 가져다준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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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는 비건이 된 것이 “살면서 한 선택 가운데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비거니즘을 실천한다고 육식에 대한 반감이 딱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립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비건이 됐다는 건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맘에 드는 애인을 만난 기분이에요. 길에 다니면 고깃집이 정말 많잖아요. 그 앞을 지날 때 생각해요. 아 우리 한때 정말 사랑했었지. 너무 좋은 추억이야. 하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러진 않을 거야.”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텀블벅 펀딩 바로가기: https://tumblbug.com/animalpeople_vegan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신소윤 yoon@hani.co.kr

#7회에서는 비건이 금욕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유쾌하게 깨주는 두 비건 지향자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돌아온 비건 공구! 함께 사실 분?”_신소윤의 비거니즘 일기

“까톡!”

‘동물기자방’이라고 이름 붙은, 팀 식구 4명이 모인 방은 매일 오전 9시~9시 30분 사이에 정기적으로 울린다. 그날 무슨 기사를 몇 시에 배포할지, 어디서 어떤 취재를 하는지를 공유한다. 이후에도 대체로 일과 관련한 얘기가 대부분이다.

공사 구분이 명확한 사람들이므로, 네 명 중 셋이 고양이 집사로서 고양이에 대한 수다를 종종 떨 때 빼고는 좀처럼 다른 주제로 대화가 확장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비건 기획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냉장고 사정을 공유할 정도로 급격히 ‘오픈’되기 시작했다.

11월12일, 오전 보고가 끝나고 잠잠했던 카톡방에 귤밭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돌아온 먹거리 공구입니다. 친구네 시가에서 키우는 노지 귤인데 함께 사실 분?” “오, 친구 시가 친환경 밭이면 믿을만하겠군.” “저요 저요.”

11월19일, “채황 먹어 보신 분? 오뚜기에서 소리소문없이 출시했다는 채소라면이라는데, 채소라면의 황제래.” “오 사 먹어 봐야겠다.” “8개 무료배송이라는데, 같이 사서 나눌까?”

먹고, 사고, 나누는 일상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어느 날은 채식 도시락을 함께 먹은 후, 발효 콩 제품인 ‘템페’(콩의 껍질을 벗기고 삭혀 뭉친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특유의 향이 적고 식감이 쫀득하다)가 대화의 주제로 떠올랐다.

김지숙 기자가 말했다. “템페를 비건 마라샹궈에 넣어봤는데 제대로 조리를 못 했는지 생각보다 별로였어.” 그 말에 냉장고에 저장된 나의 템페가 생각났다. “아, 템페 계속 냉동실에 벽돌처럼 들어 앉아 있는데 어서 꺼내서 요리해봐야겠네.” 가만히 듣고 있던 박현철 팀장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니네 그거 같이 사자고 했는데, 왜 너희들끼리 먼저 사냐?”

공구의 물결은 취재원에게도 넘실댔다. 11월21일, 채식급식권을 취재하러 황윤 독립영화 감독을 찾았다. 그런데 취재가 끝나고 황윤 감독이 차려준 저녁 식사에서 나온 우리 밀 바게트가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과 함께 ‘1인 1 바게트’를 먹어치운 뒤 염치 불고하고 물었다. “감독님,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요. 이 빵… 어디서 사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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