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늦게 타는 게 죄인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하철은 1분만 늦어도 큰일”이라는 발언에 대해 장애인은 물론 승하차가 더딘 노인, 환자, 유아차를 동반한 양육자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교통약자들은 지하철을 타지 말라는 것이냐”며 성토 중이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전윤선(55)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이동식 안전발판을 사용할 때도 최소 1분 넘게 지연된다”며 “1분이라도 지연되는 게 큰일이라면 교통약자의 탑승으로 1분이라도 지연되지 않게 시설을 마련하는 게 국가와 서울시의 책임 아니냐”고 꼬집었다.
허영구(67) 노년알바노조(준) 대표는 “지하철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 등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성과는 사실 노인들이 제일 많이 누리고 있다”고 했다. 김정덕(44)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유아차와 함께 지하철에 탑승했다가 눈초리를 받는 것은 물론, 내리라는 말까지 들은 양육자들이 적지 않다”며 “오 시장의 발언은 약자를 향해 혐오를 던져도 된다는 위험한 신호로 들린다”고 했다.
교통약자의 분노의 목소리에 더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연대하겠다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이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전장연 시위 연대합니다’ 등의 전장연 후원금 인증 게시물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는 지난 2일 트위터에 전장연에 후원 이체 내용을 올리면서 “열차 지연 문제는 오로지 서울교통공사에 그 책임 있다. 교통약자와의 대결을 선포하는 반윤리적이고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선동에 항의한다. 장애인, 노동자, 참사 희생자, 여성, 어린이, 이주민 우리 모두 뒷걸음치지 않는다”며 “2000원, 5000원도 좋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마음으로 함께하자”고 글을 올렸다. 이 글은 4일 오후 7만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1000건 넘게 공유됐다. 이날 전장연 관계자는 “오 시장의 ‘무관용 원칙’ 언급 이후 실제 후원금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지지하는 노동자, 장애인, 양육자, 노인 단체의 공동 기자회견이 지난해 4월4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려,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모두의 차별 없는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유아차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독일에서 전장연에 후원한 진소연(30)씨는 <한겨레>에 “독일에선 어디를 가나 휠체어 탄 장애인들을 볼 수 있다. 버스나 트램에 휠체어 탄 장애인이 탑승하면 기사가 도와주는데, 이때 출발이 지연돼도 다들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이동권은 기본적인 권리니까 한국에서도 보장되길 바라며 후원했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