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게으름」
베스트셀러 들여다보기/<굿바이, 게으름>
“게으름은 쇠붙이의 녹과 같다. 노동보다 더 심신을 소모시킨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씨가 쓴 <굿바이 게으름>은 이런 섬뜩한 문장을 홍보용 책띠지에 달고 있다. 근면과 절약을 최고의 가치로 강조한 ‘자본주의 정신’의 체현자 벤저민 프랭클린의 금언을 앞세운 것인데, 스스로 게으르다고 책망하는 사람들에겐 협박의 말로 들릴 법도 하다.
그 협박이 먹힌 것일까, 이 책의 판매 속도는 결코 게으르지 않다. 지난 달 출간돼 한 달여 만에 5만부 가량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책을 편집한 더난출판사의 황현주씨는 “애초에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책을 만들었는데, 초기 반응이 의외로 커서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20~40대가 주독자층이고,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많다”며 “아이와 남편이 게을러 문제라고 느끼는 젊은 주부들이 많이 사보는 것 같고, ‘귀차니즘’에 빠진 대학생들도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독자층을 분석했다.
이 책은 광고 문구로만 보면 ‘게으름의 찬양’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지은이가 먼저 게으름을 정의하는 것부터가 새롭다. 그가 임상사례로 든 한 여성 행정공무원은 겉으로 보면 전혀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 철두철미하다. 공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 많은 노력에 초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에겐 삶을 관통하는 어떤 키워드가 없다” ‘삶에 방향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게으름을 재는 척도라는 것이다. 아무리 바쁘게 뛰고 일해도 게으름뱅이 일 수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걸 ‘위장된 게으름’이라고 부르는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는 것”이 바로 위장된 게으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선택을 회피하고, 시간을 지연하고, 약속을 어기고, 딴짓 하고, 꾸물거리고, 폐인처럼 운둔하고, 막판에 서두르는 모습이 모두 게으름의 모습들이다.
반면에 겉으로는 게을러 보여도 확실한 비전을 품고 여유 있게 행동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버트런드 러셀이 찬양한 ‘게으름’은 나태나 태만이 아니라 ‘느림’과 ‘여유’다. 지은이는 현대 사회에서 느림과 여유가 지닌 가치를 분명하게 인정한다. 다만 게으른 사람들이 그걸 세련된 핑곗거리로 삼는 것을 경고할 뿐이다.
이 책은 이렇게 게으름을 새롭게 정의해 놓고, 자기 삶을 갉아먹는 게으름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제시한다. 게을러지고 싶은 충동일 일 때 자기만의 ‘멈춤 신호’를 만들어 초기에 제어하라는 것이 첫번째 충고다. 더 중요한 충고는 두번째다. 남을 흉내내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름은 남을 흉내내는 삶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산물이다. ‘자기로서 살지 못하는 삶’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지은이는 말한다. 이 책은 게으름을 분석하고 있지만, 결국엔 자기답게 사는 것, 명확한 비전을 찾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게으름이 부산물이듯이, 게으름의 극복도 자기답게 살기의 부수적 효과인 셈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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