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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인도 학자도 무관심하니 ‘SF 왕국’은 제가 차지했죠

등록 2006-08-31 20:11수정 2006-09-01 14:43

그의 에스에프에 대한 관심은 에스에프가 제 대접을 못 받은 현실과 관련있다. 어려서 읽은 ‘공상과학소설’의 원저를 보고 에스에프의 본질과 국내 현실과의 거리를 알게 되면서 ‘과학소설’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 분야에 머물기 15년여.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보적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그의 에스에프에 대한 관심은 에스에프가 제 대접을 못 받은 현실과 관련있다. 어려서 읽은 ‘공상과학소설’의 원저를 보고 에스에프의 본질과 국내 현실과의 거리를 알게 되면서 ‘과학소설’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 분야에 머물기 15년여.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보적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한국어로 된 모든 SF자료 모은다” 목표로 15년간 국내외 뒤져 방 두칸에 3만점 착착
최근 ‘SF아카이브’ 만들어 도입사 연구 과거 가르치면서 미래는 왜 밀쳐 두나요?
조만간 본격소설이 SF소설 되는 시대 올겁니다
한국의 책쟁이들/⑧ SF마니아 박상준씨

인터넷으로 ‘박상준’을 검색하면 여러 명의 인물이 떠오른다. 책쟁이로 칠 수 있는 박상준 역시 세 사람이나 된다. 출판사 사장, 출판 기획자, 에스에프 매니아. 이번 주인공은 에스에프 마니아 박상준이다. 정작 그는 한겨레신문사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데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마에 아무런 표식도 없이 세작처럼.

최근 그는 ‘에스에프아카이브’를 만들어 그 대표가 되었다. 물론 원래의 출판기획·번역가라는 타이틀 역시 가지고 있다. 사정이 있다. 과학문화재단 등 각종 과학관련 단체에서 무슨 일을 추진하고자 할 때 카운터파트가 없어 고민스러워했다는 것. 번듯함을 요구하는 그들의 관료성 외에 최소한의 수준과 체계를 갖춘 ‘무엇’이 없었다는 얘기다.

에스에프아카이브의 취합 대상은 한국어로 된 모든 에스에프 및 관련 자료다. 지금까지 책, 만화, 비디오테이프, 포스터, 팸플릿 등 1만여점, 간접자료를 합치면 2만점이 넘는다. 15년 이상 국내는 물론 해외의 헌책방을 뒤져 국내 최대의 독보적인 자료를 갖췄다. 지금도 수시로 인터넷을 통해 양과 질을 높이고 있다. 개인을 넘어 공공재산으로 활용하고자 목록작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창문 차단 외계인 침입 막으려?


슈퍼건물 4층인 그의 사무실 겸 아카이브는 17평쯤. 정리 중인 자료가 쌓인 거실 양쪽으로 2개의 방에 자료가 꽉 차 있고 그 중 넓은 방 한쪽에 빈 자리를 비비고 박씨가 틀어앉았다. 공습에 대비한 것일까, 불빛이 새지 않도록 창문을 꼼꼼 여몄다. 화성인이 침공한다면 지구인 가운데 우주와 미래의 비밀을 가장 부지런히 염탐하는 그가 첫번째 제거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나이가 지긋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박씨는 무척 젊었다. 67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이 역시 알고보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에스에프 하면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 또는 과학을 제대로 알아야 읽을 수 있는 어려운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요. 기성 문인들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학자들 역시 연구나 비평작업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한테까지 행운의 차례가 온 거죠.”

그가 초점을 두는 것은 70년대 이전에 번역 또는 창작된 에스에프. 존재를 모르는, 또는 건사하지 않으면 잊혀져 없어질 자료들이다. <금성탐험대>(한낙원, 삼지사, 1957 초판, 1969 10쇄), <우주항로>(한낙원, 계몽사, 1981), <해저왕국>(한낙원, 삼성당, 1988 재판), <2064년, 우주소년 삼총사>(안동민, 동민문화사, 1972). 샘플로 들고나온 어린이용 책들은 옛 활판인쇄, 싸구려 장정에 먼지가 묻어났다. <2064, 우주소년 삼총사>의 삽화는 고우영이 그렸다.

아나운서를 하다 52년부터 어린이용 과학소설을 쓴 한낙원(1924~ )의 책들은 과거형. 더 이상 새로 쓰이지도, 서점에서 판매되지도 않는다. 안동민은 문단의 변방에 머물렀고 그의 아들은 <임페리얼코리아>라는 과학소설을 썼다. 박씨의 귀띔이다.

