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의 열차 탑승을 저지하고 있는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964년 제정된 미국의 ‘시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으나, 당시 장애는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970년 장애 여성 주디스 휴먼이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교사 면허를 내어주지 않은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싸우기로 결심했을 때, 소송에서 써먹을 법 조항이나 판례조차 없었습니다. 휴먼은 1977년 ‘재활법 504조’ 시행을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 연방정부 건물을 점거하는 투쟁을 주도했습니다. 시민권법에 포함되지 못한 내용(‘장애를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을 재활법에라도 넣은 조항이었죠.
장애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한발 늦었기에, 미국 정부와 관료들은 장애인 평등과 관련한 문제에 “분리하지만 평등하다”(seperate but equal)는 구닥다리 논리를 갖다 붙이곤 했습니다. 과거 인종 문제에 대한 전가의 보도였던 이 ‘분리 평등’ 원칙은 이미 1950년대에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을 계기로 폐지됐는데도요.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 <나는, 휴먼>(사계절)을 보면, 재활법 504조 투쟁 과정에서 협상 대상인 관료가 ‘분리 평등’을 언급하는 순간 휴먼을 포함한 장애인 동료들이 엄청나게 강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피를 당한 관료는 협상장을 박차고 도망을 가버렸죠.
‘불법’, ‘떼법’ 등의 말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선전전에 대응하는 정치권, 정부기관의 모습과 일부 여론을 보며, 어떤 이들의 마음속 원칙은 여전히 ‘분리 평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고 싶은 대상이 과연 동등한 시민일 수 있을까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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