대학생 때부터 출입한 헌책방은 그의 공부방이자 놀이터. 에스에프를 읽으면서 자란 그의 눈에 우연히 영어 원서가 눈에 띄었다. 어려서 본 것은 얇고 짧은데 원서는 상당히 길었다. 띄는 대로 집어다 짧은 것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나 조지 오웰의 <1984>가 에스에프로도 분류됨을 알게 되었다. ‘에스에프가 과학공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발언을 담을 수 있는 미디어구나.’ 그 무렵 깨친 생각이다. 91년부터는 기획번역을 했다. <멋진 신세계>, <라마와의 랑데부>, <세계 에스에프 걸작선> 등. 그걸로 밥벌어 먹겠냐는 부모의 염려로 몰래 내야 했다. 그 중 <세계 에스에프 걸작선>는 꽤 팔렸다. 당시 동유럽 붕괴 이후 방향전환을 모색하던 사회과학 출판사를 설득해 에스에프를 잇따라 냈다.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외엔 별 재미를 못 본 것으로 안다. 자신한테는 진실을 전하는 미디어였지만 대부분 출판사한테는 돈벌이 대상이었을 뿐. 장정, 번역 모두 유치해 오래 가지 못했다. “얼떨결에 전문가 소리를 듣습니다. 절대평가 하자면 김상훈, 홍인기, 두 사람이 훨씬 윗단계죠.” 에스에프를 위한 사무실은 97년부터 냈고, 에스에프 도입사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SF걸작선’ 출판사 설득 펴내

“우리나라의 에스에프는 당연히 번역으로 시작됐어요.”

1907년 재일유학생 잡지인 <태극학보>에 연재된 <해저여행기담>이 최초. 원작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인도 왕녀의 5억 프랑’를 번안한 <철세계>(이해조, 1908), ‘기구를 타고 5주간’이 원작인 <비행선>(김교제, 1912), ‘달나라 탐험’ 원작의 <월세계 여행>(신일용, 1924) 등 쥘 베른이 잇따랐다.

카렐 차펙의 를 번역한 <인조노동자>(박영희, 1925),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원작인 <일신양인기>(게일·이원모, 1926)는 특기할 만하다.

최초의 창작 에스에프는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1929년 <신소설> 12월호)를 친다. 똥을 원료로 개발한 대체식량을 둘러싼 이야기다. ‘천공의 용소년’(허일문, 1930), ‘라듸움’(김자혜, 1933), ‘여신’(방인근, 1939) 등이 뒤를 이었다. 해방 뒤는 먹고살기 힘들어 에스에프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완전사회>(문윤성, 1965)가 섬처럼 도들하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1987), <역사 속의 나그네>(1991), <파란 달 아래>(1992), 듀나의 <태평양 횡단특급>(2002)이 근작들. 문윤성과 복거일 사이 22년 동안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 없다. 다만 1968년 ‘한국SF작가클럽’이 결성돼 그 회원들의 작품을 1970년대 중반 10권으로 묶은 적이 있으나 모두 청소년용이고, 일부는 번안이다. 반면 북한은 과학소설 평론서인 <과학환상문학창작>(황정상, 1993)이 나올 정도로 남쪽보다 작품활동이 활발했다는 평가다. 특기할 것은 2004년부터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이 생겨 신인들의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다. 올해로 세번째. 역시 훌륭한 작품이 대거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등단 이후 인터넷 외에 뾰족한 발표지면이 없어 안타깝다. 박씨는 “이제는 월간 또는 계간 잡지가 나올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구하지 못한 자료들이 숱하다. 예컨대 아데네사에서 낸 ‘소년소녀세계과학모험전집’. 그 가운데 그가 보유한 것은 1959년에 나온 <공중열차 지구호>(압플톤 지음, 최지수 옮김) 낱권. 책 뒤에 전집 8권이 소개되어 있고 출간예정인 19편의 제목이 들었다. 이런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다른 희귀자료를 내놓을 생각이다. 그는 1953년에 나온 <타임> 잡지뭉치를 들고 나왔다. 거기에는 한국전 대차대조표가 실린 6월29일치도 포함돼 있다.

“에스에프 모른다고 자학하지 마세요.” 그는 한 도서평론가도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책읽기)를 읽고 비로소 눈을 떴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척 설득적이다. 20세기는 특별한 시대라는 거다.

20세기 100년동안 과학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1900년 비행기 없던 때 태어난 이는 이른 살 무렵 달나라에 착륙한 인간을 보았다! 과학기술 변화가 일상적인 시대다. 토플러는 “고대 로마시대나 중세 장원경제를 가르치면서 미래사회학이나, 변화양상은 왜 가르치지 않는가” 역설했다. 21세기에는 에스에프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다. 사회상을 반영하는 본격소설이 곧 에스에프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일본만 해도 교과서에 에스에프가 들어있다는데….

‘두개골의 서’ ‘일본 침몰’ 강추

“과학발전에 관해서는 물론 그로 인한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에스에프는 넓은 시야를 제공합니다.” 그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 외에 <두개골의 서>(북스피어), <일본침몰>(범우사)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 에스에프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뀔 것이라면서. “그런데 말예요. <일본침몰>이 1970년대에 이미 3종 이상 번역되었어요.” 영화덕에 다시 떴다면서 <일본열도 침몰하다>(안동민 옮김, 휘문출판사, 1973)를 보여주었다.

박씨는 에스에프 도입사가 완성되면 과학문화사 기술에 도전할 생각이다. <과학조선> <학생과학> 등 지나간 잡지는 물론 요즘 나오는 <과학동아>를 부지런히 모으고 있다. 할 일은 많은데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 그런데 지구 방위대 유지비는 어디서 나올까?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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